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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rain Oct 30. 2016

그 여름의 바다 2

두 번째 파도

두 번째 파도


그는 무뚝뚝한 사람이었으나 다정했다.

내가 아플 때면 그는 내가 다 나았다고 할 때까지 약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며칠이고 몇 시간에 한 번씩 물어본다. 그러고는 꼭 마지막엔 퉁명스럽게 까불지 말고 빨리자. 라며 전화를 끊는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자 아니나 다를까 무슨 바다냐고 일이나 하라고 타박을 한다. 그러고는 10분 뒤에 예쁜 바다 사진이 하나 온다. 그 사진은 꽤나 오래도록 내 배경화면이 되었다.

그의 답을 기다렸다가 카톡을 보내면 하루에 세 마디 하기가 어렵단 사실을 깨닫고 나는 수시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카톡을 했고 그는 그중에 대답하고 싶은 말만 골라서 대답하거나 점하나 만 보내거나 했다. 나는 그럼 아 읽었구나. 하고 만다. 그런 그가 문득 전화를 할 때가 있다. 밥 먹었냐고. 또 굶고 아프다 어쩌다 하지 말고 밥 먹으라고. 그러고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다. 또 어떤 날은 문득 전화해서 놀지 말고 일하라고 그러고 또 전화를 끊는다.

그와의 통화는 늘 그의 퇴근길에 30분이었다. 이 또한 헤어지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5분 통화하기도 힘든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는 퇴근길 15분, 집 앞에서 15분 매일같이 통화를 하며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면 전화가 끊길까 들어가지도 못하고 길에 서서 통화를 했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전화가 끊길까봐 계단으로 헉헉대며 올라가며 통화를 했다. 혹여 회식이 있어 늦게 들어가는 날에는 회식을 가는 도중에 혹은 회식 중간에 나와 전화를 해줬다.


그는 늘 퉁명스러웠고 그와의 대화양은 늘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아픈 걸 늘 기억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원하는 건 해주고자 하는 사람이었고, 문득 내가 밥은 먹었는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었고, 퇴근길 하는 나와의 통화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고 참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그중 내 생각을 가장 크게 뒤흔든건 이거다.

연락을 많이 하고 표현을 다정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하든 진심이면 보이게 되어있다.


그는 나를 이후에 남자를 만나기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몇 달이 지나 그를 보러 다시 그 바다를 찾았다. 그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사정을 알았고 몇 달의 연락하는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바쁘게 일하고 있는지,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와 만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그 어떤 기대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바쁜 시간에 나를 데리러 역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매일 아침 나에게 아침을 사줬다.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빨리 먹으라고 구박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면 모든 반찬은 내 앞에 모여있었다.

나는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 앞에만 있으면 혼자서도 하루 종일 잘 노는 사람이다. 바다에서 혼자 놀고 있으면 전화가 온다. 어디서 뭐하냐고. 걱정되니까 보이는 데에 있으라고. 안 심심하냐고 몇 번이고 전화가 왔다.

저녁이 되면 그는 자신이 잘 가던, 통화로 설명했던 곳들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함께 했다.


내가 서울로 돌아오고 그 날 저녁, 그는 병이 났다.


내가 올라오는 기차 앞에서 그에게 키스해달라며 매달리고 있을 때, 그는 계속 내 등을 떠밀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역 한 구석 숨어 키스가 아닌 뽀뽀를 해줬다.  


나는 자기를 보러 그 먼 곳을 갔는데 혼자 내버려둔다고 서운할 수 있었고, 더 오래 같이 있지 않는다고 서운할 수 있었다.  내가 매달려서 겨우 해준 입맞춤이라고 생각하며 서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상황을 알았고, 그의 생활패턴을 알았고 그의 성격을 알았다. 그는 분명 많은 희생을 하고 있었고, 많은 약속들을 포기했으며, 많은 무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모든 행동이 고마웠고 행복했으며 그 흔한 애정 어린 한마디 없었어도 그의 마음을 충분히 느꼈다. 역 한 구석에서 그가 해준 입맞춤은 이전의 것과 다른 진한 아쉬움이 가득 담긴 입맞춤이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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