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흔의 연대감, 공동체, 그리고..
◇ 본 영화는 최대한 스포일러, 내용을 모르고 보시기를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오늘 쓰는 글은 조금 설명 안에 작은 디테일이 들어가 있어 스포성으로 느껴질 수 있으니 보실 예정이신 분은 BACK 해주셔도 됩니다. ◇
씨너스를 보고 왔다. 아침에 브링 허 백으로 이미 너덜 해진 상태였으나, 씨너스가 조조와 극심야로 몰려 거의 상영관이 빠진 상태라 더 미룰 수는 없어 보고 왔다. 미리 말하자면 이 영화 올해 베스트 10안에는 충분히 들만큼 대만족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흑인 형제, 백인 우월주의자 집단(KKK)의 감시 속에서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한편, 그 마을엔 뱀파이어가 숨어 있다. 흑인, 백인, 그리고 뱀파이어 세 집단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과거의 죄와 현재의 정의가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유대감과 큰 재앙을 불러온다.
영화 초반은 캐릭터 소개에 집중된다. 흩뿌려 놓은 인물들이 결국 각자의 서사로 제자리를 찾아가며, 인물 혼동 없이 흐름이 매끄럽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명확한 선이 존재하지만, 그걸 강조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한 동네에서 두 가지의 커뮤니티가 나온다.
흑인 커뮤니티 > 과거의 피해자지만 이제는 땅을 일구며 자리를 잡아가는 존재들. 그러나 내면엔 여전히 과거의 공포가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피해는 연대가 되고, 같은 아픔을 공유를 하고 있다.
백인 집단 (KKK) > 뿌리 깊은 우월주의, 과거의 폭력성과 혐오를 고스란히 이어가는 존재들. 이들은 여전히 공존하지 못한 채로 본인들의 우월성과 폭력성을 유지한다.
여기서 이제 새로운 낯선 이의 존재가 등장한다.
뱀파이어 > 죽은 백인의 외형을 지닌 존재. 단순한 괴물이 아닌, ‘함께 어울리기’를 바라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죽음으로 구원 후 함께하기를 바람. 노스페라투나 다른 뱀파이어 영화와 같이 초대 없이는 들어올 수가 없음.
각각의 설정들이 선과 악이라는 대칭점에서 누구를 나눈다기에는 모호함을 띄우기도 한다. 왜냐면 연대감을 가진 커뮤니티라고 한대도 이들 안에서도 분열은 일어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큰 카테고리에는 큰 카테고리의 상황만 있을 뿐 내부는 또 다르기에, 보는 내내 굉장히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흥미롭기까지도 했다.
그들은 누군가를 해치는 외부의 침입자가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한 죄책감, 억압, 침묵이 형태를 얻어 태어난 존재처럼 느껴진다. 백인의 외형을 가진 이 뱀파이어는
과거 백인우월주의가 만들어낸 폭력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그 폭력에서 상처받은 흑인조차도 그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형제를 갈라놓고, 가족을 해체하며,
구원인지 심판인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죄와 욕망을 직면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뱀파이어는 단순한 외부의 ‘악’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잠재된 고통과 죄의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빼먹을 뻔했지만 다른 공동의 연대인 인디언들도 잠시 등장한다. 인디언은 미국 땅의 원주민이자, 백인과 흑인 모두의 역사적 폭력과 억압 속에서 잊힌 존재로 등장한다. 영화는 그들을 배경이나 상징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역사적 폭력의 잔재를 뒤쫓는 경계자 같은 느낌인데, 한번 봐서 든 생각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미국사람이 아니고, 흑인도 아니고, 인디언도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잘 접근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는 누군가에게는 악몽, 누군가에게는 구원, 누군가에게는 미래가 되는 주체는 음악이었다. 진심이 담긴 음악 안의 연대감이 불러오는 마을 속의 모두의 평등함, 공동 혹은 자신의 욕망, 상흔처럼 남은 사연, 모두의 이야기, 어떠한 모든 것이 진심으로 마음속에 담기기 때문에 이들의 죄, 혹은 상황들이 더더욱 구원이 될지, 심판이 될지 계속 변주가 되고, 하나의 트리거로서 굉장히 잘 이용되지 않았나 싶었다.
개개인의 이야기에서 모두의 이야기로 번져가는 도화선.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서사를 쥐고 있던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영화 속 음악은 단순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이 감춰온 마음 깊은 곳의 진실을 고요히, 혹은 격렬하게 끌어올리는 ‘말 없는 언어’였다. 그리고 사운드트랙의 활용도 또한 굉장히 탁월했다. 씬과 씬 사이를 매끄럽게 이으며, 감정의 정점에서 정확히 제 역할을 해낸다.
개봉 첫 주에 괜히 늦장 부려 특별관에서 보지 못한 나 자신이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먼저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