"선생님, 저 풀업 한 번 성공해보고 싶어요!"
2024년 12월 중순, 운동 선생님께 선언했다. 꼭 풀업을 하고 싶다고! 선생님은 잠깐 나를 바라보고 생각하더니 차분히 얘기했다. "상체가 좀 커질텐데, 괜찮겠어요?"
그 뒤로 꽤 열심히 연습했던 것 같다. 보통 일주일에 4-5번 헬스장에 가는데 그 중 2-3번의 운동 루틴엔 친업/풀업 연습을 포함시켰다. 꽤 많은 무게를 보조 받고 친업을 연습하다가, 2025년 2월 즈음엔 20kg 정도의 보조만 받고 친업을 5~10회 사이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날은 뿌듯했고, 어떤 날은 답답했다. 선언하고 벌써 세 달이나 지났는데 아무리 연습해도 그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그때는 선생님 말대로 등이 좀 커진 것 같았는데, 우람해진 여자의 등과 연속적인 실패의 상황이 어찌나 속상하던지.
"그래도 20kg 보조로 5개 정도 성공했다면, 맨몸으로 친업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거에요!"
2월 말이었나. 선생님이 이 말을 툭, 던지셨다. 그러고 문득 떠오른 생각.
'왜 그 동안 나는 맨몸으로는 시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결국 내 목표는 맨몸으로 풀업을 하는 건데, 계속 보조를 받는 상황에서의 보조 중량을 줄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저 중량으로 몸을 당기는 것이 가능했다면 당연히 이제는 맨몸으로 시도를 했어야 하는데, 맨몸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수단과 목적이 완전 전이된 이상한 상황에 나를 던져놓고, 내가 정체되었다고 징징대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 다음 날, 비장한 마음으로 중량 보조 없이 맨몸으로 몸을 끌어 올려보기로 했다. 못 올라가면 어쩌나, 살짝 가슴이 뛰었다. 여기서 못 올라가면 진짜 좌절할 것 같은데, 걱정도 앞섰다. 보조 친업도 진전이 없는데 맨몸으로도 실패하면 기가 확 꺾일 것 같았다. 바를 몇 번이나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휴, 이게 뭐라고 심호흡도 여러번 했다. 실패하면 어쩌나, 실패하지 말자 여러번 마음도 다 잡았다. 언더그립으로 야무지게 잡고, 집중하고 올라가보자아!
이 날, 나는 맨몸으로 친업을 성공했다. 무려 3개나! 심지어 생각보다 매우 가볍게 올라갔다. 불과 어제까지도 보조 친업이 힘들다고 울상이었는데 맨몸으로 이렇게 성공하게 되다니, 성공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혼자서 어찌나 뿌듯하던지 계속 실실대며 웃었던 것 같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헬스장 인구 밀도가 낮아, 조커처럼 미소짓는 내 모습을 본 사람은 다행히 없었다.
이 날 이후 나는 연습하는 방법과 습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맨몸 풀업을 하고 싶으면, 맨몸 풀업을 연습해야 한다. 다른 보조적인 연습을 할 수는 있지만 결국 내가 이루고자 하는 그 목적을 잊으면 안된다. 그래서 나는 되든, 안되든 그때부터 풀업을 연습하게 되었다. 당연히 못 올라갔고, 그럴 때면 다시 중량 보조 풀업이나, 점프해서 올라간 다음 네거티브 풀업을 연습했다. 예전처럼 늘지 않는다고 징징대지 않았고, 그냥 상체 운동하는 날의 일반적인 루틴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평온함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그래도, 징징거리는 순간은 와버렸다. 2025년 4월 말, 도대체 나는 풀업이라는 건 할 수 있는 몸이 아닌가보다 진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왔다. 풀업 하나 하겠다고 지금 몇 달 째 뭐하고 있는 걸까 싶어서 일주일 정도 아예 풀업 연습을 접기도 했다. 그때 또 시기 적절하게 운동 선생님이 한 마디 하셨다.
"그런데요. 운동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확 되기도 해요. 몇 달 동안 안되던 게, 어느 날 갑자기 몇 개를 성공하는 식으로요. 제 경우엔 데드 특정 중량이 그랬어요."
그리고 또 그 다음 날 나는 또 랙 앞에 섰다. 이번엔 야무지게 오버그립을 잡았다. 긴장된 마음으로 벌 서듯 한참을 서 있었다. 못 올라가면 어쩌나, 못 올라가도 좌절하지는 말아보자, 이게 안되면 이제는 도대체 뭘 연습해야 하나, 살을 빼야하나, 이두 삼두 운동을 해야 하나. 머릿 속에 온갖 생각이 가득차서 도저히 다른 생각을 못 할 정도였다. 이게 뭐라고, 못 올라갈 까봐 겁이 났다. 못 올라간다고 다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다치는 것도 아닌데 겁이 난 건 도대체 뭐였을까. 나에 대해 실망할까봐? 앞으로의 방향성을 잃을까봐? 운동할 때마다 늘 궁금했다. 내가 이걸 못한다고 파산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겁은 왜 나는 걸까? 실패하면 기분이 안좋을까봐?
생각은 이정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당겼다. 어, 왜 올라가지? 올라갔다! 친업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생각보다 가볍게. 그리고 심지어 2개나 성공했다. 물론, 왼쪽 어깨가 조금 불안정하다는 선생님의 코멘트가 있었지만 뭐, 그래도 성공했다는 기쁨에 정말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 정도 어찌나 뿌듯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2025년 6월. 나는 아직도 맨몸 풀업을 2개 밖에 못한다. 가끔은 1개만 가능할 때도 있고. 그래서 요즘 다시 보조 친업/풀업과 네거티브 친업/풀업을 정말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있긴하다. 맨몸 풀업 10개 성공 목표, 그리고 나중에는 중량 풀업까지 도전하는 게 지금 목표.
가끔, 내가 왜 이 하루하루 살기에도 바쁜 세상에서 이런 목표를 자꾸 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뭐라고. 풀업해서 뭐하고, 중량 풀업해서 뭐하고, 물구나무 풀업해서 뭐 할 건데?
그 답은 운동하면서 매일 매일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 지금 정도에서 드는 생각은, 신체의 강인함에서 정신의 강인함이 솟아날 수도 있겠다는 어렴풋한 확신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운동을 하고 몸이 강해지면서 내 삶 자체가 단단히 다져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같은 것도 생기고, 상황에 너무 쉽게 무너지지 말자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도 갖게 되는 것 같고. 뭐, 개똥철학이겠지만.
아무튼 풀업 한 번 성공하는데 다섯 달이나 걸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