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10)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인상적인 대사다. 누군가, 나에게 고양이가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이렇게 답하고 싶다.
"고양이는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라면 그건 많은 부분 고양이 덕분인 것 같아요."라고.
2009년 생애 첫 고양이 가족 '양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 양양과 같이 가족의 연을 맺은 고양이가 여럿, 가족이 아니라도 또다른 필연 같은 우연으로 태어남과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 당시는 몰랐지만 결국에 좋은 가족을 찾기까지 '다리'가 돼준 고양이도 여럿 있었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그리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또 언제 어디선가 기적처럼 동화처럼 만나게 될 내 생에 모든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보리'는 엄마의 첫사랑이다. 고양이 첫사랑. 내가 서울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귀향했을 때만도 "아휴 나는 고양이 눈이 무섭더라" 하며 난색을 표하시던 엄마였다. 하지만 고양이의 매력이란 한번 마주하면 빠져들고 마는 그런 것이어서 엄마도 결국 호기심이 호감으로 호감이 사랑으로 깊어지고 말았다.
보리와 엄마의 첫 만남은 집 근처 골목길에서였다. 동네 어디에 볼일을 보러 가셨다 돌아오던 엄마를 딱 주먹만 해선 하얀 솜뭉치 같았던 아기 보리가 졸졸 따라왔더랬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안쓰럽던지 엄마는 덥석 녀석을 집에 들이고 그날부로 함께 살았다. 그렇게 보리는 우리집 세 번째 고양이 가족이 됐다.
대부분 처음이 그렇듯 엄마에게 보리는 특별했다. 보리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고양이에 대한 호감이 사랑으로 승화됐다 할까. 내 기준에선 과잉보호다 싶을 만큼 엄마는 보리를 각별히 챙기셨는데 일상에서는 물론 여행을 가실 때도 녀석과 동행하셨다. 어쩌면 보리는 독도에 다녀온 세계 유일의 고양이일 수도 있다.
우리집 최고 실세인 어머니의 애정 포화와 함께 보리는 이웃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상당했는데 이유는 '너무 예뻐서'였다. 고양이도 사람이 좋아하니 외모지상주의의 수혜자도 피해자도 되는데, 햇살을 받으면 눈이 부시다 싶을 만큼 전신이 하얀 털에 딱 에메랄드 같은 푸른색 두 눈을 가진 보리는 분명 미묘였다.
하지만 내 취향은 인형에 비유하자면 바비보다 곰돌이 쪽이고, 무엇보다 보리의 안하무인 태도에 종종 녀석을 타박하곤 했다. 제 기분 좋을 때는 곁에 와 애교를 부리다가도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사람들을 할퀴는 게 일상이었는데 엄마도 예외가 아니라서 그때마다 "키워줘 봤자 소용없지!"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에 내 맘이 찔린 건 차치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에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2011년 겨울쯤이었다. 당시 나는 무슨 연유로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로부터 "보리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 그게 왜 그리 놀랄 일이었냐면 출산 얼마 전까지도 보리는 공식적으로 수컷이었기 때문이다.
오해의 출발은 엄마 혹은 보리를 최초로 검진했던 수의사 둘 중 한 사람일 텐데, 어쨌든 어머니는 병원에서 분명 보리를 수컷이라 했다며 여러 번 말씀하셨고, 내가 지금보다 훨씬 희박한 고양이 지식으로 그래도 "암컷 같다" 했을 때는 "네가 의사보다 잘 아냐!"며 버럭 짜증을 내시길래 나도 그만 수긍해버렸다.
하지만 보리는 결국 새끼 다섯을 낳았고(안타깝게도 한 마리는 태어난 직후 돌아가버렸다) 누가 오보의 주체인 건 더 이상 관심사가 안 됐다. 그저 보리의 그 작은 몸 어디에서 어떻게 있다가 나왔을까 싶게 마냥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새 생명들과 그간에 제멋대로였던 보리의 180도 다른 모성애 넘치는 모습에 감탄을 이을 뿐이었다.
그렇게 보리가 더해준 귀한 가족이 나무, 둘이, 미호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가족들에 입양되어 우리와 다름없이 잘 살고 있다. 그로부터 햇수로 10년. 아가였던 나무, 둘이, 미호가 성묘가 되고 젊은 엄마였던 보리가 할머니가 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마치 가족 앨범을 들여다보는 듯 숱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보리는 노년이 되면서 매사에 무감해졌다. 매일처럼 다니던 이웃집 순례도 아주 띄엄띄엄했고 엄마나 누가 불러도 무반응, 간식을 줘도 시큰둥, 그리고 제 몸을 쓰다듬어도 더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발톱을 세우지 않았다. 구내염이 생긴 탓에 먹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는데 질병의 특성 때문에 그 곱던 외모도 꼬질꼬질해졌다.
그리고 2018년 보리는 영영 세상을 떠났다. 보리를 떠나보내고 엄마는 우셨다. 그리고 "이제야 너 심정이 이해된다"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전까지 엄마는 가족 고양이 중 하나가 집을 나가 못 찾고 있을 때 "닮았다"는 이유로 다른 고양이를 내 앞에 데려다 놓으셨고, 고양이 때문에 내가 울면 "짐승 때문에 뭘 그러냐"고도 하셨다.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곁에는 보리가 낳아준 나무와 미호 그리고 다른 가족 고양이 둘이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세월 혹은 질병으로 동물 가족을 잃을 때마다 그 슬픔을 덜어주는 것도 남아 있는 동물 가족들이다. 생사의 고락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늘 천진하고 다정하기 그지없는 귀하디 귀한 우리 가족. 부디 지금만큼이라도 딱 지금처럼만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아주 많이 남아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