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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Wave Jun 10. 2021

보수적 기업문화?? 까라면 까 BOSS적 기업문화

그때 그 시절 80년대생의 회사생활 적응기

캠퍼스 화석에서 다시 신생아로

지금의 과장, 대리들이 나풋풋했던 2010년대, 

한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 10명 중 3명(32.3%)은 업무보다 조직문화 적응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조직문화에 공감하기 어려워서(38%)’가 1위를 차지하였고, 2위는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서(32.8%)’, 3위는 ‘기존 직원들 간 텃세가 심해서(31.2%)’인 것으로 집계됐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맞이한 사회생활은 우리를 다시 태초의 아기 상태로 돌려놨다. 취준생 시절에는 학교에서 걸어 다니는 화석 취급이나 당하며 어른 행세를 하고 다녔는데, 직장에 들어오니 다시 막둥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입사 평균 연령이 높아지며 최근에는 30대 입사자도 많아지는 추세다)


지금 들어오는 후배들을 봐도 그렇지만 신입사원 때는 회사에서 돌아가는 모든 것이 어색하다. 어색하니 긴장하고 몸이 굳게 된다. 그리고 쉬운 일도 버벅거리다가 땀을 뻘뻘 흘리는 스스로를 보고 있노라면, 필요 이상 멍청이가 된 기분이다. 사람 얼굴과 이름은 또 왜 이리 안 외워지는지 모르겠고 기본적인 전화받기, 복사하기 조차 쉽지 않다. 어리바리하다 보면 하루가 그냥 순식간에 지나가고, 막상 한 일은 없는데 퇴근 무렵이면 퇴근할 힘도 없이 진이 빠져있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신입사원 때 멍청함을 뽐낼 때가 많았는데 짧게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입사한 지 1년 정도가 지나자 이상하게도 나는 모든 업무나 회사 생활에 자신감이 넘쳤다. 왠지 이 정도면 이미 회사를 다 알게 됐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고, 마인드는 이미 ‘중견사원’ 그 이상이었다(지금도 그런 후배들이 종종 보이긴 한다). 하지만 방심하는 순간 위기는 찾아오는 법. 역시나 결국 일이 터졌다.

당시 우리 부서는 회사 전략 수립을 위한 컨설팅을 한창 준비 중이었고, 외부 업체와 한 달여 간 네고를 진행했다. 과업범위나 전체비용을 두고 디테일한 조율작업을 거친 것이다. 당시 우리팀의 담당자는 과장님 한 분이었고, 나는 서브로 자잘한 업무를 뒷받침했다.

이후 네고 과정 끝에, 결국은 예상보다 우리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세부 사항들이 결정됐고, 책임 임원 명의로 계약서도 체결하였다. 그리고 나는 협상 단계의 업무를 마무리하며, 내부 보고에 사용되었던 문서들을 정리했다. 그런데 정리하다 보니 계약서 사본이 2개나 복사되어 있길래 사본 하나는 자연스럽게 문서 파쇄기에 넣었다. 순간 느낌이 싸했다. 그리고 문서가 파쇄기를 통해 3분의 2쯤 갈렸을 때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뿔싸. 파쇄기에 넣은 계약서는 사본이 아니라 원본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갈려 들어가는 종이를 필사적으로 잡았으나, 이미 다 갈리고 계약서의 제목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할까 고민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실무를 담당했던 과장님께 상황을 얘기했고, 과장님이 신입사원의 귀여운 실수쯤으로 여기며 이해해 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 당시 골방에 갇혀 정말 한 시간 정도 영혼이 나갈 정도로 탈탈 털렸던 기억이 난다(지금은 차장이 된 그 선배님을 보면 지금도 괜히 두근거리고 피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신입사원 시절 의도치 않게 저질렀던 만행(?)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새로운 조직의 구성원이 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소한 해프닝일 뿐이다. 이름 외우기나 복사하기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한두 달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처음에는 실수했던 업무들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차츰차츰 손에 익는다.

사실 조사 결과에서도 1위로 나왔지만,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 들어와 겪었던 진짜 어려움은 회사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일이었다.


좋게 말해 보수적인 기업문화

 80년대생들은 사회 초년생시절 보수적인 한국 기업문화를 정통으로 체감했다. 당시만 해도 직장 내 꼰대문화는 한국기업 특유의 가족적, 보수적 문화라는 미명 하에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석유화학, 철강 등의 장치산업이나 시장 내 독과점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대기업의 문화는 지금보다 상당히 수직적이었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나 수평적 기업문화와 같은 선진 개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기 전이었기에, 회사에는 전형적인 상명하복, 피라미드 위계구조가 견고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문화라고 표현되지만, 상사가 '까라면 까는 형태의 BOSS적인 문화' 일반적이었고  자연스럽게 용인됐다.


* 최근 많은 회사가 수평적, 혁신적인 조직문화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곳곳

에 구시대 문화가 남아 있다(사실 이 부분이 요즘 ‘행동하는 MZ세대’와 회사 간 충돌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보수적인 기업문화가 당연시되었던 배경을 생각해 보면 당시 우리나라가 직면했던 몇 가지 경제 상황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 같다.

입사 전이긴 하지만 당시 한국사회에 들이닥친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는 직업 안정성의 개념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전에 없던 대규모 구조조정, 몸집 줄이기에 나선 기업들로 인해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져만 갔다. 그리고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이후 사에 남아있던 직장인들은 불안감을 느끼는 한편, 아이러니하게 더욱 회사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언제 정리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정보다 회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었고, 경영층과 상사만을 바라보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에 성공한 기성세대는 후배가 들어왔을 때, 어떤 면에서는 좀 더 자신감 있게 일종의 영웅담을 늘어놓을 수 있었고(“라떼는 말이야!”) 주인의식이라는 말도 유행처럼 번져갔다(요즘은 주인의식, 로열티라는 단어를 쓰면 그 즉시 꼰대로 자동 분류된다).


무한상사는 TV로만 보고 싶다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칼퇴가 일상화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본인 일이 끝난다고 해도(사원이 뭔 일이 그래 많았겠냐만) 퇴근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종영된 MBC [무한도전] 속 꽁트 코너인 ‘무한상사’가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다들 일이 없더라도 팀장이 일어나야 그 뒤 차장이 일어나고 과장, 대리, 사원 순으로 퇴근하는 게 당연한 ‘예의’였다(물론 팀장도 직속 임원이 퇴근해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제로 `12년에 실시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중 81.4%가 매주 야근을 경험한다고 답했고, 야근을 하는 이유 2위가 ‘퇴근하기 눈치 보이기 때문(28.7%)’이었다(1위는 많은 업무량).

MBC 무한도전 캡쳐

그리고 당시만 해도 야근 수당을 챙겨주는 회사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야근할 때면 대부분 요즘 말하는 열정페이를 자연스럽게 강요당하는 분위기였다.

평일에 퇴근 후 약속을 미리 잡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 야근 때문에 언제 퇴근할지 모르는 이유도 있었지만, 상당 부분은 시도 때도 없이 실시되는 ‘번개 회식’ 때문이었다. 임원이나 선배 직장인들이 6시가 넘어 “안 바쁘면 한 잔 할까? 시간 되는 사람만 가지 뭐”라는 말을 하면 후배들은 거의 무조건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저녁까지 챙겨주시고 감사합니다!”). 불참할 경우에는 다음날 업무적인 보복이 뒤따랐고, 덤으로 아침부터 ‘요즘 것들’ 이라는 주제에 대한 선배들의 훈화 말씀을 들어야 했다.


분위기 또한 매우 경직적이었는데, 상명하복 문화가 만연했고 조직장들은 출근 하면 담당임원의 기분을 맞추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팀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검토한 건에 대해서도 임원이 기분이 내키지 않아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제대로 대응 한 번 못하고 처음부터 검토해야 되는 건들이 비일비재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한 부서, 한 부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였다는 사실이다.

조직장 회의, 간부 회의에서도 대부분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고, 선배 조직장, 선배 임원이 결정하면 후배는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게 당연시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후속 업무는 또다시 실무자에게 넘어오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꽁트로 만들 소재들이 회사에서는 버젓이 일어나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 10년 전 얘기를 했지만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일부는 이 글의 내용이 현재진행형으로 와닿는 분도 있을 것 같다.

업무 특성상 주변 동료나 다른 회사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아직도 조직문화로 고통받고 있다 (특정 인물이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고 망치기도 한다).

 요즘 각 회사마다 다양한 형태의 조직문화 개선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실질적 효과 보다는 사실상 캠페인이나 구호 행위 정도로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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