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soozin Apr 18. 2017

잃고서 비로소

니가 나에게 그렇게 매정해 질 수 있단 걸. 늘 알고 싶어 했어.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너는, 나를 많이 사랑했지.


항상 너는 나보다 일찍 아침을 맞이 했어. 나는 늘 자고 있었지만 니가 뭘하는지는 쳐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조심히 닫히는 문소리, 샤워를 마치고 젖은 검은 머리카락위에 모자를 눌러쓰고선 거실로 나가는 거지.


거실에서 시작된 잔잔한 음악이 침대까지 스며들면, 부엌에 서있는 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어. 찹찹한 마룻바닥, 니가 아끼는 좋은 칼 한자루, 함께 장을 봐온 야채들, 그런 것들. 유니클로 속옷에 검정 비니만 눌러쓴 너의 늘씬한 뒷태를 쳐다보는게 좋아서, 거실로 나가 쇼파에 누워 요리하는 너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침들도 있었지. 도와줄까, 물어보면 이 순간이 하루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이니 괜찮다고, 좀 더 자라며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다가와 안아주며 말했어.


잘 달군 팬에 기름을 둘러 차이니즈 팬케익을 바삭하게 굽고, 끓는 물을 약간 식혔다가 식초를 더해 완벽한 수란을 만들고, 그린빈을 흐르는 물에 씻고 데쳐내서는 잘게 썬 마늘을 더해 볶아 냈지. 그 시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했어. 잘 구워진 팬케익 위에 아보카도를 길고 얇게 잘라 둥글게 펴 올리고, 수란, 그린빈까지 곁들이면 너의 두번째 시그니처 아침 완성이야. 너의 음식은 항상 예뻤지. 너는 누가 뭐래도 예술가이니까.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듯 아침을 차리고서는 다음엔 새로운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너는 말했지. 이대로 완벽하다는 내 진심을 너는 느꼈을까.






내가 침대에서 쭉 자고 있는 날에는 니가 다시 방으로 들어와 내 품 속으로 파고들었어. 기억나? 그 때마다 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너의 검은 젖은 머릿결을 헝클었던 거. 숱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된다며 너는 불만이었지만, 젖은 너의 검은 머리카락은 차가웠고 부드럽게 휘었어. 가끔은 그 머리칼 때문에 니가 더 좋아질 정도 였지.


같은 대사였어. 매일 아침. Breakfast is ready. 아침이 준비됐어. 라고 너는 말했지. 아침에 니가 일어나 샤워를 하는 물소리가 들릴 때부터 잠결에 이 순간을 기다렸던 나는 어쩜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어쩜 이런 사람이 내게로 왔을까. 어쩜 이런 니가 나를 사랑할까. 그 순간 마다 생각했어. 쉐이브폼 냄새가 섞인 마른 장작을 닮은 니 냄새, 물을 머금고 더 검어진 머리카락, 깨끗한 맨살, 탄탄한 근육을 힘껏 끌어 안으면서.




그 땐 몰랐지. 이렇게 우리가 멀어져서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우린 세상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고. 어떤 이야기든 털어놓을 수 있었고. 마음의 검고 검은, 나조차 싫어했던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이젠 다른 사람과 니가 같은 아침을 맞이 하고 있다는 걸 알아. 그녀와 너, 나 우리 셋은 저녁을 함께 먹었잖아.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내가 그 자리에 앉아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너희 둘을 바라보고 있었어. 감춰보려고 밝게 웃었지.


니가 몰래 준비한 내 생일선물은 시애틀 여행이었지. 그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산 자켓이었어. 옷의 선이나 재질에 민감한 니가, 너무 맘에 든다며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그 자켓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몇번이고 이야기 했어. 그렇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우리는 싸웠지만 말이야.


너는 그 자켓을 입고 있었지. 그 안에는 내가 추울 때마다 입던 두툼한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한번도 본 적 없는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있었어. 속으로 '덥겠네' 하고 생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니가 후드를 벗었어. 너라는 사람은 그대로라고 나는 안도했었던지 아니면 니가 그대로라서 슬펐던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조금만 잘 못하면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거든.


그 자켓을 살 때 까지만 해도 그 자켓을 부여잡고 가지말라고 애원할 줄은 몰랐는데. 니가 나에게 그렇게 매정해 질 수 있단 걸. 늘 알고 싶어 했어. 그래서 모진 말로 너를 상처줬지. 니가 이렇게 나를 떠나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어쩜 니가 나에게 이럴 수 있는 건지 암담해.




난 말야. 니가 백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너에게 그걸 직접 말한 날도 있었지. 감사하고 고맙지만 너는 나의 단 하나의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서 밀어내기도 상처주기도 쉬웠나봐. 세게 밀어 낼 때 마다 너는 나를 더 세게 끌어 안았으니까. 그런 니가 나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를 오답이라고 표시하고는 마음 한 구석에 밀어뒀지. 너의 부모님을 만날 때 마음 한 구석이 꾹꾹 찔려서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던 것도 그 탓이야.


우리가 함께 할 날을 숨죽이며 기다리겠다 했는데 말야. 어쩌면 보내주는 것, 너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더 성숙한 일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이제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행복해 셰인. 너의 행복을 거머쥐었으면 해. 너의 꿈이 이루어졌단 소식을, 언젠가 우연히 접할 수 있기를.



안녕 셰인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집이라 부르는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