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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oozin Apr 30. 2017

내가 집이라 부르는 곳

집을 버리고 떠나니, 온 세상 천지가 팔을 벌려 나를 안았다.

기억이 난다. 따뜻한 집으로 들어서면서 수분을 머금고 찹찹해진 아빠의 트렌치 코트, 그 코트의 감촉, 김서린 안경, 신발 벗을 새도 없이 아빠의 품에 뛰어가 안기는 오빠와 나, 냅다 뛰어드는 우리를 반기느라 함박웃음을 짓는 아빠의 얼굴 - 같은 것들이. 온갖 종류의 따뜻한 기억들이 산재해 있는 곳,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우리집.


유달리 또래들이 많았다. "수진아 놀자" 하고 친구가 밖에서 부르면 언제고 뛰어 나갈 수 있는 그런 동네였다. 셋방살이를 하다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설렘이 여기저기에서 묻어났다. 그 덕분에 이 곳은 아파트였지만 작고, 따뜻하고, 긴밀한 마을같은 느낌을 자아 냈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친구를 맺었고, 그 덕분에 서로의 사정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초 여름 이른 새벽에 오빠와 베란다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쪼그려 앉아 엄마아빠가 어디쯤 오는 지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우유배달을 갔던 걸까. 오빠와 나는 킥킥 대면서 번갈아 머리를 내밀어 안개가 자욱한 바깥을 둘러보고는 서로에게 고개를 저으며 아직이라고 일러주며 놀았다. 


기억이 난다. 엄마는 베란다에서 키우던 알로에를 칼로 슥 잘라내서,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선 우리 입에 퐁당퐁당 넣어줬다. 그 알로에의 신선하고, 미끄덩한 질감이 신기하게도 아직 입 안에 남아있다. 이런 사소하고 소중한 기억들이 이 공간 안에서 만들어졌다




유달시리 정이 넘쳤던 아빠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들을 유독 좋아했다고 했다. 오빠와 나를 얼마나 아꼈던지... 아빠가 운전하는 봉고차에 어쩌다 친구들이 타면 우리 아빠가 얼마나 멋진지 자랑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어지러울 정도였다. 건널목에서 빨간 신호에라도 걸리면 아빠는 애들에게 카운트 다운을 외쳐달라고 했다. 너희가 도우면 신호가 파란불로 바뀔 거라고. 우리는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는 목청을 높여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아빠는 빨간 신호에 걸리는 것 마저 즐거운 일로 만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 최고의 아빠였다. 나는 아빠를 내가 첫 집이라 기억하는 그 공간에서 잃었다.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아빠를 잃어버린 엄마에게 안방을 굴러야 한다고 했다. 아빠를 잃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는, 우리가 아빠를 기다리며 티비를 보던 안방에서 '아이고, 아이고' 몸으로 울면서 굴렀다. 


꽤 오랜 시간동안, 나는 아빠가 눈을 감은 작은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빠가 있을까봐 겁이 났고, 아빠가 없을까봐 겁이 났다. 검고 깊은 어둠이 그 방을 삼킨 것만 같았다. 햇볕이 스미는 대낮에도 내 눈에는 그 방만 검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혹여라도 들여다 보면 나마저 빨려 들어가버릴까봐 무서웠다. 그 방이 엄마마저 데려가버릴 까봐 겁이 났다. 


아빠를 잃은 세 식구는 다른 집으로 떠나 삶을 꾸렸다. 아무리 기억해보려 해도 그 사이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커버린 탓이었을까, 새로 이사간 집의 기억은 조금 황량하게 남아있다. 






어느새 나는 어른이 되었고, 스스로 돈을 벌면서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 그리고서 세상이 궁금하다며 훌쩍 떠난게 3년 전, 그 동안은 세상 어딘가를 떠돌며 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둠이 내리고 밤이 찾아오면 나는 잠을 잤다.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을, 떠돌이인 나를 받아들여준 공간을 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구 곳곳에 수없이 많은 나의 집이 생겼고, 그 속에서 나는 사소하고 소중한 기억들을 그리고 엮었다. 어떤 집이건 집은 좋은 기억과 아픈 기억을 함께 품는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임에 그렇다. 



그리운 곳이 너무나 많다. 세상 온 천지에 집을 얻은 댓가는, 끝없는 그리움이다. 눈이 내리는 밴쿠버의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듯 몽롱했던 셰인의 집. 집 바깥에 초록의 나무들이 빽빽했던 덕분에, 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초록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줬던 빅토리아의 쉐어 하우스. 아침마다 "굿 모닝 빅토리아!" 외치며 벌떡 일어나서 창문 밖을 내다 보게 만들었던, 647 미시간 스트릿. 함께 살던 세리나와 제임스가 투닥이던 와이키키의 23층 아파트, 그 중에서도 2층의 내 침대. 집주인 호세가 야무지게 쇼파 위에 담요를 두툼히 얹어 만들어준 내 침대, 그 곳은 플라야 델 카르멘 이었지.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그리움이 휘몰아 친다. 



첫 번째 나의 집, 그리고 나를 받아준 온 세계의 집들, 언젠가는 그 곳들을 다시 찾아나서는 여행을 떠나야지.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집이고 싶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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