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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 스트리트 파트1 : 1994

영리한 현대식 감각의 슬래셔 호러

by 원일


※ 해당 작품은 NETFLIX에서 관람 가능합니다.



이번 주는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도 없었고, 바빠서 어딜 갈 틈도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선택해 보고, 급하게 글을 쓴 작품이 피어 스트리트 파트 1: 1994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슬래셔 호러가 한창 유행했었는데, 10대들이 살인마에게 쫓기는 설정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시작은 할로윈이었다. 이후 13일의 금요일, 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캠퍼스 레전드 같은 작품들이 줄지어 개봉했고, 슬래셔 장르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호러 장르의 주류는 점차 심령 호러 쪽으로 옮겨갔다.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되면서, 슬래셔 영화는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코미디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로 변주되기 시작했다. 스크림 시리즈 이후 슬래셔 장르는 자기반영적이고 아이러니한 유머를 담으며, 공포와 웃음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공포영화 3부작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보통 슬래셔 호러 시리즈에서 자주 언급되는 법칙인데,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내용 전개와 연출 방식이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는 의미다.


1편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다. 세계관과 주요 설정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살인마나 괴물의 정체가 공개된다. 신선하고 강렬한 공포가 극대화되면서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남긴다.


2편에선 세계관이 확장되고, 살인은 더 잔인해진다. 첫 번째 영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규모가 커지고, 등장인물도 더 늘어난다. 살인마의 기원이나 동기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폭이 넓어지고, 스릴러적 요소도 강화된다. 공포의 강도는 배가되고, 피의 양도 많아진다. 희생자도 많아진다. 그만큼 1편을 능가해야한다는 욕심이 큰거다.


3편은 보통 시리즈의 결말을 짓거나, 기존의 설정을 뒤집는 시도를 한다. 그동안 쌓아온 비밀이 드러나거나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때로는 이야기를 끝내기보단 아예 새로운 설정을 추가하거나, 시리즈 자체를 뒤집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초자연적 요소가 과하게 개입되거나, 시간여행이나 미래 설정 같은 파격적인 시도가 들어가기도 한다.


이 법칙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장르의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식 같은 건데 슬래셔뿐만 아니라 액션이나 SF 시리즈에도 종종 이 공식이 적용되기도 한다. 공포영화의 3부작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이렇게 패턴을 알고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 이야기가 왜 나오냐면, 지금 볼 피어 스트리트가 3부작으로 나뉘어지는 이야기이다. 과연 클래식한 법칙들이 이어지는 지에 대해서 보려고 한다.



피어 스트리트 파트 1: 1994는 공포영화 3부작의 법칙 중 첫 번째인 "세계관의 구축과 강렬한 첫인상"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몇 가지 독특한 변주를 시도한다. 오프닝 시퀀스는 전형적인 슬래셔 장르의 감각을 그대로 가져온다. 어두운 몰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은 스크림을 연상시키는 클래식한 방식으로 시작되며, 긴박한 추격과 잔혹한 결말로 이어진다.


그러나 전통적인 슬래셔 영화와 다른 점도 분명하다. 보통 슬래셔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살인자의 정체나 동기가 어느 정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스크림의 고스트페이스처럼 전화로 위협하거나,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처럼 상징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식이다. 반면, 피어 스트리트의 오프닝에서는 살인자의 동기가 전혀 설명되지 않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행동만 보여진다. 이는 단순한 인간의 광기나 원한이 아니라, 더 거대한 저주나 미스터리가 얽혀 있음을 암시하며, 초자연적인 불안을 서서히 조성한다.



또한, 세계관을 드러내는 방식도 흥미롭다. 일반적인 슬래셔가 특정 공간(캠프장, 고등학교 등)에 국한되어 전개되는 반면, 피어 스트리트는 도시 전체에 퍼진 저주의 흔적을 좇는다. 살인마가 단일 인물이 아닌 여러 시기로 확장되며, 이들이 어떤 이유로 다시 깨어나는지에 대한 실마리는 1편에서 모두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할 미스터리를 남기며,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을 주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단점이라면 전반부의 속도감이 후반부에서 쳐지는 느낌인데, 이미 제작이 확정되고 연작으로 이어지는 후속이 있기에 많이 더딘 느낌이 있다.


피어 스트리트 시리즈는 전통적인 슬래셔 호러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PC주의와 LGBT 서사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품이다. 특히 1편인 1994에서는 주인공 디나와 그녀의 연인 사만다가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닌, 이야기의 중심 축으로 자리 잡는다. 기존 밀레니엄 슬래셔 영화들이 주로 이성애 커플들이 나오고 생존 싸움을 그려왔다면, 피어 스트리트는 성소수자 커플의 관계를 핵심 갈등 요소로 내세운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려는 강한 유대감으로 작용하며, 영화의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또한, 피어 스트리트는 PC주의를 반영해 다양한 인종과 성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들을 주요 인물로 내세운다. 디나가 흑인과 히스패닉의 혼혈로 설정된 것부터, 주변 인물들이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고 서사를 이끌어가는 모습은 기존 슬래셔 영화들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다. 90년대 감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잃지 않은 균형 잡힌 연출인데, 과한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닌데, 뒷편들은 또 어떤 느낌일런지


전통적인 슬래셔 오프닝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살인자의 명확한 정체를 감추고 저주라는 미지의 공포를 심어놓음으로써 세계관의 신비감을 유지했다. 이 신비감은 단순한 '도망치고 죽는다'의 반복이 아닌, 연쇄된 저주와 과거의 비밀을 추적하는 서사로 확장되며, 공포영화 3부작의 첫 번째 법칙을 영리하게 심령과 슬래셔를 잘 버무려서 현대적으로 해석해냈다.


피어 스트리트 프롬퀸 공개를 앞두고 파트 1을 주행하게 됐다. 1편은 90년대 청춘 슬래셔의 전형을 답습하면서도, 살인자의 명확한 동기 없이 홀린 듯한 행동을 보여주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남겼다. 그렇다 보니 2편과 3편이 담아낼 시대상의 호러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기대가 된다. 2편은 70년대 캠프 슬래셔 같은 느낌이고, 3편은 1600년대 마녀사냥을 다룬다고 하니, 각 시대별 공포 코드가 어떻게 변주될지 궁금하다. 이번 시리즈가 단순한 복고풍 오마주에 그칠지,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지 눈여겨봐야겠다.



그리고 프롬퀸은 포스터만 봐도 여대생 기숙사의 느낌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스티븐 킹의 캐리의 오마주도 있지 않을까 한다. 프롬퀸 하면 돼지 피를 뒤집어쓴 초능력 소녀 캐리가 프롬퀸 그 세계의 아이콘 같은 존재니까, 이번 작품도 그 당시 유행한 스타일 오마주가 있을 것 같다. 특히, 시대별로 공포의 결이 잘 살아난다면, 피어 스트리트 시리즈의 완성도가 더 올라갈 것 같다. 다음에 파트2와 파트3를 보고 한번 더 후기를 적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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