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나로서 그리고 나로써 온전히 살고자 한다면
5살 유치원 미술시간, 선생님이 알려준 방식으로 모두가 종이 공작을 만들 때 나는 도무지 그것이 내가 봤던 진짜 공작 같지 않아 화려한 날개가 돋보이도록 내 맘대로 종이를 오리고 붙이다가 선생님께 꿀밤을 맞았다.
고등학교 3학년 부슬비가 내리던 체육시간, 뜀틀 시험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조용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한 달쯤 무단결석을 했다. 껍데기뿐인 듯한 형식적인 교육이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모님, 선생님 속을 원껏 다 긁고 들어간 대학. 지방에서 서울로, 이름처럼 평판이 중간 이상은 됐던. 그러나 대학 입학 후 술과 객기만 일취월장 늘어선 결국 반년 만에 휴학을 했다. 오직 나의 결정 하에.
대학 시절 중 그렇게 한 번 더 휴학을 하고 부모님이 주신 등록금으로 당신들은 모르게 생애 첫 혼자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대학이란 울타리 안에서 더는 하고픈 게 없어져 5년 만에 대졸자가 되었다.
이후 7-8년쯤 네다섯 개 회사를 다녔는데 지원 동기와 목적은 늘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내가 좋은 일이 세상에도 얼마만큼 좋았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그만둔 이유도 같았다. 더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됐기 때문.
그리고 8년 전, 17년간의 서울살이에 마침표를 찍고 동시에 내 이력 중 가장 인지도도 월급도 높았던(그러나 가장 경멸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귀향했다.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고파서였다.
귀향 후엔 가장 살고 싶은 동네에서 내 형편에 빌릴 수 있는 집들 중에서 또 제일 마음에 드는 집을 빌려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노하우는 없어도 여행을, 여행자를, 여행자를 위한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내가 좋으면서 남에게도 보다 이로운 일을 찾아 필리핀으로 가서 어느 시민사회단체가 입주해 있는 건물 바로 앞집 셋방을 빌려 반년을 산 적도, 고양이 한 마리와 한 지역에서 한 달씩 집을 빌려 그렇게 또 반년 여행을 다닌 적도 있다. 모두 내가 원해서였다.
이렇게 살아왔다. 2020년 오늘까지. 인생의 변곡점이 된 모든 순간의 결정을 나름 '나답게' 하면서. 그래서, 나는 지금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세계에 만족하는가? 행복한가?
답을 하자면, 만족했었다.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고 현재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기근 상태에 있는 형편이다. '내가 한 모든 선택이 최악을 향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하지만 이런 시간 중에도 또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다움'이란 말 그대로 '내 생긴 대로' '내 수준대로' '내 가진 것만큼'이라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탁월하거나 영영 고정된 정답 같은 게 아니라는 것.
비유하자면 '나다움'이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비추는 연장 또한 그 길을 내는 연장과 같아서 내 의지대로 쓸 수 있기까지 반복 훈련이 필요하고, 그렇게 쓰면 쓸수록 벼려져 최상의 기량을 뽐낼 수 있게 됐다가도 또 언젠가는 무뎌지고 마는 습성을 가졌다.
고로 '나다움'을 위해서는 바로 내가 그 연장들을 끊임없이 달구고 때리고 또 새로 만드는 대장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 수고로움을 피하는 순간 '나다움'에는 타성이란 불순물이 섞여버리고 만다.
'내가 한 모든 선택이 최악을 향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태어나길 나는 결국 이 수준으로밖에 못 사는 그런 인간은 아닐까……'
요즘 이와 같은 커다란 회의와 의심, 두려움의 파고를 맞으면서 나는 자각한다. 그간에 그래도 나답게 산 경험치 덕분에. 이럴 때 내가 할 일은 모든 걸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더욱 필사적으로 '나다움'의 형체를 찾아서 그것이 내가 바라는 보다 나은 나, 내 삶의 연장이 될 수 있도록 열심으로 길을 들여야 할 때임을.
바로 이러한 내가 나답기 위한 모든 과정이 결국에 가장 나다운 것이며, 그것이 분명한 어떤 성공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장해주진 않지만 다만 내 삶을 나로서, 나답게 사는 그 하나가 내가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내가 나에게, 이 생에서 바라는 바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