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여섯 번째 이야기, 더 큰 세상으로 가는 거야!
가족들과 즐거운 발리여행을 마치고, 계획대로 아내와 아이들은 한국으로 갔고
나는 다시 퍼스로 돌아왔다.
돌아온 다음날부터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였는데, 역시 모든 것이 새것이다 보니 기분이 마냥 좋았다.
꼭 새 신발 새 옷 입은 것처럼…
위치 때문인지 손님들은 갈수록 많아졌고, 안정되어 보였는데 몇 달 시간이 지나서부터는
점차 매상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오픈 빨 이었나!
무엇이 문제이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철판요리라고 광고와 메뉴판에 나오는데
손님들 앞에서의 요리가 아닌 주방 안에서 만들어져서 나오니까 최고급 재료를 사용하여도
받는 입장에서는 “퍼포먼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이 돈 내고 먹어야 돼”라는
마음속에서 생기는 불협화음이 있을만할 것 같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야끼토리도 안에서 요리해서 나갔다.
손님들은 요리과정을 보는 것에 더 점수를 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미 가게 시설이
끝난 상태이기도 하고, 내가 뭐라 할 위치도 아니라서 조용히 일만 했던 것 같다.
차라리, 철판요리, 야끼토리는 포기를 하고 다른 쪽으로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대니”는 일본에 직접 가서 일도 해보고 나름대로 “장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Skip이라는 것이 없다.
장어구이를 만들어도 소스를 발라가면서 Salamander (위에서만 열선이 있는 요리기구)를 이용하여서
굽는데 손님의 테이블까지 가는 시간이 20분 이상이 넘는다.
모두들 아는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장인정신!
하지만 현사회 모든 분야에서는 시간의 가치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8282"가 필수이다.
당연히 결과물도 잘 나와야 하는 것이고...
하루는 퍼스에 있던 빅이벤트인데 “자이언트 데이”라고 엄청난 크기의 인형이
시내 전역을 다니는 것이었는데 엄청난 인파들이 볼거리를 놓칠세라 모두 나온 것 같았다.
그날 출근길에도 기차에서 내리니 사람에 치여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앞길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간신히 도착하여서 직원들과 준비를 하는데 , 대니 가 오늘 큰 행사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니 넉넉하게 준비하자고 했다.
“식, 오늘은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준비하고, 차우무시 (일본식 계란찜) 도 넉넉히 해놓자고”
“네. 생선들도 넉넉히 준비해 놀까요? “
“그래. 다 충분할 정도로 준비해 놓자고. “
드디어 11시 30분!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작하자. 물 들어온다. 식! 가스불 뒤에 것도 다 올려놔. 화구 12개 다 써야 할 것 같아. “
“네. 다 올렸어요.”
“제이든. 네가 식이랑 같이 핫푸드 좀 빨리 빼줘. 내가 콜드섹션하고 우나기(장어) 랑 메로구이는
내가 할 테니까.”
순식간에 테이블이 거의 다 찾고 출입구에서도 웨이팅 줄이 상당히 길었다.
자이언트 따라다니느라 배고프고 지쳐 보이는 손님들은 음식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도킷은 20장을 넘어서 30장, 40장 밀리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나가야 하는 건데, 오케스트라 에서의 지휘자처럼 각각 섹션에서 해야 할 것을
지시하면서 본인일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도킷을 더 이상 꽃을 곳이 없을 정도로 쌓여만 갔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30년 가까이의 경력자이고 총괄 메니징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
오늘은 이건 Skip 하세요.라고 어떠한 조언도 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음식을 기다리던 손님들이 못 버티고 나가고, 앉아있던 손님들도 주문한 음식을
모두 받지 못한 테이블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지옥 같았던 3시간이 지나고, 점심과 저녁사이에 쉬는 시간에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나 같았으면 장어요리 나갈 때 Salamander 말고 토치로 구워서 불맛만 냈을 텐데…
오늘 같이 바쁜 날은 사람들이 음식에 질보다는 빠르기를 더 중요시 여겼을 것 같은데...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빵 한 조각을 주어도 맛있었을 텐데…등등 "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해 보았다.
나도 충청도 사람이라서 행동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대니”는 상황과는 무관하게 언제나
같은 방법으로 모든 일을 하다 보니, 말 그대로 올드패션의 일머리를 가지고
AI를 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래도 정말로 착하고 , 항상 일을 마치면 나를 집까지 태워다 주고 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서 힘에 부치면, 결국에는 그 방식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장애물이 보이면 우회하려는 본능이 머릿속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장애물을 넘는다면 큰 보상이 있더라도 , 스스로 단정한다.
“난 못해. 난 안돼”라고…
단, 큰 성공을 거두는 소수는 다르다. 장애물을 뛰어넘겠지. 수백 번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그걸 넘어야만 보물창고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럴 것이다.
결국에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메뉴가 전부 바뀌었다.
All you can eat 말 그대로, 뷔페식당으로 …
이건 아닌데, 뭔가 정석으로 배울 줄 알았는데 , 이렇게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고 다른 차선책을 찾는다는 것은 사람의 품성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일한 지 이제 8개월!
“아닌 건 아니다”라는 생각과 함께 그때부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내 이름을 걸고서 오픈을 해보려 하는 작은 꿈이 있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곳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라는 의구심에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는 구인광고에 오클랜드에 있던 호텔이 호주에는 도시마다 있는데, 브리즈번의 00 호텔에 철판요리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어, 브리즈번 00 호텔에 자리가 났네. 오클랜드 있었을 때랑 같은 호텔이고.”
“그래. 한번 지원해 봐.”
“퍼스에서 브리즈번이면 뉴질랜드에서 호주 오는 것과 똑같은 건데.”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고 그랬어. 퍼스가 좋기는 한데 너무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아.”
“하기야. 그건 그렇다. 멜버른, 브리즈번, 시드니 다 동쪽에 있으니까. 지원해 봐야겠다.
전에부터 찾아봤는데 몇 년 동안 없더니만, 잘 되면 좋겠다.”
“오늘 저녁에 이력서랑 자기소개서 잘 써서 넣어봐. 자기 오클랜드에 총주방장한테 추천서
받은 것도 있다고 했잖아. 그것도 같이 넣으면 호텔체인이니까 가산점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 빨리 해야겠다.”
그리고 2주 정도 흘렀다.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지역번호가 07!
브리즈번이다. 마침 점심서비스가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라서 화장실을 간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받았다.
“Hello”
“Are you Sik….. I’m Suzan from 00 Hotel.”
스카이프 인터뷰가 언제 가능하냐고 물어서 내일이 오프데이인데 아무 때나 좋다고 했다.
인터뷰를 한번 해봤던 것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넘어갔고,
5일 안에 연락을 주겠다면서 전화통화를 마치었다.
한 이틀 지났나 , 계약서와 함께 이메일이 도착했다.
최대한 빨리 와줄 수 있냐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사회생활에서는 들어갈 때보다 나갈 때 어떻게 "유종의 미"를 거두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을 알기에 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변하였다.
나몰라 하고, 1주일만 시간 주고 옮겨도 되었지만 사람이 언제 또 어떻게 볼지 모르고 나를 좋게 보아서 같이 일을 하자고 좋은 조건에 오퍼까지 해준 대니에게 못할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호텔 측에 말한 것이다.
“대니. 우선 미안해요. “
“식. 네가 나한테 미안한 게 뭐 있어. 월급 올려 달라고. 조금만 기다려봐. 건물주한테 말할 테니.”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제가 아내랑 많은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퍼스 보다는 동쪽에 있는
도시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해서요.”
“음… 일자리는 찾았고?”
“네. 00 호텔에서 일하러 오라 하네요.”
“식. 축하해. 그럼. 가야지. 언제 갈 건데”
“3주 시간 달라고 했어요.”
“고맙네. 3주 정도의 시간이면 나도 광고내서 사람 찾고 인수인계는 식이가 워낙 꼼꼼하니 잘해줄 테고.
다시 한번 축하해.”
대니는 이런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도 편하게 연락을 하고 있는 사이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당뇨 합병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지금 의족을 사용하고 있는데, 요리일은 못하지만 다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관계”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내가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하여 생각해 주는 것을 귀신같이 상대방은 알아챈다.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진심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움과 함께 찾아온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바쁜 환경을 찾아서 가야 하는 것 아닌가에 대하여
아내와 아이야기 종종 나누었는데 시드니, 멜버른은 아니지만 세 번째로 큰 도시 브리즈번으로
가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몇 년만 더 일을 배우고 , 나의 사업장을 오픈할 때까지만 , 열심히 달려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