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비 Dec 16. 2015

13. 단단한 고마움



written on 2009.01.12






곧 입대하는 친구를 만날 약속을 잡고 

오랜만에 군대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그러다가 아주 오래전, 일병 때 살던 방을 찍어놓은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떠 올랐다.
 
-

 
그녀가 부대에 처음 놀러 오던 날, 내 방에 들어와서 "어, 사진에서 봤던 것과 다르네?!"라고 말했다.

(그때 난 상병이었고 방을 다른 곳으로 옮긴 후였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꽤나  오래전에 싸이에 올린 사진인데..
그녀는 내 일상을 찍어놓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았고, 
그것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내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내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너무나 행복했다. 
 

-
 
그 봄의 나는 행복했고 아름다웠다. 
 
어떻게든 포상휴가를 얻기 위해 미군들도 힘들다는 체력테스트 만점을 받으려고 매일매일 헬스장에 가고 밤에 4~5Km씩 달렸다.
 
나는  주말밖에 시간이 안되는데, 몇 주 연속 주말에 비가 오는 바람에 하늘을 원망, 또 원망했었다.
주말에 예상치 못한 근무가 생길까 봐 금요일 밤에 외박을 나가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평소엔 3~4일씩 가던 휴대폰 배터리를 하루면 다 써버렸고, 일하는 도중 문자를 보내는데 싱글벙글 웃는 표정을 도저히 감출 수 없어 동료들에게 연애하는걸 들키기도 했다.
 
그녀에게 줄 꽃을  한 아름 사들고 갈 때면, 

지하철과 버스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그 예쁜 꽃들에 다양한 말을 담은 시선을 던져주었다. 
 
-
 
봄이 아름다웠던 만큼, 여름은 잔인했고.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 대한 원망과 미움,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
 


이 아침에, 
 
강채이의 '사랑해 바보야'와 
DJ Soulscape의 'Love is a Song'을 듣는다. 
 
 
 

 

해변에 파도가 치면,


  
고운 모래들은 파도에 점점 쓸려가버리고   


 
단단한 돌과 바위들만 남듯이.  


  

  

  
원망과 미움, 미련이라는 감정들은


 
시간이라는 파도에 점점 쓸려가버리고,  


  
이제는 단단한 고마움들만이 남아있다.   


 
 
 
 
 
-
 
 
행복한 기억들이면 충분하다.
 
 
고맙다
 
어여쁜 사람아_
 

 
 
 






열 세 번째 글은..

2009년 1월, 제가 막 스물 다섯이 되어 썼던 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글을 떠올리게 해 준 진실님과, 글을 먼저 읽고 저에게 용기를 준 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글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스물 다섯의 제가, 서른 하나의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에 남겨 놓는 글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서른 하나에 쓴 이 글들이, 10년 년 후 마흔의 저에게 말을 걸 겁니다. 

이렇게 살아가라고, 이렇게 사랑하라고. 그리고 후회하지 말라고.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남겨 놓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찾아가 지금의 당신께  인사드리겠습니다. 







* 제가 애독하는 녹차라떼 작가님의 글과 닿아있는 것 같아 공유합니다. 좋은 것들은 나누어요!

(https://brunch.co.kr/@greentealatte/3)




-


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매거진의 이전글 12. 결혼식은 참으로 곤란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