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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rain Sep 28. 2016

사랑이라 믿었던 순간

거짓말 하나, 둘 그리고 셋

거짓말 하나


나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관이었다. 그 역시 선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로 알고 있으면서도 우린 서로에게 양보하길 요구했고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헤어지게 된 계기는 이와는 상관없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만 

그 헤어짐에는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거짓말 둘


지금 돌아보면 그는 참 이기적이었다. 그리고 무능력했다. 

그러나 그의 조용함이 나는 배려라고 생각했고 그의 장래에 내 과거를 투자하는 중이라고 굳게 믿었다. 


신앙에 가까운 나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정적 순간에 말라비틀어진 낙엽같이 흔들렸고 그 어느 편에도 서있지 못했다. 그렇게 나약한 그를 보고 난 그와 함께 인생의 파도를 넘어갈 수 있을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렇게 거대한 파도를 맞이해 크게 흔들리고 휘청이던 어느 날, 그는 내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사랑으로 헤쳐 나아가자.


난 그 말에 설레었고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린 어긋난 톱니바퀴가 버걱거리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그저 바라보면서 수렁에서 허우적댔다. 그게 사랑이라 믿었고 극복하는 중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기어이 내 톱니바퀴가 그에 맞춰 버걱거리다 으스러지기 직전에 깨달았다. 

사랑으로 헤쳐 나아가자라고 했던 그의 말은 


네가 너의 사랑으로 나에게 모든 것을 희생해라.


였다는 것을.     




그리고 셋


그와의 헤어짐에는 어떤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했던 시간만은 선명하게 남아 오래도록 힘들게 했다. 


그와 걸었던 거리, 그가 좋아하던 수제버거, 그가 누웠던 침대, 그가 앉았던 의자, 그가 응원하던 야구팀까지. 

그와 함께 걷던 그의 동네는 내가 안 가면 그만이라지만, 내가 사는 동네 남겨진 그의 흔적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의 나쁜 점들만 곱씹으며 겨우 참아내던 어느 날, 그와 늘 함께 걷던 거리에서 문득 그의 살 냄새가 났다.

 

사람은 소중한 시간을 보낸 공간에 자신의 영혼의 조각을 남기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거리에서 이렇게 그 사람의 냄새가 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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