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담당자님과 책비 출판사 대표님을 만나다.
5월 2일. 징검다리 휴일의 한 중간인 날. 저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올해 환갑이신 아버지는 눈에 안압이 높아져 물이 새는 증상과 함께 녹내장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고 세브란스 병원에 검진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직장인인 저는 하루 휴가를 내고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아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아픈 사람들은 정말 많고 고치는 사람은 적기에, 아쉬운 이들은 결국 오랜 시간 검사와 진찰을 기다려야 합니다. 특히 그 날은 앞뒤로 휴일이 있어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아침 7시 반에 출발하여 9시에 도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를 진행한 것은 11시가 넘어서였습니다. 검사를 받고, 의사 선생님의 진찰을 받고, 주사 처방을 받고 나니 1시가 넘어있더군요.
아침도 못 먹고 반나절을 기다렸기에 몹시 허기가 졌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안과병원을 나서서 연대 정문을 향하는데, 아버지가 저를 잡았습니다.
"연대 본관 앞 정원에 모란꽃이 예쁘더라. 아들, 모란 본 적 없지? 가서 잠깐 보고 가쟈."
저는 '배고파 죽겠는데 무슨 모란을...'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워낙 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셔서 함께 따라갔습니다. 국어 선생님답게, 시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그중에서도 김영란 시인을 가장 좋아하신다는 걸 잘 알기에, 투덜투덜하면서도 함께 연대 본관 앞 정원까지 함께 걸어갔습니다.
2시가 다 되어서, 신촌 뒷골목에서 아버지와 함께 그 날의 첫끼를 먹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더 그랬을까요, 아니면 너무 오랜 기다림에 지쳤기 때문일까요, 참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젊고 건강했던 아버지가 이렇게 나이가 드셔서, 여기저기 아픈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버지가, 아빠가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정말 뭐든 하고 싶을 정도로, 서럽고 슬펐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저는 말없이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한 참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제 폰에서 브런치 알람이 바쁘게 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매거진의 구독자가 갑자기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더군요. '무슨 일이지?'라고 생각하고, 브런치 알림을 보고 있는데, 마침 브런치북 4회 수상작 발표가 떴다는 피드 알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긴장된 마음으로 그 글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대상 명단의 제일 윗줄에(매거진명 가나다 순이었지만^^;;) 제 이름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멍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건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었습니다.
제가 첫 글을 쓴 것이, 2015년 10월이었습니다. 이미 1회 브런치북은 기간이 지나서 지원할 수 없었고, 2회, 3회, 4회 모두 지원을 했었습니다. 솔직히 이번보다 2회와 3회 때 더 큰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땐 지금보다 더 열심히 글을 올리던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발표날 대상은커녕 금상, 은상에도 제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이번에 낙선하셨을 많은 작가분들의 마음, 저도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계속 글을 써야 하나 하는 회의감,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불안함, 열등감, 억울함 등등등...
그때마다 결국에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처음에는 저 스스로를 위해 남기고 싶었습니다. 이다음에 사랑을 하게 되면 제가 쓴 글들을 다시 읽으며, 꼭 잊어버리지 않고 더 행복하고 더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함께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청춘의 가장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 제 글을 읽고, 힘을 내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어요. 제가 그 외로움과 괴로움을 겪어 보았기에, 그분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저의 지극히 사적인 감정들이,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설렘이 될 수 있다는 기적 같은 사실. 저는 브런치를 통해서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브런치북 공모에서 계속 떨어졌지만, 저에게는 이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알고 지내며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사람들과는 나눌 수 없는, 어떤 위로와 응원을 주고받는 그런 친구들 말이죠.
제가 책을 내고 싶었던 이유는, 결국 브런치에 글을 썼던 이유와 다르지 않습니다. 제 글이, 브런치가 아닌 책이라는 다른 매체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금까지 제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준 모든 분들께 보답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아, 제가 책을 선물로 드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ㅋㅋㅋㅋㅋ 저자에게 주어지는 책이... 얼마 없더라구요...
대신 오래 친구분들이 제 책을 사시면(!), 그분들을 찾아가서 책 첫 장에 감사의 편지를 적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는 게 제 꿈이에요. 그분들께 값진 책을 선보일 수 있도록, 더욱 최선을 다 하고 싶습니다.
5월 11일 바로 오늘, 점심.
이렇게 멋진 서비스를 운영하고 계신 브런치 담당자님과, 감사하게도 제 글을 선택해 주신 책비 출판사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저도 종이 책을 내는 것은 처음이기에, 담당자님과 대표님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또 저의 소소한 바람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밥도 안 먹고 만났는데, 신나게 이야기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정작 저는 너무 떨려서 몇 마디 말도 못한 것 같구요. 아직 출판 계약서에 사인도 하지 않은 상태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뗀 날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브런치를 통해서, 브런치북 수상 이후의 이야기들을 종종 전하고자 합니다. 책이라는 게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요. 하지만, 정말로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책이 나오면 꼭 한 권 간직하겠다고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응원에 최선을 다해 보답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새삼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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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