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네 철판요리 1부(Sik's Teppanayaki)

#7. 여섯 번째 이야기, 좋은 오퍼는 받아도 되는 거야!

by goodthings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인데, 온 가족이 모두 따라 나왔다.

같이 곧 만나자고 이야기하면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공항 내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다.

작은 아이는 뭐가 뭔지도 잘 모를 나이 “3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딸!

그리고 여섯 살 아들 윌리암.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더 좋은 일로 가는 건데...

탑승 수속 후 항공권을 받고서 아이들과 작별을 하고 공항에서 헤어지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비행기가 오클랜드를 떠나서 먼저 도착한 곳은 브리즈번!

그때는 이곳에 지금 내가 와서 살지는 몰랐을 때였다.

2시간 정도 있다가 환승하고 약 5시간 후에 퍼스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찾고

미리 오클랜드에 있을 적에 셰어하우스를 알아봤어서 택시를 타고 알고 있는 주소를 향해서 갔다.

“띵똥”

소리가 울리자마자 한 친구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 뉴질랜드에서 온 '식'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전 '대니' 예요, 방장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저보다 한참 형님이 오신다고,

저의 새로운 룸메이트가 되실 꺼라고요. 일단 들어오세요. 고생 많으셨어요. 형님.”

“네. 고마워요. 제 짐은 오른편에 넣으면 되나요.”

“맞아요. 형님. 말씀 그냥 편하게 하세요. 저랑 거의 띠동갑이라 하시던데.”

“하하. 대니 씨는 오늘 일 안 해요? “

“오늘은 오프예요. 형님도 오늘부터 일 시작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네. 오늘은 잠깐 직장 위치만 보고 오려고요.”

“형님. 짐 정리하시고 씻으신 후에 같이 나가 보시죠.

여기는 프리셔틀이 아주 잘 돼 있어서 시내 나갈 때 아주 편해요.”

“아. 그런 게 있어요. 난 걸어 갈려고 했는데. 그럼 씻고 나와서 시간 되면 같이 나가요. 식사 아직 안 했죠.”

“먼저 씻고 나오세요. 형님. 그리고 나가시죠.”


퍼스 시내의 조형물

그 후에 대니와 나는 새로운 일터의 위치를 확인할 겸 그 앞을 가봤다.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무료버스를 타니 3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완전 신세계이다. 그것도 무료!

위치를 확인한 후에 대니와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근처 한식집에서 밥을 먹고,

술 몇 병을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한두 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니는 건축학과를 나오고 줄곧 서울에서

7년 가까이 일을 했었다 한다.

성과도 많이 내고, 본인도 열심히 했는데 뭔가 모르게 한국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워킹홀러데이비자 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나자마자 회사에 사직서를 냈단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다. 급여도 꽤 되고, 회사도 시간이 지날수록 빠른 성장을 해가는 상황인데, 그래서인지 다른 회사 내 직원들이

“나중에 우리 다 같이 호주 여행 가면 되지, 뭔 웍홀야. 가면 개고생이라고 나이 30에.”

이 수많은 만류도 뿌리치고 대니는 이곳으로 향했다.

만 30세까지 호주 워킹홀러데이비자 신청이 가능한 나이제한이 있는데,

본인 나이가 정확히 만 30세라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한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잡을 수 없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대니는 철저하게 본인 관리를 하는 친구였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미적거리는 것 없이 씻고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한 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이른 기상을 하고 항상 운동을 했고, 나랑 같이 지내는 동안 아침을 단 한 번도 거르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룸메이트 대니와 거의 1년 가까이 같이 지냈다.

그 후에 대니는 캐나다로 떠났는데, 10년 가까이 된 지금도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역시 본인이 설정해 놓은 계획에 맞추어서 사는 사람은 무엇이든 이루는 것 같다.

나의 새로운 일터는 규모가 꽤 되는 만큼 직원들 수도 많았다.

주방에는 항상 4명 이상이 있었고, 홀에도 4명 정도는 항상 같이 했다.

어디든 처음에 들어가면 텃새라는 것이 존재하듯이, 이제 곧 그만두는 주방직원이 뭔지 모를

대충심리라고 할까, 귀차니즘이라 할까.. 건성으로 인수인계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딱히 뭐라 꼬집어서 말할 수도 없기에 알려주는 대로 들었다.

각각의 업소마다 모든 레시피는 다르다.

그런데 본인 것도 아니지만 오픈멤버로 7년 이상 근무 했다고 한다.

오픈 준비 하면서 일본인 직원이 만들어낸 레시피라는데 , 그 일본인 친구는 몇 년 후

고국으로 돌아갔고 지금 이 친구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가 괜히 으름장을 놓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확한 정량은 알려주지 않았다.

본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이야기를 전해 들은 대로 계속 급여인상을 무리하게 요구해서

오너가 그렇게는 더 이상 못해준다고 해서 그만두는 것이라 더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후로 다른 직원들하고 비슷한 맛을 찾아내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내가 가지고 온 호텔에서의 레시피를 이용해서 몇몇 메뉴는 바꾸어 나갔다.

역시 반응은 좋았다. 검증된 맛이라서 그런가 보다.

보통 주방장이 바뀌게 되면 , 모든 조리 방법과 음식 맛도 바뀌어 나간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경력이 5년 정도밖에 안 되는 풋내기라서 헤드셰프까지

자리에 오르는 것은 무리수가 있는 시기였다.

어느 자리에서나 누군가를 통솔하려면 폭넓게 알고, 많은 곳들을 두루 경험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하고는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일할 때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했다.

가끔씩 회식이 있을 때는 같이 어울렸고, 일터에서는 누구 하나 약게 일하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 중국계 친구가 나간 후에 대만친구가 헤드셰프 역할을 대신하였다.

원래 Chef de partie (주방의 한 섹션을 담당) 역할이었는데, 공석인 자리를 대신하였다.

이 친구도 몇 달 후에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서 내가 헤드셰프에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경험이 없어서 인지 재료확인부터 오더까지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른들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

일이라는 것은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 같다. 처음에 잘 몰라서 출근시간 2시간 전부터 가서 이것저것 확인하느라 무임금의 시간을 쓴 것 말고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바탕이 되어서 내가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뭐든 해봐야 하는 것이니까!

직원들하고의 호흡, 일에 대한 만족도가 너무 완벽했던 퍼스에서의 1년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럭비대표팀
Screenshot_20230604_134446_Samsung Internet.jpg 대표팀 감독님과 함께

딱 한 번의 사고만 빼면!

Crazy busy! 정신없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고구마를 썰면서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도 칼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칼이 왼손 엄지손톱 위를 지나갔다.

요리를 하다 보면 “직감”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생기게 되는데, “이거 좀 심각한 것 같은데.”라는

신호를 뇌에서 보내왔다.

아니나 다를까 손톱의 2분의 1이 날아갔다. 급한 대로 지혈을 하고, 레스토랑 사장님이 인근에 IGA라는

큰 슈퍼마켓과 주류점도 운영하셨는데 그곳에 직원 중 한 명이 의료 쪽에서 일을 했던 친구라고 급히 올라가 보라고 했다.

급한 대로 지혈을 해주면서, 일할 수 있겠냐고 묻길래 괜찮다고 하니까 통증이 느껴지면 위로 손을 올리고

몇 초 있다가 내리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내려왔는데 머릿속에는 하던 일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어디서 생겨난 정신력인지..."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보니 , 깜박 잊었던 손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책임감이라는 것은

그 어떠한 아픔, 고통 같은 것들도 망각하게 만들 수 도 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철판요리를 하지 않으면 업장에 당일 매상에 지장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몇십 명의 손님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아주 파렴치한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 지나니까 불편함은 있지만 그런대로 생활하는 데는 괜찮았다.


1년쯤 지났나, 일주일에 몇 번씩 일반메뉴 단체손님들이 있을 때는

나 대신해서 두 번 정도 철판요리를 하는 분인데 나보다 10살 정도 많았다.

싱가포르 사람이고 이름은 “나단”.. 일본에서도 꽤 오랫동안 일을 했었다 한다.

하루는 나단이 조용히 나에게 일 끝나고 맥주 한잔 어떠냐고 물었다.

같이 인근에 pub에 가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이 싱가포르 자본가로 부터 투자를 받아서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North Bridge에... 퍼스에서 가장 좋은 상권이 형성된 곳이다.

“같이 한번 해볼래. 지금 너 급여 얼마 받아. 내가 오너한테 그 이상 맞추어 달라고 할게.

어때. 같이 해볼 생각 없어?”

“오퍼 주신 것 먼저 감사드려요.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좋겠는데, 오픈이 언제인가요?”

“가게 내부에 들어갈 소품들은 지금 해외에서 들어오고 있고, 지난달부터 주방 공사는 들어갔어. 식이씨도 한번 오픈해 보는 것도 봐두어야 나중에 도움이 될 거야.”

“참, 그리고 나는 다음 주부터 새로 오픈하는 곳으로 출근할 거야. 그때부터 급여는 당연히 건물주가 준다고 했어. 약 3주 후면 오픈을 할 거니까.”

“네. 저도 궁금하거든요. 가게 오픈은 어떻게 하는지, 시청에 허가를 어떻게 받는지도요.

그래야 나중에 제 업장을 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 보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래. 맞아. 어느 요리사나 마지막은 본인 이름 걸고 레스토랑 운영하는 것이 꿈이니까.

나는 몇 군데 했었는데,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더 이상 벌리지 않으려고 이렇게 남의 밑에서 일하고 있어.

그런데 식이씨는 한번 해봐야지. 이 일을 시작한 이상…”

좋은 조건이었다.

고민할 일도 없었다. 말하고 나오면 되는데 …

호주에서의 이직은 한국처럼 “정”으로 이끌려서 결정이 계속 늦추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언제든지 말을 할 수 있는 문화이다.

며칠 고민하고 결정을 하였다. 결론은 “이직”

나에게 주어진 기회. 오픈하는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산교육현장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직서”를 내는데 씁쓸했다.

한국인에게만 존재하는 “정”이라는 것이 내 몸 전체의 뼛속까지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후에 레스토랑 운영진도 바로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고, 호텔에서 근무하는 주방장 친구였다.

인터뷰 때 같이 동석을 하였는데, 팔 전체에 감싸고 있는 문신자국들. 아우라가 상당했다.

그 친구는 본인이 채용되면 본인의 스타일로 바꾸어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후에 주방에 들어가서

몇몇 요리를 해서 가지고 나왔다.

맛있었다. 이런 맛도 있구나.

에다마메(완두콩)를 데워만 나가는 것이 아니고 , 버터랑 마늘향이 어우러지니까 훨씬 맛있네.

말은 안 했지만 , 칭찬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자존심 때문에 별말은 안 했지만…

결국에는 그 친구가 채용되었는데, 본인은 당장부터 일 시작 이 가능하다고 했다.

보통 2주 노티스였는데, 나도 그 참에 잘 되었다 생각을 하고서 , 오클랜드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였다. 가족들이 2주 후에 퍼스에 잠시 들어와서 이틀 정도 보내고서 발리에 여행을 한 후에 나는 다시 퍼스로 들어오고, 가족들은 한국에 잠시 방문을 할 계획이었다.


나단 에게 전화를 하고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까, 당장 내일부터라도 나오라고 했다.

“참, 그리고 저 2주 후에 4일만 휴가 가능할까요?”

“그래. 다녀와. 얼마 만에 보는 가족들인데, 그래도 주말은 피해야 해.”

“네. 안 그래도 월요일부터 목요일이에요.”

“그래. 알았어. 걱정 말고 내일 보자고..”

발리 여행 중 좋아라 하는 아이들



무엇인가를 결정 내리는 것은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힘든 과제이다.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데 움켜쥐고서 놓지 않으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에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내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다는 것을 ~

“좀 일찍 할걸!”

조형물 따라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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