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비 Mar 26. 2016

26. 이직해도 괜찮겠지?



퇴사한다. 5년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성장시켜줬고, 때론 울게 만들었고,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게 해 주었고, 몸과 맘을 지치게 만들었으며,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던 나의 첫 직장.

수많은 취업 도전 중에서 가장 먼저 나에게 합격의 기쁨을 알게 해 준 회사였다. 아직도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이 회사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에 가슴 벅차서 한참 동안 모니터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 뒤로 몇 군데 회사에 추가로 합격했지만, 결국 선택은 내게 첫 떨림을 안겨준 이 회사였다. 그렇게 나는 어둑어둑한 새벽, 캐리어를 끌고 신입사원 연수에 들어갔었다.


나의 첫 직장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이다. 원래 이 회사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입사할 당시, 회사에서 의욕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며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다. 당시 막 떠오르던 분야의 콘텐츠/서비스 사업을 해보겠다고, 수많은 경력과 신입을 모으고 있었다. 그 사실을 듣나니 한 번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그 악명만큼이나 많은 일을 시켰다. 그래도 즐거웠다. 비록 내가 있던 부서가 성공적인 결과를 낸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전성기에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일은 넘쳐났다. 이 분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사원도 어느덧 선배가 되고, 대리가 되어 제법 제 앞가림을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힘들었다. 회사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문화, 유연한 조직을 만들겠다고 혁신, 혁신을 외쳤지만, 변화하기에 이 회사의 몸집은 너무 컸다. 또한 변화하기에는 이전의 성공이 너무 커 그것을 놓지 못했다. 대단한 성공을 발판으로 임원이 되고, 의사결정권자들이 된 사람들은, 본인의 경험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 결국 여기도 어쩔 수 없는 '대기업'이었다. 수많은 회의와 보고, 불필요한 절차들과 부서 이기주의는 점점 구성원들을 무기력함으로 몰고 갔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넘치는 끼와 열정으로 가득했던 개인들은 점차 시간이 가면서, 적당히 자기 일 하면서 고과 챙기고, 적지 않은 월급 받으며 그럭저럭 만족하는 회사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이 회사에 들어 이유였던 신 사업부를 해체하고 콘텐츠/서비스 사업을 대폭 축소하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갈기갈기 찢겨져서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여기저기로 보내졌다. 나는 그나마 지원했던 부서로 전배를 오는 행운을 누렸지만, 아무래도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계속해서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6년 차, 서른둘. 이제는 선택해야 했다. 여기에 계속 있으면서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특권과 혜택을 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러 떠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했다. 작년 1년 내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장고 끝에 내 선택은 떠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작년 말부터 여기저기 가고 싶은 회사들을 찾아보고, 경력 채용 공고가 뜨는지 살펴보며 지원을 하였다. 어디나 개발자는 많이 뽑는데, 나처럼 머리와 입으로 먹고사는 기획자는 잘 뽑지 않았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내가 꼭 가고 싶었던 회사에 자리가 났다. 몇 년만에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아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다.


새로 가게 되는 회사는 젊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지만 지금 회사보다 유명하진 않다. 어른들 중에는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이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걱정이 대단하셨다. 말씀으로는 내 선택을 존중한다고 하시지만, 꼭 그렇게 좋은 회사를 제 발로 박차고 나와서 잘 알지도 못하는 회사에 가야 하느냐는 속마음까지 감추진 못하셨다.

연봉도 더 적어진다. 솔직히 연봉을 생각하면 이 분야에선 그 어떤 회사도 가기가 힘들다. 그만큼 내 나이와 경력에 비해서 많은 것을 주던 회사다. 언젠가 떠날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돈들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알뜰히 모아두었지만, 그래도 막상 내 수입이 줄어들거라 생각하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기에 이직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이직을 하면서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이거다.



"나 소개팅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몸짱도 아닌 내가, 그나마 소개팅 시장에서 내세울만한 건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이렇게 글도 쓰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실은 내 프로필이 될 수 없었다. 그런 건 일단 만나고 난 다음에 꺼내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남자인 나에게 소개팅이 성사되기 위한 '딜'에서 맨 첫 줄에 놓였던 것은 직장이었다.

그런데 아직 여자친구가 생기기도 전에, 이 그럴싸한 프로필을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새로 가는 회사도 이 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회사지만,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천지차이일 것이다.


좀 웃기긴 하지만, 이건 매우 실제적인 문제였다. 어차피 지금은 나 혼자 사니까 경제적인 부분이나 복지 같은 건 스스로 조절하면서 살면 된다. 하지만 '진짜 나 이제 소개팅 만나보기도 전에 까이면 어떻게 하지?' 이 고민은 꽤나 진지하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결혼할 사람이 생기고 나서 회사를 옮기겠다고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건 사기 같기도 하고, 상대방이 옮기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고... 스스로 생각해봐도 참 '웃픈'고민을 한참 동안이나 하고 있었다.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이런 내 꿈과 바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내 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머리로는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데,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마음은 좀 불안하다. 진짜 이러다 나 장가 못 가면 어떻게 하지?ㅠㅠ




(커피소년, <장가갈 수 있을까?>)




브런치에는 퇴직과 이직에 관한 글들이 많다. 그것들을 읽노라면 갑갑한 현실을 박차고, 꿈을 찾아 나온 작가님들의 용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내게 된다. 나도 대기업을 퇴사할 때는 그렇게 멋지게 나오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하하. 솔직히 그렇다. 불안하고, 걱정된다. 일하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어른들의 이 왠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도 5년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것도 있는데, 굳이 이것들을 버리고 연봉도 깎여가며 꿈을 찾겠다고 떠나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꿈, 열정, 미래 이런 것보다도 소개팅이나 걱정하고 있으니, 나는 얼마나 소심한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100% 리얼한 나의 모습이다. 세상엔 멋진 브런치 작가님들 같은 사람도 있지만, 분명 나 같이 가슴을 졸이는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Let's go!)




3월 31일이 마지막 출근일이다. 그리고 4월 18일 날 새 직장으로 출근을 한다. 3월 중순에 최종 결과가 났기에, 아마도 회사에서는 4월 초에는 와서 일을 시작하길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인사 면담을 하면서 부탁했다. 다른 건 다 알아서 하셔도 좋은데, 퇴사와 입사 중간에 시간을 좀 주셨으면 좋겠다고. 제대로 휴가도 받지 못하고 5년 넘는 시간 동안 일했는데, 나에게도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회사에서 나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걸 보고 적잖이 마음이 움직였다. 회사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사실이 몹시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3월 31일 날 퇴사를 하고, 그 길로 인천공항으로 가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학생 때는 시간이 많았지만 돈이 없었고, 취직을 하고 나서는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내 생애 최초로 돈과 시간을 가지고 홀로 13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너무너무 기대된다. 이 13일의 선물 같은 시간만으로도, 이직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이후의 것들은 생각하지 않으련다.

즐겁겠지. 행복할 거야.

그리고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장가 갈 수 있을거야)




스스로를 위한, 용기와 응원이 필요한 시간이다.


"다, 잘 될거다!"









-





다음 글은 조금 늦어질 수도 있겠네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



-


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매거진의 이전글 25.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