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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Wave Aug 01. 2021

젊은꼰대의 고백

MZ세대도 꼰대가 되겠지


30대 직딩,  익숙해짐의 유혹

사원 시절과는 달리 연차가 쌓여 대리 이상으로 올라가면 조금씩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1~2년 사원 무렵에는 상대적으로 몸이 가볍다. 취업시장의 현장감각과 스펙(토익 점수 등)도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 회사가 나와 맞지 않으면 신속하게 Exit plan(이직, 학업 등)을 짤 수 있다.

요즘은 학교를 다니며 재수를 준비하는 반수생들처럼, 회사에 들어올 때부터 이미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례도 다수 있는 것 같다.


3~4년차 사원들 역시 이때부터는 어느 정도의 경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기에, 조금은 과감하게 퇴사를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금 이 길이 맞는 길인지 가민가하던 차에, 좋은 기회가 오거나 상사와의 갈등 등 어떤 계기(?) 심란한 마음에 화악 불을 지피면 홀연히 회사를 떠난다.

하루라도 빨리 지긋지긋한 회사를 떠나고 싶을 때는 경력을 포기하고 신입으로 재입사하는 경우도 있다.


애매해지는 건 5년차 이상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이때부터는 조금씩 '생각할 거리'가 늘어난다.

당장 기혼자일 경우, 혼자일 때와는 달리 그에 따른 책임감으로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사 얘기를 꺼냈다가는 배우자에게 바로 등짝 스매싱을 당하기도 한다 ("정년까지 다녀야지 어딜!!").

그리고 5년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회사 돌아가는 구조에 익숙해지고, 회사 내부에서 나만의 스타일이나 영역이 구축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회사는 답답하지만 나름 인정받을 때도 있고 친한 동료들과 사담을 나누면 아주 가끔이지만 회사가 즐거울 때도 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바깥 정보도 많이 듣는다.

얘기를 듣다 보면 또 사기업이나 공기업이나 다 거기가 거기인 것만 같다.

친구들이나 다른 회사 사을 만나서 회사 험담을 시작하면, 놀랍게도 어느 조직이나 상황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기 때문이다.

'회사 까내리기 배틀'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듣고 보니 우리 회사는 양반이네??”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싸패'라고 표현되는 라이는 어딜 가나 존재하고, 사람 사는 거 저기도 똑같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이직했을 경우 적응해야 하는 새로움과 텃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시장에서 평가될 나의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 등30대 직딩의 퇴사를 가로막는 현실적 장벽이 된다.


이렇다 보니 한 기업에서 5년 이상 근속한 고인물(?)들은 대단히 크리티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일정 수준의 괴로움은 감내할 기초체력이 형성되어 있다.

당히 회사생활이 익숙하고, 때로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일상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조금씩 변화에 대한 거부 응도 생긴다. 사실 그냥 만사가 귀찮을 때가 많고, 그냥 매일 루틴하게 하던 일만 하고 싶은 관성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



아 귀찮아

주변 30대 직원들과 얘기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추구, 내부지향적인 모습을 보인다(나도 포함된다).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도 사원 시절에는 빠릿빠릿하고 열정이 넘쳤다.

그런데 10년가량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어쩌면 산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아주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직접 부딪혀 가며 기성세대의 문화에 저항하기도 했고, 의욕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기획하고 추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론 성취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회사의 벽, 기존 질서에 가로막힘을 경험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지나다 보니 어느덧 언제나 신입사원일 것 같던 우리 80년생 세대는 어느덧 회사의 중견사원이 되었다. 요즘의 하루하루는 새로움 보다 익숙함으로 채워지고, 회사의 문화에도 이미 적응이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회사 문화를 형성하기도 하고, 각자의 업무에 있어서는 회사 안에서 그 누구보다 전문가로 인정받는 영역도 하나씩은 생겼다.

회사에 출근하는 게 여전히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죽을 만큼 싫은 것도 아니다. 회사생활에도 요령이 생겨 업무 중간에 여유를 만드는 능력이 생겼으며, 마음이 맞는 선후배들과 회식을 할 때는 집에 있는 것만큼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집에 들어가서는  오늘도 회식이 힘들었다 말한다).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회사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알게 되니, 회사 정책에 대한 수용성도 높아졌고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도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덮어두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어떻게 보면 회사에 맞서 상처 받기보다는 공존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회사 문화에 적응하고 연차도 쌓이다 보니 생각도 조금씩 보수적으로 변하고, 나의 일이 아니라면 먼저 의견을 내고 나서는 일도 줄었다. 내가 말해서 회사가 바뀔 리 없다는 패배주의적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고 솔직히 많은 부분이 귀찮아졌다.

회사의 일은 흘러가는 대로 두고, 나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내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벌써 꼰대가 된 건가?

이렇다 보니 내가 벌써 꼰대가 된 건 아닌지 걱정하는 또래도 늘고 있다.

밖에서는 우리를  MZ세대라 칭하며, 신선하고 파격적인 신인류로  평가하고 있는데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우선 꼰대의 개념부터 살펴봐야겠다.

(벌써 옛사람이라 그런지 정의나 개념부터 보는 것을 좋아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꼰대는 ‘늙은이’를 일컫는 은어이자, 학생들이 ‘선생님’을 이르는 은어이다.

즉, 예부터 권위 있어 보이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의미로 꼰대라는 말이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자신보다 어리거나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강요하는 기성세대를 통칭하는 범위로 꼰대의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개념만 놓고 보면 아직 완전한 꼰대는 아닌 것 같다. 가끔 요즘 들어오는 신입사원을 보면 라떼는 생각이 나기도 하고, 무심결에 인사성 같은 행동을 보며 속으로 평가를 하는 버릇이 있긴 하지만, 후배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당해봐서 아는 괴로움도 있고, 지금은 선후배 간 분위기 자체도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나오는 꼰대 기질은 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지금도 후배를 실력이 아닌 인성으로 판단할 때가 있고, 보고 배운 게 또 그런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후배들이랑 점심에 고깃집을 갔는데, 순간 저도 벌써 꼰대가 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자리에 앉을 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몸이 그냥 먼저 자연스럽게 상석 자리로 향하게 되더라구요. 지나고 보니 그날 후배들이 제 앞으로 수저를 놓는 것도 뭔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고 고기도 후배가 굽는 걸 보고만 있었네요.
생각해보면 신입사원 시절에 나도 맨날 내가 고기 굽는 게 싫었는데…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나 봐요” (84년생 A과장)








로열티? 그런 거 안 키워요

기성세대와 다른 점도 분명 있다.

너무 애늙은이 같이 보수적인 면만 강조한 것 같은데  90년생과 우리 세대 사이에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회사에 로열티가 없다는 점이다.  


“요즘 사원들이야 그렇다 해도 너희는 왜 그러냐!?”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30대 직장인들도 요즘은 대부분 회사에 로열티가 없다.

회사가 나를 정년까지 보호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으며, 사실 자소서에 쓴 것처럼 ‘회사와 같이 성장하는 인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 세대에도 직장생활은 보다 가치 있는 나의 개인생활을 가능한 윤택하게 즐기기 위한 ‘수단적 성격’이 강하다. 지금의 회사에 근속하고 있는 이유는 내 한 몸 헌신해 회사의 비전을 달성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당장 마땅한 대안이 없거나,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지금의 익숙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사표 충동을 느끼고 있는 이 시점에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이 나에게 보장된다면 지금 당장 뒤도 안 돌아보고 직장을 떠날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다.

(실제로 요즘 상당수 직원들이  링크드인, 리멤버 등등의 구직 사이트에 본인의 이력을 올려두고 있다. 일종의 이직 5분 대기조 느낌이다)


물론 이직에 큰 관심 없고, 지금의 회사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직장인이 다수이긴 하다. 그리고 회사가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월급을 받는 직장인은 그에 대한 노동을 마땅히 회사에 제공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열티는 없더라도 30대 직장인은 나름 업무에 대한 책임감은 가지고 있다.

일을 대신해 줄 사람도 없거니와, 전체적인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나의 업무가 차지하는 위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불편러, 다 나가줄래?

한편으론 우리 역시 꼰대 선배 세대가 여전히 불편하다.

요즘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선배들의 꼰대질을 보고 같이 욕하면서 분노했던 70년생 세대가 본인이 조직장이 되더니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자리가 사람을 저래 만드는 건지 사람이 원래 저 모양인 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임원 앞에만 가면 굽신굽신 거리는 모습이 꼴 보기 싫고, 후배들에게 자신은 실무자 시절 슈퍼맨이었던 것 마냥 훈계하는 것도 지겹다.


“아니 열심히 하면 본인처럼 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 더 일하기 싫어져요. 내 10년 뒤 모습이 저렇다고 생각하면 ‘진짜 퇴사해야 되나?’ 희망이 안 보이는 느낌이에요.
회의도 너무 힘들어요. 본인이 듣고 싶은 얘기가 나올 때까지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회의를 안 끝내는데, 차라리 그냥 듣고 싶은 말을 가르쳐 줬으면 좋겠어요. 멀쩡하던 사람도 조직장만 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변하는 거 같아요.”(85년생 B과장)


그런데 이상하게 90년생 후배들 역시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워라밸과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건 좋은데 90년생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고, 다 그렇진 않지만 회사를 마치 학교나 동아리처럼 격식 없이 생각한다.

조금은 예의도 차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지적하면 바로 상대방을 꼰대라고 규정한다. 내가 피해를 받지 않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 부분은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 얼마 전 90년생 후배가 업무적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주의를 준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잘 모를 수 있으니 그러려니 고쳐주면서 지나갔는데,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것을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작정하고 혼을 냈어요. 앞에서는 듣는 척을 하길래 알아 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적당히 마무리했는데 나중에 카톡이 오는 걸 보고 황당했죠. 카톡으로 미안하다는 말은 없고 본인이 요즘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정신이 없어 그러니 이해를 해주라고 하더라구요. 메시지를 보고 정말 회사 편하게 다닌다 싶었어요.”(87년생 C대리)


요즘 30대 직장인은 이처럼 두 세대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양 쪽 모두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일부 기성세대의 꼰대질과 90년생의 무개념 사이, 젊은꼰대들은 오늘도 힘들다.



30대 직딩, 변화된 환경의 핵심인력

솔직히 이제는 지금의 환경이 변하는 게 귀찮고 불편할 때 있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이 들고, 과거 열정이 넘치던 신입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동기나 또래 직장인들을 만나면 요즘 들어 자주 하는 얘기가 “우리도 이제 사회의 때가 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의 뜻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중립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한편으론 직장인으로서 이제는 혼자 밥벌이를 할 정도는 되었다는 뜻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초년생 시절의 열정과 순수함을 잃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30대 우리도 젊은꼰대가 되고 있다.

90년생 후배들이 보기에는 답답해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가끔은 기성세대에게 함께 대들지 못해 미안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상황이 사원 후배들과 같을 수는 없고,  우리는 또 회사 안에서 우리 나름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


업무적인 면에서 30대 직장인은 이제 각 조직의 핵심 실무자이다. 10여 년간 각 분야에서 경험과 실적을 쌓으며 우리 세대는 실질적인 업무의 중심이 되었다. 웬만한 일은 대부분 각 팀의 과장, 대리가 컨트롤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부서 간 회의에서는 조직장들 옆에서 의사결정을 보좌하며, 회사 차원의 각종 프로젝트나 TFT에 Facilitator로 참여하기도 한다. 기업 대부분의 인력이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각 팀의 실무자인 과장급 인력이 이탈할 경우 사원들이 퇴직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손실을 입게 된다.


또한 기업의 인력 구성과 조직융화 측면에서도 지금의 30대는 회사의 핵심적인 세대라 할 수 있다.

이전 글에서 다루었지만 기성세대와 90년생의 첨예한 갈등관계를 중재하 위해서는, 이 둘을 연결시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구조상 기성세대를 달래면서 이해시키고, 90년생과 고민을 나누며 끌고 갈 수 있는 역할은 다른 세대는 할 수 없다.  


요즘 회사를 살아가는 30대 직장인의 주요 역할은 다음 글에서 조금씩 풀어가록 하겠다.





 +)

[꼰대 김철수]의 저자 정철은 “수직적인 서열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이 사회에 어느새 적응한 우리는 방심하면 누구든 꼰대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90년생이 온다]를 집필한 임홍택은 “누구라도 완전히 꼰대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꼰대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완벽한 탈출을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꼰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개선해나갈 따름이다.” 라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꼰대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시작은 그렇지 않더라도 차츰차츰 나이가 들고 조직의 구성원이 되고 가정을 이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보다는 보수적으로 변해 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70년생이 ‘까라면 깠던’ 세대라면 우리 80년생은 ‘까라면 까는 시늉’이라도 했던 세대인 것 같다.

부정하고 싶지만 사회생활을 통해 보고 배운 것이 기성세대의 문화이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몸과 정신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30대 직장인의 역할이 막중하다. 회사 내 꼰대 문화를 우리 세대에서 근절시킬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도 이어나갈 것인지가 우리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적고 보니 쓸데없이 너무 비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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