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살았던 첫 집은 연립주택의 1층 원룸 전세였다.
말이 1층이었지, 1층을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필로티 건물이었기에, 주차장 한 켠의 자투리 공간을 억지로 방으로 만든 것이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10cm 앞에 다른 사람의 차 뒤 범퍼가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었다.
후진 주차하는 차량들 때문에 창틈으로는 수시로 자동차 매연이 들어오고, 한 밤중에도 주차하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원치 않게 내 방을 환하게 해 주었다.
어느 날 새벽엔 누가 술 마시고 운전을 하던 것인지, 주차하다가 내 방 벽을 지긋이 들이받았다.
방 한쪽 벽이 무너지고 나는 꼼짝없이 깔려 죽는 것인가 싶어서 한 동안 차가 들어올 때마다 겁에 질려야 했던 곳.
그래도 당장 살 곳이 필요했기에, 회사로부터 전세대출까지 받아서 그곳에서 약 1년 6개월을 살았다.
두 번째로 살았던 집은, 서초역 근처의 반지하 투룸 전세였다.
회사가 갑자기 수원에서 양재로 이사 오면서, 강남에 거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강남은 역시나 전셋값도 어마어마했고, 내 형편에 살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반지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전세보증금은 첫 번째 집의 두 배였다.
다행히 풀옵션에 투룸이라서, 반지하라는 것 빼고는 삶은 더 나아졌다.
위치도 서초역 바로 근처라서 교통이 편리했고, 예술의 전당이나 서래마을도 가까웠다.
이곳에서 내 강아지 사랑이와 함께 4년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집 창문 앞이 주인집 차를 주차해놓는 지정 주차 구역인지라,
주인집이 차를 타고 외출하는 동안에만 내 방에는 한 줌의 햇살이 허락되었다.
그래도 지금 기억해보면, 젊은 날의 행복한 기억이 가장 많이 배어있는 곳이었다.
세 번째로 살았던 집은, 분당의 오래된 아파트 1층 전세였다.
분당에 위치한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제법 돈을 모았던지라 처음으로 아파트 전세를 얻게 되었다.
말이 아파트지 작은 방 2개에 거실이 있는, 14평 정도의 소형 아파트였다.
게다가 단지에서 가장 대로변에 있고, 1층이라서 그나마 분당 치고는 싼 값이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집이 있다 보니, 출퇴근하는데 전혀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았다.
가끔은 점심때에도 도시락을 사들고 집에 와서 얼른 밥을 먹고 잠깐 누웠다 가기도 했다.
역시나 아파트가 살기에는 좋았다.
비록 1991년에 지어진 아파트라서 엄청나게 낡고, 제대로 수리도 안되어 있어서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뭔가 집다운 집에 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네 번째 집.
나는 집을 구매하여 이사를 하였다. 생애 처음으로 내 집이 생긴 것이다.
집을 사게 된 계기는 부모님 때문이었다.
작년에 아버지께서 정년퇴임을 하시면서 이제 당신들은 돈을 다 벌었으니, 나와 여동생에게 똑같이 빌려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10년 뒤에는 이 현금의 가치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테니, 무조건 지금 집을 사자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부모님, 나,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을 하시는 이모까지 온 가족이 동원되어 회사 근처에 아파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을 구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갑자기 몇 주 전부터 아파트 값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물건을 보지도 않고 묻지마 계약을 맺고 있었다. 가격이 급격히 오르니 나왔던 매물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서현, 정자, 수내, 이매, 야탑... 수 십 곳의 집을 돌아보았고, 몇 곳은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으나 계약을 맺지 못하였다.
결국 부모님과 이모는 빈손으로 돌아가시고, 세입자 사정으로 1주일 뒤에 볼 수 있다고 했던 집에 나 혼자 가서 10분 간 집을 둘러보고는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를 작성한 시점은 2018년 1월이었고, 잔금을 치른 것은 3월 말이었다.
아무리 오래된 아파트라도 평범한 직장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비싼 것이었다.
매수금액의 50%는 내가 모은 돈으로, 30%는 부모님께 빌리고, 20%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잔금을 치르던 날.
이 집에서 내 지분은 50%밖에 안되지만, 그래도 내 이름이 들어간 등기권리증을 받으니 무척이나 뿌듯하고 행복했다.
오랜 꿈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3월에 잔금을 치렀지만, 8월까지 월세 계약이 남아있어 바로 입주할 수는 없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8월이 되고, 세입자와 이사 날짜를 조율한 후 인테리어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전세를 살았기 때문에, 인테리어라는 것을 해 본 적도 없고 신경도 써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내 집이니까, 들어갈 때만큼은 최소한이라도 손을 보고 살고 싶었다.
(그리고 집 상태가 도저히 그냥 살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인테리어에 대해서라면 별개로 글 몇 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고생을 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우여곡절이 넘쳤던 3주의 공사 기간이 끝나고, 입주 청소를 마쳤다.
이윽고 2018년 10월 2일, 나의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을 고르면서 가장 중요했던 기준 한 가지는, 방이 세 개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집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산 집인데, 내 꿈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의 공간을 갖는 것이었다.
부부가 함께 쓰는 침실, 그리고 각자의 방 1개씩.
이런 말을 하면 이미 결혼 한 인생 선배들은 옷 방 하나, 서재 하나가 되지 각자의 방이 되긴 어렵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당연히 아기가 생기면, 내 방부터 없어질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결혼 후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필로티 건물 1층, 반지하, 아파트 1층에 살았던 내가 4층에 살게 된 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평일엔 낮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지만 주말에 집에서 종일 뒹굴뒹굴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의 햇살이 거실 한켠을 채우고 있다.
4층도 이른바 '로열층'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소소한 햇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내 집을 갖게 되면 가장 먼저 해 보고 싶은 것이 바로 '집들이'였다.
지금까지는 '내 집'이 아니었기에, 굳이 누구를 불러 집들이를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곳은 내 집이기에, 소중한 사람들을 불러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한 대화들로 이 집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이사하고 유일하게 새로 산 가구가 식탁과 의자이다.
그 유명한 이케아에 혼자 가서, 무거운 식탁-의자 세트를 낑낑거리며 사 와서는, 4시간 넘는 사투 끝에 그럴싸한 식탁과 의자를 완성했다.
그리고 11월부터 1월까지 송년회와 신년회를 겸한 8번의 집들이를 했다.
집을 샀다고 하면 가장 먼저 듣는 반응은 당연히 "부럽다~"였다.
나 혼자의 힘으로 집을 산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운과 타이밍이 도와주었기에 집을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분명 부러울만한 일이고, 겸손히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이만큼의 돈을 모으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이나 사업가가 아닌 월급쟁이인 이상, 부럽다고 말하는 그들이나 나나 벌이에서는 대동소이할 것이다.
나는 단지 아주 긴 호흡으로, '내 집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향해 걸어왔을 뿐이다.
어느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에서는 휴가철 떠나는 해외여행이, 좋은 차를 타며 즐기는 드라이브가, 오늘을 즐기는 순간순간의 행복이 더 우선일 수 있다.
단지 나의 우선순위가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이토록 '집'에 집착했던 이유는,
당연히도 이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함께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겠지만, 그 중에 몇 개라도 내가 미리 준비해놓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안정을 주고, 그래서 각자의 삶과 사랑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
그런 것 중 가장 큰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집'이라서,
나는 그 오랜 시간 내가 번 돈을 아끼고 아껴가며 집을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 많은 분들이 집을 샀다고 하면, "이제, 다 갖췄네~"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해 준다.
그 말을 들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여러 조건들을 갖춘들 그것을 함께 나눌 이가 없으니, 나는 아직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 같다.
예전에는 '집'보다는 '방'같은 곳에 살다 보니 내 공간에 있으면서 외로움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집'같은 곳에 살다 보니,
1주일씩 출장을 갔다 와서, 냉랭한 집에 돌아오면 문득 외롭고 허전하다.
그래서 이사 온 이후로 더 간절하게 가장 가까이에서 온기를 나눌 누군가를 바라게 되었다.
이 집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들이 가득하길.
언젠가 이 곳을 떠나겠지만, 나에게 소중한 기억들이 가득한 첫번째 내 집으로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