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허니문]

딸바보의 시그널,

by 청담동 앨리스

두 시간을 내리 소리 내며 울다가 거울을 보니 쌍꺼풀이 두배로 부어버렸다.


파킨슨 확진을 받았다는 아버지와의 통화를 끊고서,


하필 본가에서 칠순파티로 잠시나마 행복했던 가족모임을 마치고 올라와서

나 혼자 고성까지 바다여행을 다녀와서,

새 마음 새 뜻으로 새해 플랜을 구상하겠노라 새살이 막 돋는 기운이 충만해진 상황에서 갑자기


그리고 그 순간 아버님께서 중증 파킨슨을 앓고 계신 내 고객님이 머릿속을 스쳐갔는데 때마침 그때,

카톡창에 그분의 연락이 띠링

' 팀장님 연락가능하실 때 통화 부탁드려요 '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관리자 이미지고 뭐고 간에 전화기를 붙잡고 또 울어버렸다.

내가 당장 지금 너무 슬프니 누군가에게 부둥켜 안겨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분명 다른 문의 요청사항이 있으실 터인데 아버님의 첫 진단 히스토리를 공유하시며 내 눈물부터

20여 분간 닦아주신 오랜 인연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돌이켜보면 아빤 시그널을 많이 보내주고 계셨다.


몇 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여행차 제주도로 호캉스를 갔다가 같은 방에서 잠들었는데,

다음날 두 분 때문에 잠을 설쳐 피곤하다고 씩씩댄 건 단순히 코 고는 소리 때문만이 아니라 주무시면서

소리를 치고 무슨 말을 쩌렁쩌렁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처음보고 너무 놀래서였다.

잠버릇이 왜 저렇게 고약하실까 하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고

이제 보니 단순히 잠꼬대가 심했던 게 아니라 파킨슨 전조증상인 렘수면장애(잠자는 동안 근육이 이완돼야 하는 렘수면 단계에서 조절이 제대로 안되어 꿈속 행동을 실제로 옮기는 질환)였구나 싶어서,


거실에서 발을 질질 끌며 걷는 자세가 어색해 보였을 때부터였을까,

식사를 지나치게 천천히 하시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부터였을까

'요즘 손이 좀 떨린다'라고 하셨을 땐, 'tremor? 진전?(우스갯소리로) 아빠 파킨슨이야?' 스치듯이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으니까)

근육이 많이 소실된 것 같으니 근력 운동 좀 하셔라 대수롭지 않게 잔소리를 했었고,

'어깨랑 다리가 막 쑤시고 힘들다'라고 하셨을 땐

울 아빠가 드디어 나이가 드니 여성호르몬이 많아져서 너무 자주 징징대시는 것 아니냐

동생에게 푸념을 하곤 했던 내 모습들이 떠올라


화가 나서

아이처럼 눈물이 터져버린 것 같았다.

혹은 지난 주 가족모임에서 느꼈던, 태어나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할아버지처럼 뇌졸중이 아닐까 했던 노파심은

사실이 아니라서,

( 술이라는 명확한 원인이 있었다고함 )

중대질병 가족력이 전혀 없는 집안인데

진료검사 전 느꼈던 불확실성에서 해방된 파킨슨 초기 확진이란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술 담배도 하나 하지 않으시는 모범시민 아빠가 무슨 잘못인데!

요즘 일흔이면 노인정에서도 막내인데! 왜 벌써?

짜증 나서 울다가 슬퍼서 울다가


하 이런 것이 40대 자녀의 숙명인 걸까?

책임감 터널의 시작인 것인가

이제 나도 서서히 부모님의 노화와 병환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가 된 것인가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적에도, 중환자실과 수술실 등 특수파트에서 사망 직전의 환자들을 관리할 때조차도

일은 그저 일뿐이고 내 가족과는 전혀 관련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오만방자함을 조심스레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가. 자존심 상하게!

물론 내 고객님의 아버님처럼 거의 여든이 돼 늦게서야 발견한 파킨슨이 아닌 초기이기에

얼마든지 환자의 의지로 처방약 복용과 운동으로 증상 개선을 드라마틱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약효가 확실히 나타나는, 즉 허니문(약물치료 후 몇 년간 개선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 기간 속에 아버지는 서 계신다.

하지만 파워 J인 K-장녀의 시선은,

현재 많은 치료제와 기술이 개발되고는 있지만 완치가 되는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과

어쩌면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감히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는 것에 머물게 되었고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허니문 기간이 끝나게 되면 다시 또 여러 증상이 겹쳐 나타나거나 그래서 하나의 병이 다른 병을 불러올까 봐


무섭고 슬픈 것이다.


주로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모든 것들이 싫다.

학창 시절 수학을 가장 좋아했던 것도 정답이 딱! 떨어지고 공부한 만큼 1등급이 가능했기 때문였고,

운동 역시 내가 노력하는 만큼 성취가 눈에 띄게 보이니 여전히 즐기는 것처럼

피땀눈물이 날지라도 스스로 정성을 다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눈앞에 안겨주는 것들을 좋아한다.


파킨슨은

도파민을 생성하는 뇌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면서 운동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퇴행성 신경 질환이다.

증상이 진행되면서 혼자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지니 결국은 장기적 돌봄이 필요해진다.

약물치료로 질병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조절 관리하면서 지금과 같은 일상생활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뿐이다.

생각만큼 뜻대로 되지 않는 연애나 결혼 이슈만큼이나

현 의학 수준에서 완치가 어려운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팩트 자체가 겁나고 짜증이 나는 것이다.


광활하고 깨끗한 강원도 최북단 고성 바다여행이 최근 나의 손실회피 심리를 너그러이 거두어 주었는데,

다시 또 떠나버려야 하나 싶은 순간


' 딸~ 오늘도 아빤 운동했어! '


괜스레 밝은 아빠 목소리가 유난히 슬프게 느껴졌다.


허니문이 아주아주 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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