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스쿼트 중량과 횟수를 줄이며
바벨 앞에 서면 본능적으로 원판의 개수부터 살핀다. 지난주에 얼마의 중량을 들었으니 오늘은 그보다 조금 더, 적어도 그만큼은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매일매일 무거운 무게에 짓눌려 얼굴이 붉어지고 온몸이 떨릴 때야 비로소 오늘도 제대로 운동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운동 선생님이 내 스쿼트를 지켜보더니 흐름을 끊었다.
“음,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처음부터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라고? 이제와서?'
그동안 공들여 쌓은 시간, 숫자가 한번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바벨에 꽂힌 원판들을 걷어냈다. 힘을 마음껏 쓰지 못한다는 답답함, 무엇보다 텅 빈 바벨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묵직한 중량을 다루는 사람들 틈에서 가벼운 막대기 하나를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이 뒤처지는 것처럼 보였다. '쟤는 매일같이 헬스장 출근하는데. 어머, 빈 봉이야?' 할까봐 얼굴에 열이 살짝 올랐다.
점점 뼈대를 드러내는 바벨을 보며 마음이 상했지만 이상하게 안도감도 들었다. 아, 이제 힘을 조금 덜 써도 되려나, 싶었다. 빈 바벨이 반갑기도 했고. 아마, 이루고는 싶었지만 어깨에 올라앉은 부담도 적지 않았나보다. 그렇게 마음의 무게도 조금씩 줄었다. 그렇게 빈 바벨만 남았을 때였다.
“더 들 수 있을 때 멈추는 게 진짜 실력이에요. 실패 지점까지 가서 무너지는 건 누구나 해요. 하지만 자세를 지키기 위해 적당한 지점에서 멈추는 건 감각이 있어야 가능하거든요. 그 멈추는 감각을 찾아봅시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빈 바벨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다. 평소라면 느껴지지도 않았을 무게였는데, 자세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천천히 내려가니 몸 여기저기서 압박감이 전해졌다. 몸을 단단히 잡고 끝까지 내려가고, 수면 위로 올라오며 숨을 참는 사람처럼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것.
풀 스쿼트 네 번의 반복.
평소 같으면 열 번을 넘기면서 안전바에서 쓰러졌을 횟수를 기어이 줄여나갔다.
더 많이, 더 무겁게 할 수 있다는 욕심이 울컥 올라왔지만, 그때마다 바벨을 랙에 걸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멈추기 시작하자 공간이 생겼다. 무너지는 무릎이 보였고, 흐트러지는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앞으로 쏟아지는 상체도 마치 제 3자가 나를 보듯 관찰하게 되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일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움직임의 궤적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왜 끝까지 가야만 직성이 풀렸을까.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늘 방전될 때까지 자신을 몰아세웠을까. 멈추는 감각은 포기나 퇴화가 아닐 지도 모른다. 다음을 위한 에너지를 남기는 현명함,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절제일 수도 있겠다.
운동이 끝나고 나니 땀은 평소보다 적었지만, 마음의 밀도는 훨 높아진 기분이 들었다. 가벼운 무게를 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내 상태를 모른 채 무게에 휘둘리는 것이 아닐까.
헬스장을 나오며 텅 빈 바벨을 들고 멈추는 법에 대해 생각했다. 해방감이 들었다. 이제 설 연휴다. 숨가쁘고 아팠던 겨울을 잠시 내려두고 연휴간 천천히, 템포를 낮춰 내 삶의 생각과 움직임을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 풀 스쿼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연적이었던 경량화와 진중한 느긋함. 그 템포를 일상에도 적용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 온 것 같다.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살다 보면 그런 시기는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일까. 정렬을 새로 맞추고 마음가짐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뜻일까.
가진 걸 다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말. 어쩌면 지금 내 능력의 한계에 도달했고, 그 벽을 넘기 위해 나를 구성하던 잘못된 나사들을 다시 조여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내가 더 무거운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이 숨을 고르는 시간. 무조건 잘 견뎌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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