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8)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의 아름다운 대사다. 누군가, 고양이가 내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더 다정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용기있는 그런.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건 많은 부분 고양이 덕분"이라고.
2009년 생애 첫 고양이 가족 '양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 한가족이 된 고양이가 여럿, 반면 당시는 앞날을 몰라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지만 결국 진짜 가족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 그리고 한참을 지나 생각해도 여전히 아찔한 생사의 순간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이다.
그렇게 나의 과거와 현재에, 또 미래 언제 어디서 기적처럼 동화처럼 만나 함께 할 내 생에 모든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미호는 나의 여덟 마리 고양이 동생 중 하나다. 앞서 소개한 반백살이 됐지만 여전히 천진난만 5살 사내아이 같은 나무(brunch.co.kr/@goodtraveler78/16)와 형제다. 나무가 동글동글 털털한 성격에 가족들과도 바깥 길고양이 친구들과도 격의없이 어울린다면 미호는 비교적 내성적이고 가족들에게 애착을 많이 보인다.
태어나 2년 정도까지는 형제들간 다른 점이라곤 하얀 털 위에 노랑 얼룩 갯수와 모양 정도였는데 나이가 드니 성격이나 체격, 체질 등에서 차이점이 도드라졌다. 미호는 바깥 활동보다는 낮이고 밤이고 잠 자는 걸 더 선호하고 실내에 함께 있으면 저 혼자 놀기보다는 곁에 와서 몸을 부비고 어리광을 피우며 애정을 갈구했다.
그런데 미호의 가장 다른 점은 안타깝게도 구내염이란 질병이었다. 3살(고양이 나이 20대 중반) 때인 2014년에 증세가 시작돼 2020년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구내염은 고양이들에게 굉장히 다양한 이유로 빈번하게 발생하며, 특히 돌봐주는 이 없는 길고양이들을 긴 시간에 걸쳐 무척 고통스레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병*이다.
*구내염은 한 마디로 이빨에 쌓이는 치석이니 치태에 대한 과한 면역 반응, 즉 일종의 알러지*라고 하는데 치료 방법은 발치를 하거나 지속적으로 약을 통해 염증을 다스려주는 것뿐이다. 하지만 발치를 한다고 완쾌를 장담할 수도 없고, 약의 경우 오래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고 피부가 얇아지고 털이 빠지는 등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미호의 경우 상태의 기복이 컸는데 초반에 약을 먹을 때는 호전되는 듯하다가 언제쯤부터는 약도 소용이 없고 걱정했던 털이 왕창 빠지는 등의 부작용까지 와서 한동안 약을 끊고 건사료를 미지근한 물에 불려주며 자주 입 안팎을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주는 부수적인 관리에 신경을 쓰니 또 좋아졌다. 그러다 또 악화돼서 염증과 통증을 가중시키는 흔들리는 이빨 몇 개를 뽑았고 간헐적으로 약을 다시 먹였는데 상태는 여전히 오락가락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따금씩 한밤중에도 너무 고통스러운듯 괴성을 지르거나 토를 하기도 하는 미호가 그럴 때조차 식성만은 변함 없다는 것. 덩치가 제일로 큰 나무보다도 두세 배 늘 많은 밥을 먹고 제 밥을 다 먹고도 꼭 다른 녀석들 그릇까지 한번씩 다 입을 대야 성에 차는 것 같다. 그렇게 먹는데도 등과 다리가 앙상할 만큼 비쩍 말랐으니 저 혼자서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짐작이 돼서 가엾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미호는 유독 사건사고도 많았는데 지금까지도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는 부상 중에 한쪽 허벅지 살이 내 손바닥 절반 크기로 잘려나간 채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철조망 같은 데 걸려서 그랬나 했지만 병원에 가니 칼로 자른 듯 말끔히 절단이 됐다고, 의사도 전혀 어쩌다 그리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큰 수술을 한번 받았고.
또 집돌이인 녀석이 2-3일씩 귀가를 하지 않아 노심초사한 적이 있는데 집 주변을 샅샅이 뒤지다 뒤지다 옥상에 올라가 녀석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는데, 그닥 멀지 않은 듯한 곳에서 "에엥" 하는 희미한 울음소리가 나서 마치 소머즈처럼(1980년대 한국에 방영된 미국 TV드라마 속 초능력을 가진 여자 바이오닉 인간) 귀를 열고 위치를 추적한 끝에 실은 대각선으로 바로 건너편집 마당의 창고에 갇혀있는 걸 발견했다.
잠을 자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나 싶게 이불 깊숙이 파묻혀 자길 좋아하고 같은 공간에 있음 옆에 와 부비길 좋아했던 미호가 구내염이 심해지고부터 저 혼자 책상 아래나 마당에 따로 마련해둔 저희들 집에 들어가 있을 때가 많아졌다. 나무와도 껌딱지처럼 굴었는데 둘 사이도 마음은 몰라도 몸은 따로따로. 무심결에 미호가 다가오면 "아이코 우리 미호 (침)냄새" 하며 인상을 찌푸리거나 한껏 안아주지 못해 서운해진 게 아닐까 미안하다.
하지만 진짜 진심은 아프더라도 지금보다는 절대 더 아프지 말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밥 잘 먹으며 우리 곁여 오래오래 함께 살아주길 바라는 것임을 알아주길. 요즘 고양이 가족들을 보며 주문처럼 되뇌는 말이 생겼다. "고양이 백세... 고양이 백세..." 고양이로서 사람 백세와 같은 장수를 누리라는 바람에서다.
*구내염 관련 지식, 김한석 고양이전문수의사 유튜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