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2026년 2월 10일

by goodthings

오늘 이곳 호주의 날씨는 상당한 무더위가 이른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이어졌는데, 저녁쯤에 비가 내려서 인지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 에어컨이 필요 없다고 느껴질 만큼 선선해진 것 같습니다.

어제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제가 수술받게 된 과정에 대하여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제가 하는 일인 철판요리사가 손님 앞에서 요리를 해주는 것이라서, 요리 중에 손님들의 하는 행동이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고개가 끄덕여질 때도 있고, 아주 가끔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습니다.

타인을 보고 나 자신에 대하여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는 이 직업을 하면서 매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마주 하다 보니 나름대로의 "성찰"과 "배움"을 접할 시간이 자주 있습니다.


저희 가게는 거의 99프로 가까운 손님들이 외국인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어디를 막론하고 거의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요. 생활 습관이 다르고 느끼고, 피부색도 다른 그들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아주 상당 부분에서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거든요.


오늘 오셨던 분들에 대하여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이곳에서는 5, 18, 21, 30,40,50이라는 나이가 아주 특별하게 여기고 생일잔치를 합니다.

오늘도 위에 숫자 중에서 하나인 40번째 생일을 맞이하신 손님인데,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들 이렇게 세분이 오셨습니다.

남편 되어 보시는 분은 아내의 생일인 만큼,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러신 지 영상을 찍으시는데 정말로 열심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리를 하면서 아들과 아빠는 백인인데, 엄마는 피부색이 달라서 혼자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았네."라고 생각을 하면서 요리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그 학생이 엄마를 "Mum"이라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아! 엄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빠의 여자친구구나. 하고 손님들이 관계가 정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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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리를 하면서 손님들의 대화를 조금이라도 엿들으려 하는 것은 5년 전에 당연히 아빠랑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인" 이 있었고, 작년쯤에는 손주라고 생각했던 남학생이 60대 가까이 보이는 부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기에, 먼저 그들이 관계를 지뢰짐작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되도록이면 호칭을 피해서 부릅니다.

그렇게 보인다고 "할아버지, 할머니. 손주." 이렇게 불렀다가 그 손주가 아들이 되면, 서로 곤란해질 수 있거든요.


다시 오늘의 상황으로 넘어가서 , 철판요리는 손님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거든요.

밥그릇은 던져서 받고, 계란 지단의 작은 조각을 던져서 입으로 받아먹는 놀이 같은 것을 합니다.


그런데 아들처럼 보이는 학생이 엄마에게 밥그릇을 던지는 것을 보니. 처음에는 운동신경이 없나 그랬지만

" 이건 아니다. 어떻게 손으로 받게끔 던져 줘야 하는데 "... 밥그릇은 계속 얼굴 쪽으로 향하였습니다.

결국에는 볶음밥이 담겨있는 그릇이 "엄마처럼 보이는 아빠 여자친구" 무릎 위에 다 쏟아졌습니다. 다행히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님들이 가릴 수 있게 앞치마를 먼저 제공해 드립니다.


당연히 화가 날 상황인데도 "아빠의 여자친구"는 계속 그 학생과의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제가 진짜 보기 답답해서 "아줌마, 싫다잖아. 그냥 내버려 두세요. 나중에 알겠지."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속으로 삼켰습니다.

사춘기인 17살 정도 되는 나이의 남자아이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 얼마나 저 사람이 미울까.라는 생각이 들고 우리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나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그냥 인정하기

싫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빠 입장에서 보면 , 아이의 엄마와는 어찌 되었건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자식과 본인의 여자친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을 어떻게든지 허물어서 친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겠지만요.


선택의 자유라는 것이 좋은 의미로도 해석이 되지만, 그 자체가 너무 이기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도 도달할 수 있음을 항상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서 맞다 틀리다가 라는 이원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해 주면, 누구의 결정이 미치는 영향력이 때로는 누구에게는 좋게 받아들여지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꽤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더 폭넓게 모든 문제 들을 유심히 생각해 보고 , 행동에 옮겼는데도 생각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항상 우리의 인생에서 그런 점은 공존하니까요.


가까이 있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오히려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일에서 잘했다. 못했다 가 아니라 각각의 이유가 있겠지.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찾는 것. 이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절대 포기 하지 말고요.

그러다 보면 모든 일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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