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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Dec 29. 2017

48.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혼자 있는 이 시간도.


Scene#1


내 글에 항상 등장하고 싶어 했던 H 팀장님. 어느 날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게 되었다. 스타워즈 열성팬이신 팀장님이 집에서 상영회를 한 번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다.


"좋은비님은 세상에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었어요? 수능 끝난 날? 대학 합격한 날? 군대에서 제대한 날?"


"음... 글쎄요... 뭐 그런 날들이 다 기뻤던 것 같은데요?"


"저는요, 예전에 와이프가 애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서 집에 혼자 있게 된 날이 있었거든요. 그 날 정말, 그 모든 행복했던 날들의 정확히 세 배 행복했어요."


"ㅋㅋㅋㅋㅋ 아, 뭔가 웃프다. 지금은 제대로 공감하기 힘들지만, 어렴풋이 알 것도 같네요."



(팀장님, 이렇게 등장시켜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Scene#2


"크리스마스 때 뭐 할 거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으레 던지는 질문인데, 이 나이쯤 되니까 질문을 받는 이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대부분 주위에는 오래된 커플이나 결혼한 친구들인데, 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인지라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딱히 새로운 건 없고, 어딜 가나 사람은 많고, 예약은 어렵고, 비싸고... 결혼한 친구들은 그냥 집에서 보낸다고 하고, 커플인 친구들은 오히려 크리스마스를 피해서 연인과 시간을 보낸다는 이들도 있었다.


오히려 솔로인 친구들의 대답이 더 화려(?)했다. 친한 지인들과 파티를 기획해서 밤새 논다는 친구도 있고, 강원도로 가서 2박 3일 간 보드를 탄다는 친구도 있었다. 짧게 일본에 다녀온다는 이도 있었고, 그냥 혼자 쇼핑이나 하러 다닐 거라는 녀석도 있었다. 다들 직장인이고 하니 돈도 있겠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너는 뭐할 건데?"


"나? 글쎄... 아직 아무 계획이 없네."


"하아~ 아무 계획이 없어도 된다는 게 참 부럽다. 뭐랄까... 이 바쁜 연말에 그런 게으름이야 말로 솔로 된 자의 특권이랄까?"





어쨌든 나는 누군가를 만나서 깊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픈 사람이다. 그런데 그러한 선택을 하는 순간, 커다란 권리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그것은 바로 '혼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 내가 원하는 것을 먹고, 원하는 곳에 가는 것. 전적으로 내 의지대로 무언가를 사고, 팔고, 빌리고, 버리는 것.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것.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 고향에 가는 것. 이 모든 당연한 것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점차 내 뜻대로만 할 수는 없는 것이 되어간다는 사실. 나보다 앞서 이 과정을 경험한 이들 덕분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며 얻는 것들의 이면에 놓아야 하는 것들이 꽤나 생생하게 보인다.


이래서 결혼은 멋모를 때 하는 것이라고, 알면 알 수록 더 하기 힘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한, 놓아버린 그 특권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무엇을 놓아야 할지 이미 알고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을 했기에, 실제로 그러한 일상이 펼쳐졌을 때 더욱 현명하게 대처하고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솔로로서 보내는 연말연시가 각별해진다.


어쩌면 이 외로움의 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니 말이다.

 

언젠가 나에게 '혼자됨'을 선택할 권리가 없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때가 되면, 이 '홀가분함'이 그리워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솔로인 내가 의미 없이 흘려보낸 오늘이, 결혼한 유부남들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자유로운 내일이다." - ???







Scene#3


"좋은비님은 크리스마스 때 뭐하세요?"


"글쎄요. 이번 주부터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너무 바빠서 아마 하루 이틀은 출근해야 할 것 같은데요?"


"에궁, 진짜요? 슬프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예요. 이럴 때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크리스마스 때 제대로 같이 놀지도 못한다고 구박받고 눈치 보였을 거 아녜요. 맘 편히 일 할 수 있으니 차라리 솔로인 게 다행이네요."


"에이, 아니죠~ 그걸 이해해 줄 수 있는 맘씨 착한 여자 친구를 만나셔야죠."


"와... 그렇네요... 그런 여자 친구... 만나야겠어요."




맞아요. 내년엔 말이죠.

꼭, 만나야겠어요.









2017년에도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했어요.


2018년엔 조금 다른 형태로 찾아 뵙게 될 것 같아요. 

모두,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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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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