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on 2009.01.12
곧 입대하는 친구를 만날 약속을 잡고
오랜만에 군대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그러다가 아주 오래전, 일병 때 살던 방을 찍어놓은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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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부대에 처음 놀러 오던 날, 내 방에 들어와서 "어, 사진에서 봤던 것과 다르네?!"라고 말했다.
(그때 난 상병이었고 방을 다른 곳으로 옮긴 후였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꽤나 오래전에 싸이에 올린 사진인데..
그녀는 내 일상을 찍어놓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았고,
그것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내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내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너무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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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의 나는 행복했고 아름다웠다.
어떻게든 포상휴가를 얻기 위해 미군들도 힘들다는 체력테스트 만점을 받으려고 매일매일 헬스장에 가고 밤에 4~5Km씩 달렸다.
나는 주말밖에 시간이 안되는데, 몇 주 연속 주말에 비가 오는 바람에 하늘을 원망, 또 원망했었다.
주말에 예상치 못한 근무가 생길까 봐 금요일 밤에 외박을 나가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평소엔 3~4일씩 가던 휴대폰 배터리를 하루면 다 써버렸고, 일하는 도중 문자를 보내는데 싱글벙글 웃는 표정을 도저히 감출 수 없어 동료들에게 연애하는걸 들키기도 했다.
그녀에게 줄 꽃을 한 아름 사들고 갈 때면,
지하철과 버스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그 예쁜 꽃들에 다양한 말을 담은 시선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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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아름다웠던 만큼, 여름은 잔인했고.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 대한 원망과 미움,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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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강채이의 '사랑해 바보야'와
DJ Soulscape의 'Love is a Song'을 듣는다.
해변에 파도가 치면,
고운 모래들은 파도에 점점 쓸려가버리고
단단한 돌과 바위들만 남듯이.
원망과 미움, 미련이라는 감정들은
시간이라는 파도에 점점 쓸려가버리고,
이제는 단단한 고마움들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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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기억들이면 충분하다.
고맙다
어여쁜 사람아_
열 세 번째 글은..
2009년 1월, 제가 막 스물 다섯이 되어 썼던 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글을 떠올리게 해 준 진실님과, 글을 먼저 읽고 저에게 용기를 준 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글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스물 다섯의 제가, 서른 하나의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에 남겨 놓는 글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서른 하나에 쓴 이 글들이, 10년 년 후 마흔의 저에게 말을 걸 겁니다.
이렇게 살아가라고, 이렇게 사랑하라고. 그리고 후회하지 말라고.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남겨 놓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찾아가 지금의 당신께 인사드리겠습니다.
* 제가 애독하는 녹차라떼 작가님의 글과 닿아있는 것 같아 공유합니다. 좋은 것들은 나누어요!
(https://brunch.co.kr/@greentealatt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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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