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을 내려놓는 마음

데드리프트에서의 효율 vs 통제력

by 박보라

누구나 그런 날이 있다. 가벼운 맘으로 헬스장엘 갔는데, 무거운 짐만 잔뜩 지고 나오게 되는 날. 오늘 오전, 딱 한 시간만 가볍게 몸을 풀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헬스장에 들어섰다. 가볍게 어브덕션 하고, 루마니안 데드하고, 원레그 데드리프트 해야지, 루틴을 구상하며 운동화를 갈아 신었다. 그러다 루마니안 데드 자세를 체크했는데 어,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다. 자연스레 이날의 주인공은 '데드리프트'가 됐다. 그러면서 모든 게 다 꼬였다. 루틴도, 기분도. 데드리프트 자세라는 늪에 빠져 출근시간 직전까지 총 두 시간이나 꼬박 바벨 하나와 씨름하게 됐다.


헬스를 좀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운동을 시작한 지 좀 되고, 나름대로 고중량의 맛을 알기 시작하면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 나 역시 그랬다. 80kg 정도는 거뜬히 들어 올린다 믿었고, 운동 선생님의 지도와 수많은 유튜브 영상, 그리고 이론서들이 뒤섞여 내 자세는 꽤 견고하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행여 조금 잘못되더라도 내가 알아서 바로 잡을 수 있다,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오늘의 바벨은 조금 버거웠다. 사실 머릿속에서도 이미 궤적은 무너졌다. 몸은 당연히 삐걱거렸고. 어깨는 자꾸만 앞으로 쏟아지고, 무게 중심은 갈 곳을 잃고 허공을 헤맸다. 팔 힘으로 억지로 쇳덩이를 끌어올리는 내 투박한 실루엣과 말리는 허리를 볼 때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1년을 넘게 배웠는데 이게 내 자세라고..?'


처음엔 덤덤했다. 다시 잘 고칠 수 있다, 마음을 바로 잡았다. 그러다 점점 시무룩해졌고 자세를 수정해야겠다 다짐한 마음과는 완전히 달리 움직이는 내 몸을 보니 점점 얼굴에 열이 올랐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남들에게 '운동 좀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단 욕망, 기본은 이미 진작에 마스터했다는 착각이 무너지면서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다.


특히나 마음이 상했던 건 숫자의 배신. 자세를 생각대로 이리저리 고쳐 잡자, 내 마음속의 기록이었던 80kg은 커녕 70kg도 꿈쩍하지 않았다. 평소 워밍업 수준이라 생각했던 60kg 조차 다섯 개 채우기도 버거웠다. 엉망인 자세로 쩔쩔매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내 운동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마 운동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이런 현타의 순간이 오리라 생각한다. 무게라는 숫자에 취해 정작 근육의 정직한 결을 잊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벨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그 60kg의 무게 앞에서 굉장히 작아지고 있었다.


자세는 잡히지 않고 시간은 흐르는데, 내 머릿속에선 두 가지 목소리가 싸우기 시작했다. 바벨을 적당히 내렸으면 마지막은 조금 퉁, 하고 내려놓을까 하는 생각. 아니면 바닥까지 끝까지 통제하며 살포시 내려놓을까 하는 생각. 드랍이냐, 컨트롤이냐.


사실 내 솔직한 취향은, 움직임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완전히 견뎌내는 것이 진짜 완성이라는 것에 더 무게가 실렸다. 무게를 이동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량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그런 고집 같은 게 있다. 처음 배울 때 그렇게 배우기도 했고. 중력을 끝까지 견뎌내고 바벨을 소리 없이 바닥에 안착시켰을 때. 그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컨벤셔널 데드리프트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60kg의 조용함을 택하기로 했다. 비록 땀범벅이 된 채 출근 시각에 쫓기게 됐지만, 무거운 바벨이 바닥에 닿는 순간의 작고 귀여운 '톡', 소리가 내게는 그 어떤 무게보다 큰 성취감이라는 걸 반복된 연습 중에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비틀거림 속에서 끝까지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 시간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빚어낼 걸 아니까.


그리고 결론 하나에 도달했다. 나는 뭐든 마지막에 퉁, 놓아버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끝까지 부들거리면서 잡고 있는 독함을 품은 사람이라는 걸. 운동에서는 뭐가 맞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효율과 통제력 중에 고민하던 중에 이처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기어이 조심스레 톡, 내려놓고 싶은 사람이었던 거다. 내가 데드를 하는지 아무도 모르도록 조용하게, 플레이트 밑에 있는 계란을 지키는. 미련함인지, 쓸떼없는 고집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2026년 2월 현재 버전의 나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오늘의 운동에서 자존심은 좀 상했다. 동시에 내 바벨을 내 통제하에 내려놓는 법에 대해 다시 한번 복기하게 됐다. 상처 입은 자존심과 함께 나의 진짜 무게를 들고 헬스장 문을 나섰다. 내일은 내려놓은 '톡' 소리를 좀 더 정교하게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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