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네 철판요리 1부 (Sik's Teppanyaki)

#10. 열 번째 이야기, 준비됐으면 쏘세요~

by goodthings

아내와 처음에 철판요리를 배우면 꼭 우리 가게를 하자고 했고, 나 또한 오너셰프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어느 한 곳에 정을 붙이면 어떠한 좋은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서 "미래의 계획"은 잊고 계속 호텔에 남아 있었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너무 좋았고, 일 마치고서 가끔씩 즐기는 맥주 한잔이 우리들의 결속력을

높여 주면서 피곤함도 싹 사라지게 해 주었다.

철판요리를 시작한 지도 벌써 7~8년 정도나 지나갔다.

많은 일들도 있었고, 일이 힘이 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집에로 향할 때는 그 어떤 힘들었던 일, 사람에 대한 기억들이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서

없어지는 것 같았다.

버틸 수 있는 일은 계속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오너셰프"의 꿈은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불쏘시개 같은 역할이 없었더라면~


호주에 있는 유명하다 싶은 음식점의 토요일은 말 그대로 "크레이지 비지"이다.

그 정도로 호주사람들은 외식을 좋아하고, 특히 주말에 한 끼는 밖에서 먹는 것을 관례로 여기는 것 같다.

워낙 준비로 바빠서 각자 해야 할 일로 모두들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알피"가 갑자기 나를 향해서 이야기를 했다.


"치킨 가라게 (일본식 닭튀김요리) 재료 준비 해 논 것을 치웠어?"

"아니요. 안 치웠는데."

"그럼 , 어디 갔는데. 식이 네가 마지막에 쿨룸 체크했잖아."

"어제 거기 없던데. 잠시만요. 점검 노트 좀 볼게요. 없었어요."

"그럼, 1층에 다른 쿨룸에 다녀와봐."

"지금 오픈하려면 20분 밖에 안 남아서 너무 바쁜데요. 이것만 마치고 다녀오면 안 될까요?"

"뭘. 말이 많아. 다녀와. 네가 내려다 논 것 아냐."

our-popular-menu-chicken.jpg 일본식 닭튀김 (치킨 가라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다른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집에서 아내와 다투거나 그럴 때

다른 직원한테 짜증을 더 많이 내고 본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한다고 한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시비를 붙여 싸우자는 사람 앞에서는 그 어떤 해결책이나 방법이 없다.

피하는 게 상책이고, 무슨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것 밖에는~

내려가 보니 1층 쿨룸에 있는 것 아닌가! 이건 뭐 귀신이 곡할 노릇도 아니고..

어이없다는 말 밖에 다른 표현이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알피가 쿨룸에 스톡체크한다고 다른 직원이 시켜서 아래층에 보관해 놓으라고

했단다. 그런데 그때 물건 확인은 하지 않고 몇 개를 잠시 내려다 놓고, 스톡체크 후에 다시 올려놓는데

그때 엉뚱한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은 것이다.

진짜 XX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계속 같이 일을 하게 된다면 "나"손해 볼 것 같고,

정작 오너셰프를 하고자 할 때 에너지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해서 누군가에 고용되어서 하는 일은 졸업을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해진 것이 이때다.

"알피"는 홍콩사람이다.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되는 소식을 듣고 호주로 왔다고 한다.

1960년대 초반 태생이니까 가장 활발한 시기 때 나라의 문제로 떠날 수밖에 없는 이방인 신세가 된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융통성이 없나. 꽉 막히고 , 본인만 알고... 아마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떴다고 무작정 하던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내가 만약 혼자라면 가능하지만 가족의 가장으로서는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날 이후로 매물로 나온 가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두 달쯤 지났나 보다. 토요일이었는데 아내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게가 물권으로 올라왔다고

이야기했다.

연락을 하고서 직접 방문을 했는데, 뭔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시내권과 인접하여 있고, 동네도 부촌이라서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게가 자리도 잡은 곳이니까 저 정도 금액을 요구하나 보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오퍼 한번 넣어볼까?"

"일단, 오늘 일 끝나고서 부동산 사장님한테 연락해 보자."

"알았어. 있다 이야기해."

호텔에 가서 일을 하면서 하루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쉬는 날이면 그곳 앞에 가서 손님이 얼마나 있나 확인을 수차례 해보았다.

위치가 나쁘지 않아서 인지 , 자리가 모두 차지는 않았지만 평일치고는 꽤 괜찮아 보였다.

몇 번 다시 확인한 후에 , 오퍼를 넣었는데 , 팔고자 하는 사장님이 받아들였다.

여기는 완전매매 될 때까지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다.

2주 정도 "트레이닝" 기간을 주어서 , 파는 사람에게 영업 노하우를 전수받는다.

그런데 그사이에 제공된 정보랑 확연히 다른 매출이 나온다거나 할 때는 계약 파기가 가능하다.

변호사를 통해 계약금이 넘어갈 시점에 그간 정들었던 "호텔"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시원섭섭했다. 남고 싶은 마음도 많았다.

누구나 다 그러리라 생각이 든다. 원래 일이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같이 모여서 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그런데, 요리라는 분야가 어느 정도 할 줄 알았을 때 직접 본인가게를 해보지 않는다면 나중에 큰 후회로

남는다고 먼저 일을 시작한 선배들이 이야기해 주었다.


트레이닝이 끝나갈 무렵까지 전해 들은 정보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제 잔금만 치르면 변호사를 통하여서 가게키를 전달받는다.

몇몇 부정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주방이라는 곳이 지내다 보면 창살 없는 감옥 같은 곳이야.

평생 할 일은 못돼!"

그런데, 나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견뎌 낼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에, 최종 사인을 하고서 드디어 가게를 하기로 결정했다.

인수한 가게는 일반 일식과 야끼도리만 팔던 곳이라서 우선은 기존메뉴대로 1~2년 운영하기로 했다.

그 후에 철판요리 시설을 넣으면 되니까!

img_3413.jpg 2017년 일반메뉴만 팔 때

8년 넘는 시간 동안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오클랜드, 퍼스, 브리즈번으로 옮겨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 배운 것은 내 방식대로 사람들에게 어필할 때가 온 거야!"

초등학교 때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마냥 좋았다.

이렇게 Sik's Teppanyaki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좋은 사람이 세상에는 월등하게 많다.

그런데, 럭비공 같은 존재들도 있다. 그들 때문에 시험을 받는다.

주방에서 쓰이는 "은어"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개진상"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좋은 손님들은 "보살"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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