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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Feb 13. 2016

21. 부모의 마음, 십 분의 일쯤

반려견 사랑이와 함께하며 느낀 것들



지난 5년 동안, 나는 작은 자취방에서 반려견 한 마리와 함께 살았다. 

이 녀석의 이름은 사랑이. 2010년, 내 생일 하루 전날 태어났고, 남자아이, 갈색 푸들이다. 


원래 사랑이는 내가 입양한 아이가 아니다. 친한 친구가 가족들과 함께 키우기 위해서  3개월쯤 된 아기 강아지를 샵에서  분양받았다. 약 1년 간 그 친구가 키웠는데, 친구의 아버지가 반려견과 함께 사는걸 몹시 힘들어하셨다. 버티다 버티다 결국 함께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았고, 그렇다고 파양을 할 수도 없어 남자 혼자 살고 있는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비록 반지하 투룸의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위층 주인집에서도 강아지를 키우고 계셔서 다행히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약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고향집에선 강아지를 키웠고, 워낙 강아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엔 무척 반갑고 좋았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가 아니라, 혼자서 반려견을 키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녀석과 함께한 시간 동안, 한 생명을 오롯이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감히 비교할 수 있으랴마는, 어쩌면 부모의 마음,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목숨보다 귀한 존재


되도록 매일, 최소한 이틀에 한 번은 사랑이와 산책을 하기 위해 애썼다. 내가 일하고 있는 동안, 종일 좁은 방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맑은 콧바람도 쐬고, 햇볕도 받는 그 시간을 꼭 지켜주고 싶었다. 


어느 주말, 사랑이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가슴 줄을 단단히 잡고 가다가 길을 건너기 위해 건널목 앞에 섰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가슴 줄을 팽팽히  끌어당기며 여기저기 킁킁거리는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자가 와서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렸는데, 갑자기 사랑이가 '팍!' 튀어나갔다. 순간적으로 나는 잡고 있던 줄을 놓치고 말았다. 사랑이가 찻길로 튀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도 찻길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멈춰!!!!!!!!!!!!!!!!!!!!!"


내 고함에 깜짝 놀란 사랑이가 그대로 찻길에  주저앉았고, 나는 얼른 사랑이를 집어 들고 인도로 뛰었다. 그리 넓지 않은 4차선 도로였는데, 건널목에 있던 사람들 뿐만 아니고 건너편에 주차를 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참으로 다행히 그 순간 내 쪽 차로에는 차가 오지 않았다. 나는 인도에  주저앉아서 사랑이를 안고 일단 사랑이를 살폈다. 우리 둘 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자식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고들 한다. 근데 그 순간엔 목숨이고 뭐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진정되고 나서야 '큰 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벌렁 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순간이 다시 온다면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팔순의 노모가 예순이 다된 자식에게 외출할 때마다 "차 조심해라."라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정말로 그 말도 이해가 된다. 그 후로 도로변을 산책할 때는 줄을 더 꽉 쥐고 간다. 웬만하면 휴대폰도 들고나가지 않는다. 횡단보도를 건널 땐 사랑이를 앉고 걷고, 다 건넌 다음에 내려준다. 아이의 손을 꼭 쥐고 걷는 부모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는지. 




#. <인터스텔라>를 보며 사랑이의 하루를 생각하다


SF 영화인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반려견을 떠올린다니 다소 의아할 것이다. <인터스텔라>를 관통하는 아주 큰 맥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물리학적인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지만, 우주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에 영화의 극적인 소재로 사용된 것이다. 나의 1시간이, 누군가에게는 1년,  10년일 수 있다는 사실. 그렇다면 그 시간의 가치와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강아지의 나이를 계산할 때, 흔히 사람 나이에 7을 곱하라고 한다. 즉 사랑이가 1살이면, 사람 나이로는 7살에 해당하고, 사랑이가 5살이면 사람 나이로 35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사랑이의 시간은 나보다 7배가 빨리 간다는 뜻이다. 강아지의 평균적인 나이는 15년 남짓. 70~80년을 사는 인간에 비해서 사랑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다. 


그리고 그 말인 즉, 사랑이의 하루는 나의 일주일과 같은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내가 바쁘다고 그냥 외면해버린 하루는, 사랑이에겐 1주일과도 같은 시간인 것이다. 1주일 내내 집에서 나를 기다렸는데, 내가 안아주지 않고, 산책 가지 않는다면... 사랑이는 얼마나 슬플까. 


이미 사랑이와 나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서로 다른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 육아휴직


사랑이를 키우면서, 언젠가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아쉬운 것은, 사랑이가 태어나고 1년 간 함께하지 못한 것이다. 개들은 1년이면 다 커 버린다. 1년이 지나면 키도, 몸길이도, 몸무게도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너무 예쁘고 좋지만, 사랑이가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아쉽다. 지금은 팔뚝만 한 사랑이도 주먹보다 작고 눈도 못 떴을 때가 있었을 텐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 

사랑이도 이런데, 내 아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기들도 금방 금방 커버린다고 한다.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그 한 순간 한 순간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이 어디 있을까. 내 눈으로, 내 품에서 그 모습을 느끼고 싶다. 


그리고 사랑이를 혼자 키우면서, '혼자'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사랑이와 함께한 시간 동안 나는 일 끝나고 저녁 시간 동안 무언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학원에서 어학 공부를 할 수도, 혹은 운동을 하거나, 약속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혹은 너무 하고 싶어서 그런 것들을 할 때에도 사랑이가 생각나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워낙 식성이 좋고, 활달한 덕분에 이상한 거 주워먹고 아픈 적이 많다. 그럴 때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걱정되고 미안했다. 내가 더 같이 있었더라면, 사랑이가 아프지 않았을 텐데...

무엇보다 사랑이가 아플 때,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와 이 슬픔을 나누지 못하고 온전히 내가 감당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육아라는 것은 혼자 감당하기에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벅찬 것이라는 사실을, 사랑이를 통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경제적인 문제나 다른 이유들로 육아휴직이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 또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육아는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내 부인이 반대하지 않는 한은 육아휴직을 하고 사랑하는 그 존재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놓치지 말 것. 사랑이가 내게 준 깨달음이다. 




#. 상실의 슬픔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날도 거의 밤 12시 반이 넘어서 퇴근을 하고 있었다. 종일 업무에 시달렸는데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고, 결과물도 신통치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잘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책감이 드는가 하면, 인정해주지 않는 상사들 때문에 서럽기도 했다.  

택시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로 걸어가고 있는데 가로등에 붙어있는 한 장의 전단지를 보았다. 


[뽀미를 찾습니다.]


전단지에는, 뽀미의 사진과... 뽀미를 잃어버린 가족들의 간절한 애원이 담겨있었다. 제발 뽀미를 찾아달라고...


그 전단지를 보고,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갑자기 사랑이 생각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만약에 내가 사랑이를 잃어버리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저분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울까...

너무 슬펐다. 너무 슬퍼서 가로등에 손을 짚고 하염없이 울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사랑이가 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집으로 마구 뛰어갔다. 집에 도착하니 종일 나를 기다리다 지쳐 자고있던 사랑이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폴짝폴짝 뛰면서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또 사랑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랑아, 미안해... 사랑아 보고 싶었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

갑자기 내가 막 우니까 사랑이가 의아했는지 내 얼굴을 핥아주었다. 아주 늦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사랑이 옷을 입히고 가슴줄을 걸고 나와서 한참을 산책하고 잠들었다. 


지금도 문득 사랑이가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상상을 하면 눈물이  핑 돈다.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은 천금 만금을 준다고 해도 어떻게 위로가 되겠는가. 사랑이 덕분에,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슬픔에 조금은 더 공감하게 된 것 같다. 








지난주에, 사랑이는 부모님과 함께 고향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 친구가 독립해서 사랑이를 키울 수 있게 될 때까지, 쭉 고향집에 있기로 했다. 사랑이와 매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 슬프지만, 이것이 사랑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내 회사가 더 멀리 이사 가면서, 출퇴근 시간이 길어져 사랑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줄었다. 회사가 가까울 땐, 가끔  점심때 집에 와서 밥 먹으면서 사랑이랑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부모님도 일을 하시긴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 훨씬 오랜 시간 사랑이와 함께 있어주실 수 있으리라. 

더욱이 고향집에는 사랑이와 똑같은 종의 강아지가 한 마리 더 있다. 이름은 몽실이. 부모님도 이 녀석이 낮에 혼자 있는 게 영 마음에 걸리셨는데, 사랑이가 있으면 같이 놀고 더 좋을 거라고 먼저 말씀하셨다. 

무엇보다도 사랑이 때문에 내 시간도 못 쓰고, 긴 시간 집을 비울 수 없어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본 내가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플러스로, 사랑이가 고향집에 있으면 내가 더 자주 내려올 거라는 기대감까지. 

여러모로 모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결정했다. 


사랑이가 가고 한 주 동안은 허전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추워도 방문을 한 번도 닫아 본 적이 없었다. 사랑이가  들락날락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방문을 꼭 닫고 자는데, 그게 참 어색했다. 간식이나 과일을 먹으려고 하는데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주라고 떼쓰는 녀석이 없으니 뭔가 어색했다. 바닥에 과일 접시를 놓고 먹은 것도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꼭 내 배와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어 똬리를 틀고 자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랑이가 없음에도 나는 자면서 뒤척일 때, 사랑이가 깰까 봐 몸을 뻗뻗하게 돌리고 있었다. 


다행히 설 연휴가 곧바로 있어서 사랑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사랑이는 잘 지내고 있었다. 몽실이랑도 잘 지내고, 대소변도 잘 가린다고 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나는 이제 곧 서울로 올라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서 금방 사랑이가 없는 일상에  적응하겠지만, 사랑이가 아주 아주 많이 보고싶을 것 같다. 최대한 자주 고향집에 내려와서 사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 잘 지내고 있어, 사랑아!




(요거보다 조금 더 갈색이 짙은, 푸들입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면서도 세상에 더 없는 행복이다. 

반려견 사랑이 덕분에 그 마음을 조금 일찍  맛볼 수 있었다.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부모의 마음 십 분의 일 쯤은 경험한 것이 아닐는지. 


사랑이와 함께하며 생각한 것들, 앞으로도 잘 간직하면서 사랑이를 잘 돌봐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새로운 가족이 태어난다면. 

사랑이를 통해 배운 이 사랑, 더 많이 쏟아붓고 살아야지.




항상 생각한다. 이름 참 잘 지은 것 같아.

사랑이를 통해서, 참 많은 사랑을 배웠다. 










* 이번 글은 반려견을 키워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이라면 '에이, 뭘 모르네. 그거랑 비교가 안되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요. 

어떤 생각이든 좋습니다. 아무렴 어떤가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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