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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Mar 20. 2019

51.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네 명이 넘어가는 회식자리는 언제나 부담스럽다. 단체로 출장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지쳐서 따로 밥을 먹겠다고 일찍 나왔다. 고맙게도 한 동료가 같이 나서 주었다. 대화는 언제나 이렇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둘이서 하는 게 가장 좋은 법이다.


나이도 비슷하고 둘 다 미혼이기에, 역시나 이야기는 서로의 연애사와 요즘의 근황으로 흘러갔다. 순수한 사랑을 바라면서도 남부러울 것 없는 인기를 누리며 살아가는 그녀와 달리, 굴곡진 나의 짝사랑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말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어요!"



수많은 도끼질을 당했을 법한 분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조금은 의외였다. 모든 것은 맥락이 중요하다고, 그래도 그 말 안에는 '당신은 누군가에게 다가갔을 때, 그 마음이 전달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라는 위로가 담겨 있어 고마웠다. (꿈보다 해몽. 어쩌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비루한 내 인생, 단 한 번도 짝사랑이 성공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옛날엔 말 한 번 꺼내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곤 했다면, 최근에는 어떻게든 내 마음을 표현해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중한 거절들에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남은 마음은 초라하고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을 놓지 못한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그러한 스토리들이 참 많다. 지금 남편에 대해서 처음 만났을 했을 때에는 인상이 진짜 별로였다고 회상하는 이들이 몇이나 된다. 몇 년을 대시해서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는 것이기에,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 돌아서는 순간이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 지금껏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언젠가 딱 한 번은 일어날지 모른다는 희망 고문. 그래서 오늘도 바라는 이의 마음을 향해 도낏자루를 만지작 거린다.








"찍어 넘어간 나무엔 생명이 없잖아요."



짝사랑을 고백하고 얼마나 끈질기게 그 사람에게 애원했느냐를 물어본다면,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마음이 어쩌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과 나는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회사에서든, 모임에서든 어떠한 관계의 그물망 안에 있기에, 계속 상대방에게 애정을 요구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불편하고 괴로운 강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얻어진 애정이라면 과연 거기에 진실한 마음이 담길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수 많은 대시 끝에 성공한 사랑?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과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타이밍과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기에 상대방도 그 마음을 받아준 것일 텐데, 그것은 정말 희귀하고 극적인 일이라는 것. 마치 성공한 이들이 쓴 자기 계발서처럼, 이루어졌기에 남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모든 자기 계발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그대로 따라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드러나지 않을 뿐, 그렇게 애원하고 매달렸음에도 실패한 이야기는 더더욱 많을 것이다.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어쩌면 그 일방적인 감정의 몰아침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괴로움이 시달린 이들도 못지않게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노력하는 것과 강요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그 마음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짝사랑하는 입장에서야 그 모든 것이 순수한 마음이고 애틋한 감정이겠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일상의 붕괴를 가져오는 폭력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민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고백을 하고 거절을 당하면,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것이 나와 그 사람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포기하는 것도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근데, 정말 열 번을 찍었더라면 넘어갔을까요?"



동료분의 말을 들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포기한 것이 정말로 맞는 선택이었을까?

만약 내가 더 노력했더라면, 더 끈질기게 설득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나도 그 성공한 짝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정답은 없다.

모든 것은 맥락이고, 누군가에게는 맞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저 언젠가 한 번쯤은, 딱 한 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똑똑똑 두드려주고, 힘차게 도끼질해주길 바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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