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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Wave Jul 01. 2021

절이 싫어 떠나는게 아니라 내 옆의 중이 싫어 떠나요

지긋지긋한 직장 내 괴롭힘

오늘도 계속되는 직장 내 괴롭힘

어릴 땐 ‘괴롭힘’  사이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우리는 ‘누가 누구를 괴롭힌다더라’ 또는 ‘친구를 괴롭히면 안돼!’ 정도의 얘기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학창 시절을 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철없고 까불던 시절에는 성숙하지 않은 몇몇 되바라진 아이들이 친구를 괴롭히고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아이들이라고 해도 괴롭히는 정도가 심각해 범죄에까지 이를 정도가 되면 별도의 관리가 들어가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주변 어른들의 지도나 주의 정도로 마무리된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괴롭힘은 있으면 안되겠지만, 아직은 어린 아이들끼리 있다 보면 잘못된 행동을 하는 부류(?)가 분명 있고, 그런 아이들은 교육 과정을 통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당시 생각을 잘 못 했던 것 같다. 이상하게 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 지나 어른이 된 이후에도 괴롭힘이라는 말은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기 때문이

(당시 우리를 가르치던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괴롭힘은 있지 않았을까).



지난 달(`21.6) 어느 취업포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 중 50%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를 포함한 우리들 중 누군가, 절반 정도의 직장인은 사회에서 괴롭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며 과거에 비해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직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어찌 보면 평소 가족보다 회사 사람과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런데 회사만 나오면 내 주변의 그놈(?)이 나를 괴롭힌다.

매일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피할 수도 없고, 괴롭힘의 타이밍이나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 예측도 안되고 미칠 노릇이다.


업무상 직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설문조사를 해보면 괴롭힘의 당사자는 나의 직속상사(임원 포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괴롭힘이라는 용어로 통용되곤 하지만 사실상 어른들 사이의 괴롭힘은 직장 내 갑질로도 부를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러한 갑질 형태의 괴롭힘은 왜 지금도 끊이지 않고 발생할까?

상황마다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공통되게 느끼는 부분이 하나 있다. 이상하게도 ‘그래도 된다’는 생각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이 위치에서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아니 내가 업무상 그런 것도 못 시켜?” 등등

그들은 직원들과의 관계를 수직적인 상하관계로 인식하고 있으며, ‘내가 너보다 우월적인 지위에 있다’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일부는 여기에 더해 일종의 보상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 본인도 당했으니 ‘후배들에게 똑같이 해도 상관없겠지’ 라는 생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갑질을 했을 때 당하는 상대방의 표정이나 반응이 안 좋으면 바로 따라오는 말이 “나 때는 말이야”와 같은 꼰대류의 말이다.

(백 번 양보해 업무적으로 그럴 수 있다 쳐도 “그럼 그 과정에 욕은 왜 하셨어요?” 라고 물어보면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울화통이 터진다

직장 내 갑질은 일시적이지 않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으며, 계속되는 갑질 속에서 직장인들은 조금씩 병들고 있다(실제로 한 조사에서 갑질을 경험한 직장인중 82.2%는 갑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이들 중 91.5%는 스트레스가 질병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갑질을 당한 직장인들은 어떻게 화를 풀고 있을까?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이 자식아 지금 뭐라 그랬어!”라고 소리치며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다.

조사에 따르면 괴롭힘을 당한 직장인들 대부분은 그냥 참았다고 답했고(54.6%), 참았던 이유는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 같고(71.7%), 한편으론 나중에 돌아올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이었다(54.4%).


실제로 상사의 갑질로 힘들어하는 직원들과 이야기해보면 비슷한 얘기들을 한다.


 “파트장님한테 하도 많이 당하다 보니 이제는 갑질이라는 생각도 잘 안 들어요. 언어적인 폭력도 이제는 적응을 했는데, 지금 가장 힘든 건 업무적으로 괴롭히는 부분이에요. 말로는 너의 성장을 위해서 이렇게 트레이닝 시키는 거라고 말하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보고서를 가져가면 별 꼬투리를 다 잡으며 재검토를 지시하는데,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저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할 수밖에 없어요. 기분에 따라 판단기준이 달라지니 이건 답도 없고 정말 답답합니다. 그래도 직접 얘기는 못해요. 얘기하면 결국 다시 업무로 대답이 날아오거든요.” (후배A(여))


안타깝게도 지금의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피해자가 상사의 갑질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부당함을 표현하자니 회사를 믿을 수 없고 나중에 있을 상사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사에게 하극상을 일으켰던 직장인 중 70%가 불이익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있다)

울화통은 터지지만, 생계 수단이 되는 직장이라는 현실 앞에서 직장인들은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괴롭힘 금지법? 그게 뭐죠?

지금 글을 읽는 분들은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2년 전 우리나라에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바로 ‘직장 내 갑질 근절’을 골자로 한 법안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포함되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당시 직장인들로부터 꽤나 큰 관심을 끌었다.

내용 자체가 근로자 간 발생하고 있는 갑질 행위를 일종의 범죄로 간주한다는 것이었고,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라는 문구가 명시적으로 들어가게 되 기업문화 전반에 실질적인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아마 당시 법 시행 전 개정내용을 취업규칙에 반영한다고 인사부서가 부산을 떨었기 때문에 기억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법개정 당시에도 내용의 부실함이나 책임 범위의 모호함 등등으로 잡음이 많았고, 실질적인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으나, 개인적으로는 조금의 기대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갑질문화가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모르겠다.

우리 회사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체감상 그렇게 달라진 부분은 없어 보인다. 지금도 여전히 직장 내 갑질은 건재하며,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제도가 의도했던 효과를 보지 못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신뢰의 문제로 보인다.

우리 회사는 직접적인 신고 사례가 없기는 했지만, 언론에 노출된 외부 사례를 보면 신고자가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신고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경우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다. 그리고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고자가 조사 과정에서 2차, 3차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하니, 제보하려다가도 조금 망설여질 듯하다.


*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법 시행 후 현재까지(`21.5월 기준) 노동부에 접수된 사건은 1만 건이 넘는데 노동부가 개선 지도를 한 건은 약 14% 수준이고 검찰에 송치한 건은 1% 미만이라 한다.

그리고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중 약 80%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도 있다.


제보, 숨길수록 드러난다

절이 싫어 중이 떠난다.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회사원들이 비자발적 퇴사를 선택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을 봐도 사람과 관련된 퇴사가 상당히 많아 보인다.

지금의 상황은 엄밀히 말하면 절이 싫어 떠나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또 다른 중이 싫어’ 절을 떠나는 꼴이다.

하지만 퇴사라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퇴사를 결정하고 회사에 오픈하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계획도 없이 홧김에 결정하기에는 뒤따르는 후유증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떠나지도 못하고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익명 제보 시스템의 확산은 우리에게 큰 무기가 되고 있다. 상사에게 갑질을 당한 경우 이제 대면으로 부당함을 호소할 필요가 없어졌다. 앞에서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블라인드(BLIND)와 같은 익명 제보 채널에 관련 갑질을 제보하면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처음에는 익명성에 대한 불신(“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제보자를 추적할 수 있다”)으로 제보 채널을 등한시하던 직장인들도, 점차 익명성에 대한 신뢰가 생기자 제보 채널을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요즘 들어 언론에 쏟아지는 각종 내부 폭로 건들은 이러한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이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회사는 제보가 접수될 경우 문제의 본질을 쫓기보다는 제보자가 누구인지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소위 말해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았다. 과거라 할 것 없이 요즘에도 일부 기업은 제보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에 방점을 둔다. 제보자를 부적응자로 표현하며 엄한 사람이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를 망치고 직원들 사이를 이간질시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제보의 내용이 회사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일부 임원들의 주도로 해당 제보 건은 논의 과정에서 덮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변했다. 이러한 무책임한 조치는 결국 회사에 더 큰 불이익을 가져오는 구조가 되었다.

그 이유는, 우선 요즘의 제보들은 묻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크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 특징이 있다. 음해성 제보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제보는 구체적인 사실을 담고 있으며, 피해자 혹은 기타 증거가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 만약 회사 내부적으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보자는 블라인드와 같은 외부 익명 채널을 통해 문제를 공론화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도 여의치 않을 경우, 언론이나 정부 기관에 투서 형식으로 관련 사안을 폭로할 수도 있다.

사건이 확대될 경우 제보 내용의 대다수는 회사 입장에서 숨기고 싶은 내용이기 때문에, 사건이 외부에 노출되었을 때는 회사가 상당한 대내외적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다른 관점에서는 조직문화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한다.  회사가 제보의 내용을 덮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할 경우, 당연하게도 조직원과 회사 간 신뢰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제보가 들어오는 건들을 보면 내부 직원 중 복수가 이를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조사가 시작되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어떤 건에 대해 감사부서가 조사 중이며, 대상자는 누구라는 소문이 조금씩 돌게 된다. 그런데 조사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났는데 대상자에 대한 별도의 조치가 없거나(혹은 경미하거나), 회사가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는 결과가 나오면, 조직 구성원들은 더 이상 회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회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나마 있던 애사심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건들이 서서히 축적되면 회사에 대한 불신이 부정적인 기업문화를 형성시키, 자동적으로 직원들의 사기저하도 뒤따른다.  


철저한 조치가 필수

내부 핫라인을 통한 제보 내용이 사실로 확인됐을 경우 회사는 가해자에게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는 징계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필요 시 경영진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를 개최한다.

그런데 임원들의 경우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회사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징계보다는 경고 조치나 주의를 줘 개선의 기회를 부여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가 너무 직원들에게 징계만을 강조하면 안 돼. 회사라는 게 균형이 중요한데, 누가 좀 잘 못한 일이 있더라도 타이르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게 주의를 주는 쪽으로 가야지 징계는 회사 분위기만 어지럽힌다고. 그리고 요즘 제보 건들은 젊은 애들이 막 제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들로 징계를 주면, 조직장들은 일 못하지. 말로 해도 다 알아듣잖아?” (A임원)


물론 조직의 균형과 안정도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된 환경에서 이러한 태도는 직원들로부터 공감을 받기 힘들다. 피해자의 감정이나 의사와는 상관없는, 조직과 가해자 위주의 편향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떠나, 이러한 불공정한 처사는 앞서 얘기했듯 중장기적으로 회사에 더 큰 리스크를 안겨줄 수 있다.



+)

현재 우리 회사의 갑질 정도를 측정해 주는 흥미로운 방법이 있어 소개한다. 직장갑질119라는 단체가 운영하는 Site 인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간단한 Test를 통해 본인이 속한 조직의 갑질 수준을 측정할 수 있다.

측정 방식은 간단하다. 모바일이나 PC를 통해 직장갑질119를 검색하면 TEST 화면이 뜨고, 갑질과 관련된 5점 척도 설문을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설문이 끝나면 곧바로 ‘두둥’ 본인이 속한 조직의 갑질지수가 점수로 표시된다(회사의 갑질이 심각할수록 지수는 100점에 가깝다)

내 직장의 갑질지수는 몇 점 일까?

                    [직장갑질119,  TEST 결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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