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어린 가슴을 뛰게 한 순간
-1.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보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너무 긴 서사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축약되어 있고 겉핥기입니다만, 글을 다 읽으시고 이 팀의 음악 한 곡 들어보게 되는 것까지가 글의 목적입니다.
0. 여러분은 처음 라이브 공연을 관람했던 게 언제이신가요? 저는 2006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고 부천에 거주하던 저는 우연찮은 기회로 시청 앞 광장에서 펼쳐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축하 공연>을 보게 됐습니다. 사실 이 공연은 거창한 이름과는 다르게-비가 와서 일수도 있겠습니다만-매우 조촐한 사이즈였습니다. 사실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이 공연에 어린 제 발걸음이 멈춘 데에는 지금부터 소개할 밴드의 영향이 컸습니다.
1. 그 밴드의 이름은 “와이낫”이었습니다.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없으신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 당시 인디씬이라고 한다면 지금처럼 트렌디한 음악을 제시하는 다양성이 보장된 시장이라는 이미지보다는 밴드 음악이 주를 잇는 마이너한 음악 씬의 느낌이 더욱 컸습니다. 크라잉넛을 위시로 한 “조선 펑크”류의 밴드부터 제3세계음악을 하는 밴드들까지 그야말로 라이브를 기반으로 한 밴드의 전성기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죠. 물론 그것이 인디씬을 더욱 마이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있었던 MBC 사태도 이유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여하튼 당시는 힙합을 제외하곤 대중음악을 더욱 많이 섭취하던 저에게 와이낫의 공연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후에 나왔던 밴드가 대중음악만 듣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었는데, 그들의 공연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깐요.
4. 와이낫은 Funk 음악을 베이스로 한 밴드입니다. 경쾌한 기타 리프와 베이스라인 탄탄한 드럼 위에 리드미컬한 랩과 멜로디가 특징입니다. 이들의 음악은 미국의 유명한 펑크 밴드인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닮았습니다. 실제로 그들을 위한 헌정곡 <R.H.C.P>라는 음악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죠.
5. “리듬”이라는 단어를 매우 좋아하는 팀인 와이낫은 라이브 중 전통 리듬악기인 꽹과리를 쓰는 등 리듬을 통한 경쾌함을 큰 무기로 삼습니다. 꽹과리를 사용하는 음악인 <why not>, 리듬 악기들로만 구성된 <리듬은 세상이 되고>, 와이낫스러운 사운드의 정수인 <파랑새>와 <Let’s Rock Now> 등. 그들의 음악에는 리듬이라는 공통분모가 흐릅니다.
6.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와이낫의 라이브는 듣는 재미를 넘어 보는 즐거움까지 제공합니다. 세션들의 탄탄함은 말할 것도 없고 흥겨움이 덤으로 쫓아오는 공연입니다.
7. 와이낫을 시작으로 저는 생전 처음 “디깅(Digging)”을 시작했습니다. 와이낫의 음악을 찾아들었고,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뮤지션들의 음악을 직접 찾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와이낫이 제게는 디깅의 즐거움을 알려준 것이죠.
8. 꼭 음악을 찾아 듣는 것만이 디깅은 아닙니다. 와이낫을 시작으로 저는 음악을 찾아 듣는 것 외에도 공연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클럽 공연들부터 대형 페스티벌까지, 초등학교 6학년 와이낫을 처음 접한 이후부터 저는 공연을 찾아다니는 맛을 느끼기 시작한 거죠.
9. 제 삶에서 와이낫은 취향의 태동을 도운 팀입니다. 새로운 밴드들을 소개해주고, 새로운 공연을 알려주고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준 계기입니다. 한창때에는 제 얼굴도 기억해주고, 같이 담소도 나눴는데(당시 저는 미성년이었기 때문에 귀여우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10. 석 장의 정규 앨범과 몇 장의 싱글, 미니앨범을 바탕으로 활동한 이들은 제가 성인이 된 이후 활동을 멈추고 있습니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 중인 이들이 언젠간 다시 만나 음악을 하는 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