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와 방관
오전 10시의 헬스장은 늘 붐빈다. 근력 운동을 하는 사람, GX에 참가하는 사람, 트레드밀 위를 하염없이 뛰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동네의 헬스장은 넓은 편이지만 오전 10시~11시엔 인구 밀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사람들의 거친 호흡과 쇳덩이가 부딪히는 금속음이 섞이는 시간대. 겨우 비어 있는 평벤치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위치는 영 애매했다. 천장의 LED 조명이 수직으로 쏟아지는, 취조실 같은 자리. 덤벨 체스트 프레스를 하기 위해 벤치에 누웠고, 조명은 기다렸다는 듯 내 시야를 정면으로 찔렀다.
덤벨 체스트 프레스는, 아직까진 내가 궤적을 꽤 신경써야 하는 운동이다. 바벨과 달리 두 팔이 독립적으로 휘둘리듯 움직이기에, 공중에서 그리는 선을 눈으로 확인하며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하지만 미간 위에서 바로 쏟아지는 빛이 내 시야를 멀게했다. 궤적을 확인해야 할 결정적인 지점에서 눈을 찌푸리게 되면서, 흔들리는 팔을 감각으로만 간신히 붙들어야 했다. 시야가 차단된 채로 중량을 잡아내는 일. 그건 평소보다 배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무게를 밀어 올리는 동안, 균형은 다 깨지게 됐고.
운동할 때, 조명은 항상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지금 팔의 각도가 알맞은지, 근육의 수축이 과연 정점인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 가시광선의 파장은 근육의 떨림과 습관을 낱낱이 살펴보는 듯 하다. 밝은 빛 아래에서 내가 간파당했단 느낌이 강해질수록, 내가 든 덤벨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빛의 정교한 관찰이 몸의 리듬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나는 하얗게 먼 시야 속에서 실감했다. 광원의 반응은 그날따라 집요했다. 세트 사이의 휴식 시간마다 빛의 잔상이 머물렀고, 망막에 남은 그 잔상은 운동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지표처럼 애써 광원을 피하고 있는 나를 쫓았다.
자리를 옮기며, 나를 비추던 조명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날따라 유난히 밝았던. 하지만 그 빛이란 건, 성장과는 관계없이 밝기만 있고 질량은 없는 물리적 현상일 뿐이다.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 수많은 시각적 질문들. 허공에 뿌려지는 차가운 환대같은 것들.
헬스장 전체를 평등하게 비추는 그 조명. 내가 눈을 찌푸리는 사이, 유독 그 빛의 중심에서 찬란하게 움직이는 다른 궤적을 발견할 때가 있다. 단 한 점의 어긋남이 없는 타인의 움직임. 빛이 마치 그를 위해 설계된 것처럼, 그는 어떤 눈부심도 느끼지 않는 듯 우아하게 무게를 다룬다. 그 풍경을 마주하면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린다. 서툰 내 모습과 흔들리는 움직임이 그 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싫다. 그래서 조명의 사각지대로 발길을 옮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밝기 속에 머무는 것은 눈을 멀게 할 뿐. 내가 결코 기댈 수 없는 빛이 타인을 더 눈부시게 만드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그날따라 유독 피로했다.
화려한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어두운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내 시야를 방해하며 질문을 퍼붓던 무심한 광원이 더는 내 움직임을 흔들지 못하게. 그렇다고 해서 영영 이 사각지대에 머물고 싶은 것은 아니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쓸쓸함을 견디며 그림자를 다듬는 건, 역설적으로 다시 그 빛 아래 서기 위해서다.
그 빛 아래에서 단단하고 예쁜 수직의 선을 언젠간 그릴 수 있을까. 무책임한 질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밀어 올리는 대답으로 그 빛을 온전히 받아내고 싶다. 그때가 오면 사각지대를 벗어나 가장 밝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나 자신을 담담히 마주할 수도 있겠지. 더는 눈이 부시지 않은 채로. 내가 만든 완벽한 수직의 궤적을 스스로 바라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무심한 빛의 공허한 환대보다, 그 정직한 성취가 훨씬 더 나를 따뜻하게 해 줄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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