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측성 운동을 하다가
인체는 기하학적 대칭을 지향하지만, 실제론 거의 비대칭에 가깝다. 나 역시 마찬가지. 벤치프레스를 할 때면 바벨은 매번 왼쪽으로 미세하게 기운다. 수평을 맞추려 애써봐도, 내가 보는 것과 근육이 느끼는 감각 사이에는 늘 미세한 차이가 있다. PT를 받을 때면 "오른쪽은 타이트하고, 왼쪽은 약하다"는 진단을 반복해서 듣는다. 오른쪽은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지쳐 있고, 왼쪽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린 상태. 이 불균형은 한 팔씩 덤벨 로우 같은 종목을 해보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오른쪽이 수월하게 해내는 횟수, 왼쪽은 기어이 다 채우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래서 요즘 나는 편측성(Unilateral) 운동을 즐겨 한다. 누군가는 좌우 힘의 균형을 잡는 기술이라 말하지만, 내게는 내 몸의 정직한 실력을 마주하는 시간에 가깝다. 방식은 단순하다. 약한 왼쪽부터 시작하고, 왼쪽이 간신히 수행한 횟수에 맞춰 오른쪽의 횟수를 제한한다. 오른쪽으로 아직 몇 개를 더 할 수 있더라도 왼쪽이 수행한 횟수가 되면 기꺼이 덤벨을 내려놓는다. 강한 쪽의 능력을 뽐내기보다 약한 쪽의 수준에 전체의 기준을 맞추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근육의 밸런스를 잡는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 몸의 취약한 지점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각오 같은 걸로 진화했다.
혹시 당신도 헬스장에서, 혹은 일상에서 문득 깨닫게 되는 자신만의 약한 쪽이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그럴 때 나는 보통 잘하는 쪽을 앞세워 부족한 쪽을 가리거나(가끔 힘을 과시하고 싶을 땐 오른쪽을 무리해서 쓰기도 했다ㅎㅎ), 약한 부위를 고쳐야 할 고장 난 기계처럼 취급하곤 했다. 하지만 편측성 운동은 그 약한 부위가 내 몸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부위의 속도에 전체를 맞추는 기다림과 절제를 알려준다.
이런 물리적 감각은 자연스레 마음의 궤적으로 이어진다. 살다 보면 유독 약해지는 마음의 결이 있다. 따뜻한 눈빛이나 다정한 미소에 한껏 고무되었다가도, 예상치 못한 거리감이나 사소한 반응에 한순간 허물어지는 마음들. 타인의 태도에 따라 내 평온의 수위가 결정될 때면, 내 안의 이 연약한 부분이 못내 버겁게 느껴지곤 한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일에 왜 나만 이렇게 출렁이는지, 내 마음의 한쪽은 왜 이토록 지지대 없이 흔들리는지.
하지만 운동을 하며 배웠다. 비틀거리는 왼쪽을 잘라낼 수 없듯이, 쉽게 실망하고 흔들리는 마음 역시 버려야 할 고장이 아니라는 걸. 인생에서의 편측성 운동은 결국 내 안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방치하지 않고, 그 속도에 맞춰 나를 정성껏 키워가는 과정이다. 타인에게 흔들리는 나를 자책하며 힘들어하기보다, 그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고 그 부위에 더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는 일. 이처럼 물리적 교정이 마음의 궤도와 같이 움직이는 것을 볼 때면 운동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싶다.
강한 자아의 힘으로 연약함을 억누르는 것은 진정한 균형이 아니다. 무너지는 쪽의 감각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 부위가 단단해질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훨씬 더 지적이고 근사한 단련이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왼쪽 덤벨을 먼저 들었다. 오른쪽이 더 들 수 있다고 유혹해도, 나는 왼쪽이 멈춘 지점에서 기꺼이 멈췄다. 가장 약한 지점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 단순하고도 정직한 반복이 결국 나를 가장 온전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당신에게도 유독 서투르고 자주 무너지는 왼쪽같은 마음이 있는지 묻고 싶다. 타인의 눈빛 한 번에 무너지는 자신이 실망스럽다면, 오늘은 그 마음을 고치려 애쓰기보다 그 흔들림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는 건 어떨까. 강함에 집착하며 힘을 과시하는 대신, 약한 지점의 결핍을 묵묵히 메워가는 일. 그 조용한 반복이 결국 존재의 밀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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