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간의 딥스 연습
자주 가는 우리 동네의 헬스장. 프리웨이트 존이 좁은 편은 아닌데, 사람이 많다보니 밀도가 높다. 지난 1년 동안 내 가슴 운동의 첫 루틴은 그 구역 가장 안쪽에 평벤치를 셋팅하면서 시작됐다. 구석 특유의 폐쇄성이 좋았다. 벤치에 누우면 다른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대개 누군가 차지하고 있었다. 비었네, 생각해서 근처로 다가가보면 그 벤치 옆에는 항상 물병이나 수건이 놓여 있다. 그 물건들은 조용하게 '접근금지', '점유'를 외치고 있었다.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쓸 수 없는 전용석. 알 수 없는 물병 주인의 루틴이 수행될 곳. 그 루틴은 외부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겠지. 나는 대체로 그 주변을 서성이다 결국 발길을 돌리곤 했다. 프리웨이트 존의 밀도를 더이상은 견디지 못한 어느 날, 나는 덤벨 대신 반대편 구석의 딥스 머신을 선택했다. 프리웨이트 존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먼 곳이었다.
덤벨 체스트 프레스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중량을 밀어 올리는 '기댐'의 운동이라면, 딥스는 공중에 뜬 채 오직 두 팔로 체중을 견뎌야 하는 '자립'의 운동이다. 지탱해 줄 등받이도, 방향을 잡아줄 보조자도 없는 운동. 딥스 바를 움켜쥐는 순간, 나는 내가 원하던 루틴에서 완전히 튕겨 나갔음을 실감했다. 애초에 내 자리인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자리에서 밀려났고 그걸 인지한 상태로 딥스 바를 잡았다.
가슴 딥스는 일반적인 딥스보다 상체를 더 깊게 숙여야 한다. 중심을 잡지 못하면 몸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은 어깨의 통증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이렇듯 딥스의 역학은 가혹하다. 벤치 근처를 서성이며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했던 나는 딥스 바 위에서 영 힘을 쓰지 못했다. 등을 기대고 편안하게 무게를 밀어내려던 계획이 무너진 자리. 나는 내 몸의 실질적인 무게를 상체의 힘만으로 들어야 했다. 벤치 옆에 놓인 타인의 소지품을 원망하는 대신, 공중에 뜬 채로 나 자신을 지탱하는 법에 집중해야 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다칠테니까.
그렇게 밀려난 마음으로 연습한 가슴 딥스. 한 달 반 정도 됐나. 그 사이 가슴 딥스가 조금 늘었다. 벤치에 기대어 무게를 밀어내던 가슴 근육은 이제 내 체중을 밀어 올리는 하부 가슴과 삼두근의 협응으로 대체됐다. 좋아하던 구석자리의 벤치가 허락하지 않았던 안온함이 반대편의 기구에서 성장이란 예상 외의 결과물로 돌아온 셈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프리웨이트 존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벤치 옆에 놓인 타인의 물병을 보며 씁쓸함을 삼키지도 않고. 사실, 내가 바라는 궤적이 항상 내 성장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밀려난 자리에서 묵묵히 기를 수 밖에 없는 근력. 이건 타인에게 기대하는 평온함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쓸모가 있다.
운동 루틴은 종종 계획과 다르게 수정된다. 그러나 계획의 수정이 곧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벤치에 눕지 못해 등 떠밀리듯 시작한 딥스는 나에게 자립의 기쁨을 알려주고 있다. 누군가 비워줄 자리를 기다리는 소모적인 시간보다, 스스로를 들어 올리는 찰나의 수축과 이완이 훨씬 더 가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물병들이 점유하고 있는 벤치를 뒤로하고 구석에서 바를 밀었다. 그곳이 비록 밀려난 자리일지라도, 나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자리란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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