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네 철판요리 1부 (Sik's Teppanyaki)

#6 다섯 번째 이야기, 나는야! 테판야끼 요리사~

by goodthings


드디어 첫 출근날이 됐다.

“5성 호텔에 셰프란 말이지. 내가 하하하!”

“그것도 오세아니아주에 10개 넘는 호텔체인이 있는 유명호텔.”

이런 생각하며 걷는 너무나 신나고 즐거운 출근길이었다.

그냥 입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았던 것 같다.

주방 안에 들어가 보니, 역시 호텔이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편리하게 되어있었고

테판야끼 시설도 서랍장에 식자재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 냉장 기능까지 되는 것이었다.

철판요리는 식자재의 신선도가 가장 중요한데, 냉장 서랍장 안에 보관하면

최고의 상태에서 최상이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이지 않나.

"역시 모든 것은 장비빨이라니까!"

Screenshot_20230531_123246_Samsung Internet.jpg 호텔 실내 내부

첫날 메뉴 구성이 어떤지 숙지하라고 해서 읽어 보면서 “와! 진짜 비싸다.”는 느낌이었는데,

레스토랑 내부의 시설등을 다 돌아보았을 때는 "호텔은 다르기는 다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역시 비즈니스맨은 다르네. 이 정도의 분위기를 제공하면 저 정도의 금액은 당연한 것 아니야!"

로 바뀌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제일 위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이윤이 돌아가는 거니까!

어찌 되었건 , 몇 년 차 안 되는 나에게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급여도 기존에 받았던 것보다 훨씬 많았고, 일하는 환경이 좋다 보니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 7년 가까이 정든 집을 떠난다는 것이 모두에게 쉽지는 않았지만,

잘 정리하고 나머지 가족들도 오클랜드로 3개월이 지난 후에 올라왔다.

이렇게 우리 네 가족이 오클랜드에서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우리들은 크라이스트처치라는 곳에서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지내다 보니

오클랜드라는 도시가 대도시로 느껴졌다.

크라이스트처치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 퇴근시간 교통체증!

쉬는 날 가족 모두 시내에 나갔다가 집에 올 때 평소에는 30분 걸리는데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시내 나갈 때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퇴근시간 때를 피해서 다니곤 했다.

그리고, 평소 일반퇴근 시간은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일반 사무직 직장인들의 애로사항이었다.

우리는 밤 10시 넘어서 끝나, 도시 고속도로가 꼭 아우토반의 일 차선 같으니까.

그렇다고 규정속도를 어기면 안 된다. 어기면 영락없이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온다.

이렇게 2년쯤 호텔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배우다 보니까 자신감도 생겨서인지,

어느 날 갑자기 좀 더 큰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편안하게 일하는 것에 대한 만족도 있지만, 호텔은 아주 전통성을 중요시 여긴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을 좋아하는 고객들도 상당히 많다.

오늘 찾다가 5년 후에 와도 어제 방문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일 것이다.

특히 요리사에게는 본인 가게가 아닌 이상 2년 정도가 한 곳에서 근무하는 가장 좋은 기간이다.

보통 2년 주기로 이직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른 것을 배우면서

개인 스스로의 요리지식을 키워 나간다. 꼭, 요리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사람에게는 다양한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Screenshot_20230531_123441_Samsung Internet.jpg 다른 부서 호텔 직원들 방문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준”이도 3개월 전에 퇴사를 결정하고 떠났다.

이 친구는 요리일을 그만두고 00중 공업의 슈퍼바이저 되는 과정을 준비하여서

그쪽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아버지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준이의 아버지가 그쪽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셔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아주 잘 나가는 슈퍼바이저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꿈꾸거나 해보고 싶었던 것을 선택의 때에 하느냐,

걱정과 염려 때문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삶의 전체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다.

선택을 했다고 모두 다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뉴질랜드 인구는 4백만이 조금 넘는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지금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경제력과 국력의 기초는 나라의 노동력 즉, 인구수가 어느 정도 되어야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고, 나라가 발전하면서 일반 국민들에게도

더 좋은 혜택들이 돌아올 수 있는 것인 것에 반하여, 뉴질랜드는 나라 자체가 관광수익에 의존도가

워낙 크다 보니 나중에 아이들을 위해서도 호주로 갈 수 있으면 가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구인광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루는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초여름인데도 무척 사늘한 날씨라서 집안에 있는 벽난로 안에 잔나무를 집어넣고

불을 피웠다. 불이 붙고 땔감용으로 사 온 나무들을 차례로 집어넣은 후, 고구마를 포일에 싸서

안에 넣고 기다렸다.

창문을 통해서 내리는 비를 구경하면서, 먹는 군고구마 맛은 일품이다.

고구마를 맛있게 먹어가면서 호주 관련 유튜브를 보던 중

서쪽에 있는 “퍼스”라는 도시의 영상을 한 유튜버가 상세하게 찍어서 올려놓은 것을 시청하고 있었다.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시드니, 브리즈번, 멜버른 쪽 말고 나는 퍼스로 가야겠다. 일을 찾는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옆으로 와서 물었다.

“여기 어디야? “

“호주 서쪽에 퍼스라는 도시야. 인구는 오클랜드랑 비슷하네. 2백만쯤 되는 것 같아.”

“어. 저거 블랙스완 (검은색 백조) 아냐?”

“응. 퍼스에는 블랙스완이 많이 있다네.”

“계획도시 인가 봐? 도로나 철도 같은 게 새것처럼 보이네. “

“그렇다네. 유튜버가 이야기하는데 멜버른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진 도시라네. 금광붐이 몇 년 전에

엄청났잖아. 그때 갑자기 발전하면서 도시도 많이 커졌다고 하네.”

“자기야. 우리 호주 가서 살까? 나중에 애들한테도 더 좋을 것 같고.”
“뭐. 일이 있어야지! 지진 때문이기는 하지만, 크라이스트처치에 평생 살 것 같았은데, 오클랜드로 왔잖아.

어디든 못 가겠어. 큰 도시로 옮기니까 좋은 점들이 더 많지 않아!”

“그래. 그럼 내가 seek (호주, 뉴질랜드에서 주로 사용하는 구인 광고사이트) 통해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어볼게.”

아내는 대학 때 1년 정도 브리즈번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호주로 갈 수 있으면 갈까?라고 물으니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 후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고 기다렸는데, 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중에 한 곳이 철판요리 시설이 되어있고, 시내 한 중앙에 있는 일식당인데 규모가 상당했다.

120석 이상 손님을 받는 곳이다.

Skype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쪽에서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언제부터 일이 가능하느냐부터 상세한 이야기를 이메일을 통해서 주고받았다.

뉴질랜드 대비 호주달러의 가치가 더 높은 데다가, 그곳에서 챙겨주는 연금 (급여에 약 10프로)에 연차까지 모두 다 지급이 되고, 급여도 뉴질랜드 보다 더 많이 준다는 조건과 함께 계약서를 보내왔다.

역시 인증된 곳 (5성 호텔)에서 일을 하니까 대우 자체도 달라졌다.


며칠을 고민했다.

아내는 “뭘 고민해. 좋은 조건인데 무조건 가야지. 6개월 있어보고, 아니면 돌아와.”

“그래. 고마워. 그럼 진행하고 호텔에도 사직서 제출한다. “

“호주 잘 사는 나라인데, 여기보다 훨씬 좋겠지. 인구도 5배 이상 많잖아.”

“총주방장한테 호주로 가게 됐다고 다음 주에 이야기해야겠다.”

이미 준이도 한국으로 떠나고, 나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새로운 세상! 캥거루와 코알라 있는 그곳!

호주!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 보는 거야! "

다 좋을 줄 만 알았다.

처음에는 친절한 올리버 씨한테 일을 배우고 오클랜드에 올 때는 준이에게 도움을 받아서

호텔에 취업정보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탄탄대로일 줄 만 알았는데, 호주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로 이동!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 가지였다. 40도! 여름이란 계절이 이렇게까지 더운 것이었어!!

몰랐다. 뉴질랜드와 거의 비슷한 환경인 줄 알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모든 것을 적응해 나가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뭐!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으니까, 몇 주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언제나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초긍정적이다.

RESET!


Screenshot_20230531_125536_Samsung Internet.jpg 퍼스 시내풍경



이전 06화식이네 철판요리 1부 (Sik's Teppany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