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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Dec 13. 2015

12. 결혼식은 참으로 곤란한 것


"이렇게 추운 날 결혼식을 하네."


"한 살 더 먹기 전에 장가가고 싶었나 보지 뭐."



올 해의 마지막 결혼식에 다녀왔다. 결혼식장이 몰려있는(?) 동네에 사는 덕분에 거리상으로 멀지는 않았지만, 불편한 옷과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여전히 번거롭다. 오직 결혼식에 갈 때만 입는 이 녀석들을 옷장에 잘 모셔두며 생각했다. 이제 다음 봄에야 보겠구나. 수고했다. 


그렇다. 올해도 참 많이들 갔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몇 년 전부터 많은 청첩장을 받은 것 같은데, 올해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올해 받은 청첩장만 15장이 넘었다. 15명의 지인이 평생의 짝을 만난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결혼식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싫어한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두려워한다. 15개가 넘는 초대 중에서 내가 직접 찾아가 끝까지 있었던 결혼식은 딱 4개였다. 이것도 대단히 많은 수치다. 작년까지는 1년에 1~2개 정도였다. 


보통 나는 청첩장을 주기 위해서 보자고 연락이 오면, 미안하지만 다 같이  보기보다는 잠깐이라도 따로 보자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축하를 하면서 축의금을 준다. 그렇게 직접 만나서 축의금을 주면, 보통 금액을 더 많이 넣어야 한다. 봉투가 뭉탱이로 있을 때야 잘 드러나지 않지만, 따로 주면 바로 보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직접 보자고 하는 이유는, 이 결혼에 대해서 그 사람에게 듣고, 내 축하를 진지하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의 친구로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다. 이 것이 결혼식에서 가능하다면, 결혼식장에 가서 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결혼식에서는 불가능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게 결혼식은 참으로 곤란한 것이다.


내가 결혼식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서 깊은 '소외'를 느끼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는 참석하는 하객들사이에 위계가 정해진다. 결혼을 하는 당사자를 중심으로 가족, 친지, 부케를 받고 드레스룸에 같이 있을 정도로 친한 친구들, 적당히 친한 친구들, 동료라서 어쩔 수 없이 온 사람들, 신랑 신부랑은 생전 처음 보는 부모님의 손님들...  신랑과 신부와의 개인적인 관계는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적당한 나의 위치를 받아들이며, 적당히 앉아있다가 밥을 먹고 나와야 한다. 어느 결혼식 장에는 그 위계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자리 배치까지 정해져 있다. 앞에서부터 '친한', 혹은 '중요한' 순서대로 놓여있는 팻말에 맞춰 앉아야 한다. 내가 뭐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혼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정말 축하하고 싶은 그/녀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아닌, '규정' 뿐이다. 


더욱이 내가 축하하고자 하는 신랑, 신부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중에 물어보면 내가 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식은 그야말로  '의례'일뿐, 그 안에서는 어떤 '관계 맺음'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 둘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고,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나는 얼마나 그/녀들을 축복하고 축하하는지, 아무것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부턴가가 결혼식이란 축의금을 내기 위해서 가고, 돈을 냈으니 밥이라도 먹고 오기 위한 자리가 된 것 같다. 식은 보지도 않고,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식당으로 가서 밥 먹고, 신랑 신부에게 인사 한마디 못하고 돌아오는 것이 지금 우리 결혼식장의 풍경이다.  



하객에게 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도 결혼식은 참으로 곤란한 것이다. 


내가 직접 해보지 않아서 다 알진 못하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은 기대와 기쁨보다는, 부담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스드메로 대표되는 결혼의 '코스'들, 청첩장을 돌리고 친지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시간들, 그날 하루를 위해 사용하는 막대한 비용...

결혼식 당일날을 위해서 미친 듯이 다이어트를 한다. (상대적으로 덜하겠지만, 남자들도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당일날 새벽같이 메이크업을 받고, 식장에 와서 정신없이 사람들과 만나고, 사진을 찍고, 식장에 들어간다. "웃으세요~, 웃으세요~"라는 매니저와 사진사의 말에 얼굴에는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고, 불편한 구두를 신고 서 있느라 다리에는 쥐가 나려고 한다. 폐백까지 겨우 다 끝나면, 그제서야 어렴풋이 정신이 돌아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는 기쁨을 만끽할 정신적, 체력적 여유는  온 데  간데없고, 어쨌든 잘 끝났다는 안도감에 지쳐 쓰러진다고 한다. 이것에 당사자들이 경험하는 결혼식이다. 


모든 결혼식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이 너무 재미있었고, 행복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쪽이 소수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소수이다. 

다수에게 결혼식은 설레고 빨리 왔으면 하는 축제가 아니고, 빨리 치러버렸으면 하는 무거운 시험과 같은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런 이유로 결혼식에는 '곤란하다'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게 되었다. 

곤란하다. 

안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는 건 참 어렵고 부담스러운. 







세상의 모든 결혼을 축하하고 축복한다. 


나는 오랜 연애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혼이라는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그녀와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니, 평생을 함께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용기이자 기적 같은 일인지 깊이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누가 결혼한다고 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고 축하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결혼식은 좀 달라졌으면 한다. 








이후에 이 곳에 내가 상상하고 꿈꾸는 결혼식에 대해서 생각나는대로 글을 올리려 한다. 


결혼식이라는 게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결혼식은 부모님들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상상해 볼 수 있지 않는가?!

그 상상이 온전히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기쁘고 설레는 축제 같은 결혼식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인데 말이다.

내 결혼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내고, 언젠가 내 곁에 있을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결혼의 과정을 만들어가고 싶다. 





*너무 부정적인 시각에 기분이 상하신 분들이 있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결혼식을 한 분들도 많다는 것도,

제가 너무 예민한 거라는 것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평소에 느꼈던 것을 글로 표현하다보니 좀 과하다고 느끼신 분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이어질 글들에

결혼을 꿈꾸는 분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결혼하신 선후배 여러분들의 현실적이고 따끔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모두 모두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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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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