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여덟 번째 이야기, 인생은 하륜처럼 사는 거야!
브리즈번 호텔에 근무한 지도 이제 어느덧 1년 가까이 흘러갔다.
일은 손에 익숙해졌고, 팀워크도 잘 맞아서 일하는 것이 한결 부드럽고 쉬워졌다.
무슨 일이건 일정기간 지나다 보면 몸에서 자동으로 기억하고 상황에 맞추어서 알맞은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운전인데, 다양한 다른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가장 좋은 솔루션을 우리가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손이나 발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리"라는 분야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손맛"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침에 출근을 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 몇몇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가 드렸다.
"회장이 온다네?"
"언제!"
"다음 주에 온다네. 우리한테 나누어준 호텔 사훈 같은 것 물어보고 모르면 징계 먹는다던데..."
"조쉬. 넌 다 외웠어? "
"아니 뭔지 몰라. 윈톤 너는?"
"나도 못 외었어. 근데 사실은 난 다음 주부터 휴가야. 2주 동안... 살아만 있어. 조쉬.."
"에이. 자랑하냐. 나도 휴가 가고 싶다. 피해 있어야지. 회장이 와 있을 때는..."
몇 달 전에 다른 직원들도 회장이 오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이야기했다.
궁금해서 그때 물었었다. 회장을 만난 적 있느냐고... 그런데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했다.
호텔 전체가 비상이 걸렸다.
일주일 동안 시간의 틈이 날 때마다 직원들 모두 대청소로 바쁘게들 보냈다.
역시 사람들이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으면 그것이 음식이든.. 장소건... 사람이든..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비치어진다.
회장일행이 호텔에서 총 5일 동안 머물면서 다 돌아본다고 했는데. 다행히 3일째 까지
매니저급 직원들만 빼고는 아무도 회장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했다.
바쁜 점심 서비스를 미치고 모두 직원 휴게실로 향해 늦은 식사를 하로 내려갔다. 다들 경직된 몸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은 꿀 같은 2시간이었다.
이때도 역시 "이시"는 자전거 복장으로 갈아입고 본인 자전거를 타고서 나갔다.
몸이 피곤해서 못 움직일 것 같은 상황에도 나가서 30분 신나게 달리고 오면 확실히 다르다고
다른 직원들에게도 자전거가 우리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자주 이야기 한다.
다 같이 식사를 마치고 전화기를 보려고 주머니를 만져보니 무엇인가 만져지는 것이 없었다.
"위에다 놓고 왔나 보네.."
전화기를 가지러 위층으로 올라가서 주방 안에 문을 "쓱" 하고 밀려하는데 , 그전에 문 반대편에서 다른 누가 먼저 문을 당겼다.
회장이 내 눈앞에 보였다.
어찌해야 되지. 호텔 사훈 물어보면 어떻게 하지.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회장은 밝은 미소로 나에게 "항상 직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해주어서 언제나 고맙게 느끼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아주 평범한 외모에 평균키보다는 조금 작고, 동네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60대 초 중반의 남성이었다.
나는 별 할 말이 없어서 , "Thank you very much. sir."이라는 말을 하고 전화기를 챙겨서 내려왔다.
휴게실에 도착해서 내가 회장을 위에서 봤다 하니까. 사훈 틀리지 않고 다 잘 이야기했냐고 물었다.
그런 것 묻지도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니, 왕아저씨는 나에게 "거짓말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진짜냐고도 물었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회장은 정말로 좋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호텔 체인의 실 소유주, 수천억 원의 자산가의 외모로는 절대 알아볼 수 없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무엇이든지 직접 겪어 보아야 아는 것 같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카더라 통신" 같은 것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 있다.
잠잠하기만 했었는데,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
고요할 때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드디어 헤드셰프 "이시"는 일본인 특유의 "곧이곧대로"의 반응을 부회장에게 보인 것이다.
부회장이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가기 전에 배가 고팠는지 우동 한 그릇을 구석에서 먹고 있었는데,
"이시"가 당당하게 걸어가서 재료가 왜 바뀌었냐고 따지면서 물었던 것 같다.
나중에 상황을 들어보니, 재료값이 워낙 많이 올라서 새우 크기가 한 단계 작은 것으로 바꿀 거라고
공표를 한 것인데 이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부회장의 식사자리에 직접 찾아간 것이다.
나는 그때 다른 손님 요리를 하고 있다가 얼핏 보았는데, 몇십 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부회장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읽던 신문을 내동댕이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 이해한다.
"이시"도 얼마나 화가 났는지, "빠가야로"라고 분을 못 참고 혼잣말로 하는 것을 들었다.
몇 달 지났나 보다.
눈밖에 난 사람은 위에서 보기에 불편한가 보다. 하지만 호주법을 토대로 보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회사에서 쫓아낼 수 없다.
구실을 만들어야 한다.
공문이 내려왔는데, 직위에 관계없이 요리사는 일반요리는 물론 철판요리까지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하라는 것은 아니고 철판요리를 트레이닝을 통하여서라도 배워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직감이 왔다.
이건 "이시"(헤드셰프)를 내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냥 흐름에 따라가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역행하다 보면 온갖 장애물을 만난다.
그 장애물들을 모두 넘어선다면 영웅이 되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이라도 숙이고 들어가면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시"는 바로 결심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직서를 냈다.
아내인 하루 씨가 말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이시"가 떠나고 한동안 헤드셰프 자리는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한번 미움을 산 사람은 가족들에게도 불이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과중업무를 시키는 것은 호주에서는 있을 수 없지만, 하루상에게 새벽부터 준비해서 오전 11시면 끝나는 일을 준 것이다.
누구에게는 좋을 수도 있지만, 나이 50대의 여자가 혼자서 주방에 있는다는 것이 쉬운 일 이 아니다.
고립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준 것이다.
사람들과 재료 손질 하면서 이런 저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재미로 삼았는데, 그런 것을 아예 차단해 버렸으니... 하루 씨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이런 일들로 많이 느꼈다.
윗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더라도 앞에서 만큼은 그냥 따르는 것처럼은 보여주자.
나중에 정정하더라도.
드라마 정도전에 나오는 처세술의 대가인 하륜이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