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거울 땐, 스쿼트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완벽히 증발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거주지에서 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동네의 헬스장을 찾는다. 입구에서 일일권을 결제하며 가장 먼저 안도하는 건, 이곳엔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삐져나온 뱃살이나 세월에 내려앉은 민낯의 부끄러움을 가릴 필요가 없는 곳. 그 완벽한 익명성에서 나는 비로소 표정을 벗을 수 있다.
스트레칭도 대충 하고 곧장 파워 랙(Rack) 앞으로 향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 위로 한 주간 나를 짓눌렀던 일들이 겹쳐 보였다. 마음엔 심해에서 갓 건져 올린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다. 차갑고 눅눅하며 지독하게 무거운 덩어리. 빈 바벨엔 이 정도의 무력감과 우울을 담을 수 없다. 내 슬픔을 초라하게 만들 가벼움은 참을 수 없지.
나는 양옆에 20kg 원판 두 개를 끼우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5kg을 하나 더 덧붙였다. 총 중량 70kg 스쿼트. 바벨 아래로 몸을 밀어 넣고 어깨를 단단히 조이자 쇠의 질감이 차갑게 닿았다. 묵직함이 몸을 짓누르자, 그제서야 마음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70kg의 무게가 내리누를 때, 일상에서의 일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깔리지 말고, 기어이 한 번만 올라와 보자는 결심만 남는다.
나는 70kg를 들지 못한다. 이날도 못 들었고. 사력을 다해 힘을 모았지만 세 번의 시도 모두 바벨에 깔리고 말았다. 한 번 깔릴 때마다 플레이트를 빼고, 바벨을 다시 올리고, 원판을 끼우는 번거로운 노동이 뒤따른다. 스스로 원판 셔틀을 자처하며 실패의 흔적을 치우는, 그 미련한 반복 끝에 벤치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옆 랙에서 운동하던 남자가 무심하게 시선을 던졌지만, 이내 거두었다. 그 무심함이 고마웠다. 헬스장은 아마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고통스러운 표정’이 일반적인 곳이지 않을까. 눈물을 닦는지 땀을 닦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완벽한 무관심. 이런 보호막 속에서 나는 비로소 안전하게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무게를 55kg으로 낮췄다. 한 번, 두 번, 바벨을 밀어 올릴 때마다 무거운 물고기처럼 눅눅했던 우울의 조각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운동이 끝나고 샤워실을 나오며 거울을 본다. 슬픔의 원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헬스장을 나서면 다시 가면을 써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적어도 한 시간 동안 나는 익명의 랙 뒤에 숨어 마음껏 우울해 했다. 70kg의 중량에 깔리고 다시 그것을 정리하던 비루한 사투가 전부였던 시간을 도구 삼아.
다시 가방을 메고 낯선 헬스장의 문을 나선다. 낯선 곳에 가느라 목욕용품을 잔뜩 챙겨서 그런지, 가방이 유독 묵직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낯선 동네의 헬스장 불빛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 도시의 수많은 파워 랙 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물고기를 들고 숨어들어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의 중력을 견디기 위해, 가끔은 더 무거운 것들 아래로 스스로를 밀어 넣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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