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7)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의 아름다운 대사다. 누군가, 고양이가 내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더 다정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용기있는 그런.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건 많은 부분 고양이 덕분"이라고.
2009년 생애 첫 고양이 가족 '양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 한가족이 된 고양이가 여럿, 반면 당시는 앞날을 몰라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지만 결국 진짜 가족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 그리고 한참을 지나 생각해도 여전히 아찔한 생사의 순간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이다.
그렇게 나의 과거와 현재에, 또 미래 언제 어디서 기적처럼 동화처럼 만나 함께 할 내 생에 모든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7년쯤 된 것 같다. 삼식이와 점백이가 우리집을 드나든 게. 그보다 한 해 앞서 내가 귀향을 하고 이전부터 알던 동물보호단체의 TNR(길고양이의 무분별한 개세수 증가를 막기 위해 안전하게 포획해 중성화수술 후 원래 살던 곳에 놓아주는 활동)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둘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비교적 사람을 잘 따르며 거의 매일 같은 자리에 밥을 먹으러 오는 동네 길고양이 예닐곱 마리를 밥과 간식 등으로 유인해 포획한 뒤 단체와 연계한 병원에서 수술을 시키고 일정 회복기를 거쳐 다시 저희들 있던 곳에 데려다 놓았는데 그중에 삼식이와 점백이가 있었다.
어머니 말씀대로면 둘은 밥 주는 사람도, 자는 곳도 따로 있어 걱정할 게 없다 하셨는데 실제로 TNR 전까지 그들을 본 건 몇 번 되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턴가 우리집에 오는 횟수가 늘어난다 싶더니 점점 과감해져선 어떤 날은 거실이나 안방까지 들어와 있거나 우리 가족 고양이들 밥을 탐하다 쫓겨나기도 여러 번.
신기한 건 삼식이와 점백이는 늘 같이 다닌다는 점인데 어미가 같을 수도, 각기 길에서 살다 만나선 서로 의지하게 된 걸 수도 있겠다. 작은 그릇 하나에 밥을 줘도 절대 다투는 일 없이 같이 먹고 놀 때도 잘 때도 꼭 붙어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둘을 본 게 어느새, 정말 어느새 7년이 됐다.
그새 우리 가족이었던 고양이 셋은 세상을 떠났고 하나는 집을 나가 행방을 모른다. 그렇게 한때 여덟 마리였던 고양이 가족이 현재는 넷. 집 안팎을 가득 채웠던 같이 살던 고양이들의 빈자리가 커지니 그 속에서 늘 찬밥, 남은밥 신세였던 삼식이와 점백이가 새삼 애틋해졌다.
뒤늦게 이름도 지어줬다. 삼식이는 털이 노랑, 하양, 검정이 섞인 삼색에 늘 밥을 달라고 울어대서 삼식이, 점백이는 하얀 바탕에 까만 점무늬 털이 나서 점백이. 어머니도 비슷한 마음이셨는지 전에 내가 녀석들 밥을 챙기면 "동네 길고양이 다 먹여 살릴 거냐!" 야단을 치셨지만 요즘은 둘의 밥은 물론 잠자리까지 봐주신다.
사람 수명의 1/8쯤 되는 고양이는 늙기도 그만큼 빨리 늙는다. 마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마녀의 저주에 걸려 하루 아침에 소녀에서 할머니가 된 '소피'를 보는 것 같은. 삼식이와 점백이도 그랬는데 며칠 만에 나타난 녀석들 꼴이 어째 말이 아니었다. 살도 엄청 빠지고 털도 꼬질꼬질.
덩치 크고 사나운 길고양이한테 된통 당했던지, 밥을 제대로 못 먹었던지 아무튼 또 얼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그들은 늙은 것이었다. 함께 사는 고양이들처럼 매일 세심히 볼 수 없어 몰랐을 뿐, 삼식이와 점백이도 7년 세월 우리와 함께 나이가 든 것이었다.
가족 고양이 중 이미 세상을 떠난 하나를 포함 셋에게 구내염이 왔는데 둘도 그런 듯했다. 털이 꼬질꼬질한 건 염증이 생긴 입 안의 침이 풀처럼 껄쭉해지면서 그루밍을 하면 털이 되레 엉겨붙고, 염증으로 목구멍이 붓고 통증이 심해지니 먹을 게 있어도 제대로 못 먹어 야위는 것.
녀석들 볼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나 생각하니 안타깝고 미안해졌다. 얼마 전부터 삼식이와 점백이의 밥에도 간간이 생선캔이나 마른 멸치 등을 더해주게 된 이유. 어머니는 이전에 우리 가족 고양이들이 썼던 집을 청소해 이불도 깔아주셨는데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 없는 녀석들은 버릴려고 내둔 종이상자에 더 집착했다.
최근에는 가족 고양이의 피부 이상 때문에 동물병원에 들렀다가 처음으로 삼식이와 점백이를 위한 구내염약도 샀다. 사실 예전부터 잘 챙겨주고 싶었지만 대가족 고양이 양육비만도(네 마리인 현재까지도) 만만치 않은지라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유로운 만큼 가난한 삶을 살고 있기에 더욱.
큰 마음 먹고 약을 샀으니 제때 나타나 잘 먹어줬음 했는데 웬일. 근래에는 둘이 따로따로 다닐 때도 많았는데 그날은 삼식이도 거실에, 점백이는 무려 안방에 들어와 있었다. 나를 보자 삼식이는 헐레벌떡 도망을 치긴 했는데 그래봤자 대문 앞 차 아래, 점백이는 요지부동. 얼른 밥에 약을 섞어주니 둘 다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춥고 배고프고 불안한 삶이 좋아서 사는 이가 누가 있겠나. 현실은 바뀌지 않고 죽을 수도 없으니 다만 온 힘을 다해 견뎌내는 것일뿐. 고양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따뜻한 자리, 맛있는 음식, 다정한 품을 내어주었을 때 눈빛과 몸짓의 변화를 보면 분명하다.
앞으로도 삼식이와 점백이는 공식적으로는 실내 출입 금지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한가족'이다. 겨울이 오거나 몸이 아파보이거나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 하게 된다면 꼭 잘 거두어주리라. 부디 안심하고 오래 건강하게만 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