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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goodruda Nov 17. 2022

<시와 에세이> 아도니스, 복수초의 꽃말 - 슬픈 추억

어느 날 바다 한가운데에 피어난 꽃의 이야기

지나간 가슴들아

늦게라도 너무 피어나지 마라

이미 내 바다에 너무

많은 잡초가 자라 있으니

안 그래도 없는 마음 다 가져가서

내 마음은 점점 짜다


눈물 가슴을 타고 내려와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밤

만조를 맞이한 바다와

눈물 자국이 남은 하늘


마음을 중독시켰던 꽃이 있다

피어났기에 아픈

그 복수초

결국 바닷물에 잠겨 죽


또다시 썰물은 찾아오겠지

못다 죽고 남은 의 꽃, 이파리

훗날 소금기가 서려

아리다

<슬픈 추억>, 이루다


복수초, adonis


분명 나는 복수초를 피우느라 너무 힘들었다.


씁쓸한 추억이 떠올랐을 때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였고 끝난 기억들이었는데 왜 감정들은 이제 와서 생각 날 괴롭힐까. 난 이미,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들로 하루하루 벅차게 지냈었다.


항상 누구나 그렇듯이 삶을 살다 보면 벅찬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실 한계점에 굳이 도달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충분히 많은 생각과, 또는 바쁜 생활로 채워져 있다. 나는 이뤄낸 것 없이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많은 20대에 나이에 하루하루 부담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나의 첫사랑이 생각났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당시에 이별이라고 말하는 그 정황을 겪고 난 뒤에 그 감정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많이 울었고 내 마음을 많이 뒤흔들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가 다시 생각났을 때 분명 똑같은 감정은 아닐 것이다. 에 대한 연민, 그리고 좋은 기억, 욕망 등이 생각났지만 가장 내가 힘들었던 것은 그 때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순간에 내가 자리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말했다. 닿을 여지조차 없는 현실이 서러웠다. 그때와는 다른 집, 다른 방에 혼자 있는 분위기 또한 나를 괴롭게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손에서 그 사람을 놓치고 현재까지 와버린 기분까지도 든다.

또, 그는 날 항상 진심으로 걱정하게 했었는데, 그가 여태까지 걱정거리가 해소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날 울게 했다. 물론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잡초가 뒤덮인 장대한 바다에 복수초와 같은 화려한 꽃이 피지 않아도 나는 이미 힘들다.  

잡초가 바다에 자라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그걸 상상함으로써 얼마나 물이 사라질지 상상해보자. 내 바다는... 결국 내 마음이었다. 잡초가 속절없이 자라날수록 내 바다의 수분이 줄어들고 염분은 증가할 테다. 그것은 내 마음이 불안정해지고 결국 괴로움이 커질 것을 뜻했다. 짜디 짠 내 마음은 큰 자극을 버텨낼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슬픈 추억, 씁쓸한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 복수초는 식물 전체에 맹독이 있다. 해독제가 없을 땐 꽃을 꺾다가 중독되어 죽게 된다. 복수초, 아도니스(adonis)가 내 마음에 피어난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아팠다. 고통스웠다. 내 바다는 그렇게 맹독에 중독됐다. 그렇기에, 마치 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이 움직이는 삼투 현상처럼, 나는 눈물을 흘려내서 농도가 짙은 내 마음속을 어떻게든 희석시켜야만 했다.


... 결국 그날 밤, 오래전 감정이 날 뒤흔든 날, 나는 세차게 울었다. 만조라는 현상은 바다와 이 가까울 때 일어나기에, 눈물을 불러일으키는 그 서러운 밤에 난 결국 울었다. 울면 감정이 해소된다; 그것이 슬픔의 메커니즘이니까. 한참 울고 나면 내 마음은 진정됐었다. 그래서 물이 메마르고 삭막해진 나의 바다가 눈물로써 다시 차오른 것이다. 빗물은 하늘에서 꽃을 타고 흘러내리고, 바다는 점점 가득 차올랐다. 복수초는 바닷물에 잠겨 죽었다.


오늘 내가 울기 전에 바닷물이 사라지던 상황을 다시 머릿속에 그려보자. 가끔씩 바닷물이 다시 차오르더라도, 살다 보면 이렇게 또 울기 직전의 상황까지 갈 때가 있다. 밀물과 썰물, 만조와 간조... 모든 세상의 이치는 순환하는 것이라고 본다. 잘 지내던 내가 오늘 복수초 한 송이가 피어나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던 것을 보면, 나는 고통이 미래에 또 반복될까 두렵다. 차올랐던 물에 잠겨 그 꽃은 죽어버렸지만, 결국 '그'가 남기고 간 꽃 이파리 몇 조각... 후에 소금기가 서릴 그 꽃잎에 난 이미 아프다.




지나간 가슴들아

늦게라도 너무 피어나지 마라

이미 내 바다에 너무

많은 잡초가 자라 있으니

안 그래도 없는 마음 다 가져가서

내 마음은 점점 짜다


눈물 가슴을 타고 내려와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밤

만조를 맞이한 바다와

눈물 자국이 남은 하늘


마음을 중독시켰던 꽃이 있다

피어났기에 아픈

그 복수초

결국 바닷물에 잠겨 죽


또다시 썰물은 찾아오겠지

못다 죽고 남은 의 꽃, 이파리

훗날 소금기가 서려

아리다



"문장을 적어내리는 것은 해소의 수단"

문장을 적고 말을 내뱉는 것은 감정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시를 적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지 모르는 그 상태가, 누군가에게 내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이미 공감이라는 기능의 반 이상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위안과 위로를 받는 것이다. 충분히 경청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나의 속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나의 아픔을 담은 시를 쓰는 이유는 이런 내 마음을 표현하고 해소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지만, 아마도 내 아픈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남들의 이야기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를 읽고 각자의 어떤 이야기나 감정이 떠오른다면  마음으로 시와 함께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야기로부터 떠오른 생각으로 본인만의 시와 생각을 또다시 떠올릴 수도 있다.


마음이라는 바다 안에 꽃이 피어난 적이 있을까... 생각해보자. 그러면 그 꽃이 무슨 꽃인지 알아보자. 맹독을 가진 복수초인지, 아니면 '사무치는 그리움' 황새냉이인지... 황새냉이가 피어났다면 그 황새 다리 모양의 열매 주머니에는 어떤 열매가 들어있고 그 다리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Image by Jaesung A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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