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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주 Jul 20. 2020

'밥심'으로 사는 미호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8) 


“넌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해(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의 아름다운 대사다. 누군가, 고양이가 내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더 다정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용기있는 그런.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건 많은 부분 고양이 덕분"이라고.   

 

2009년 생애 첫 고양이 가족 '양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 한가족이 된 고양이가 여럿, 반면 당시는 앞날을 몰라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지만 결국 진짜 가족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 그리고 한참을 지나 생각해도 여전히 아찔한 생사의 순간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이다.    


그렇게 나의 과거와 현재에, 또 미래 언제 어디서 기적처럼 동화처럼 만나 함께 할 내 생에 모든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내 동생 미호


미호는 나의 여덟 마리 고양이 동생 중 하나다. 앞서 소개한 반백살이 됐지만 여전히 천진난만 5살 사내아이 같은 나무(brunch.co.kr/@goodtraveler78/16)와 형제다. 나무가 동글동글 털털한 성격에 가족들과도 바깥 길고양이 친구들과도 격의없이 어울린다면 미호는 비교적 내성적이고 가족들에게 애착을 많이 보인다. 


태어나 2년 정도까지는 형제들간 다른 점이라곤 하얀 털 위에 노랑 얼룩 갯수와 모양 정도였는데 나이가 드니 성격이나 체격, 체질 등에서 차이점이 도드라졌다. 미호는 바깥 활동보다는 낮이고 밤이고 잠 자는 걸 더 선호하고 실내에 함께 있으면 저 혼자 놀기보다는 곁에 와서 몸을 부비고 어리광을 피우며 애정을 갈구했다.  


그런데 미호의 가장 다른 점은 안타깝게도 구내염이란 질병이었다. 3살(고양이 나이 20대 중반) 때인 2014년에 증세가 시작돼 2020년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구내염은 고양이들에게 굉장히 다양한 이유로 빈번하게 발생하며, 특히 돌봐주는 이 없는 길고양이들을 긴 시간에 걸쳐 무척 고통스레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병*이다. 


*구내염은 한 마디로 이빨에 쌓이는 치석이니 치태에 대한 과한 면역 반응, 즉 일종의 알러지*라고 하는데 치료 방법은 발치를 하거나 지속적으로 약을 통해 염증을 다스려주는 것뿐이다. 하지만 발치를 한다고 완쾌를 장담할 수도 없고, 약의 경우 오래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고 피부가 얇아지고 털이 빠지는 등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미호의 경우 상태의 기복이 컸는데 초반에 약을 먹을 때는 호전되는 듯하다가 언제쯤부터는 약도 소용이 없고 걱정했던 털이 왕창 빠지는 등의 부작용까지 와서 한동안 약을 끊고 건사료를 미지근한 물에 불려주며 자주 입 안팎을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주는 부수적인 관리에 신경을 쓰니 또 좋아졌다. 그러다 또 악화돼서 염증과 통증을 가중시키는 흔들리는 이빨 몇 개를 뽑았고 간헐적으로 약을 다시 먹였는데 상태는 여전히 오락가락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따금씩 한밤중에도 너무 고통스러운듯 괴성을 지르거나 토를 하기도 하는 미호가 그럴 때조차 식성만은 변함 없다는 것. 덩치가 제일로 큰 나무보다도 두세 배 늘 많은 밥을 먹고 제 밥을 다 먹고도 꼭 다른 녀석들 그릇까지 한번씩 다 입을 대야 성에 차는 것 같다. 그렇게 먹는데도 등과 다리가 앙상할 만큼 비쩍 말랐으니 저 혼자서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짐작이 돼서 가엾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미호는 유독 사건사고도 많았는데 지금까지도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는 부상 중에 한쪽 허벅지 살이 내 손바닥 절반 크기로 잘려나간 채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철조망 같은 데 걸려서 그랬나 했지만 병원에 가니 칼로 자른 듯 말끔히 절단이 됐다고, 의사도 전혀 어쩌다 그리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큰 수술을 한번 받았고. 


'의문'의 사고로 다리 수술을 받은 미호


또 집돌이인 녀석이 2-3일씩 귀가를 하지 않아 노심초사한 적이 있는데 집 주변을 샅샅이 뒤지다 뒤지다 옥상에 올라가 녀석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는데, 그닥 멀지 않은 듯한 곳에서 "에엥" 하는 희미한 울음소리가 나서 마치 소머즈처럼(1980년대 한국에 방영된 미국 TV드라마 속 초능력을 가진 여자 바이오닉 인간) 귀를 열고 위치를 추적한 끝에 실은 대각선으로 바로 건너편집 마당의 창고에 갇혀있는 걸 발견했다.  


잠을 자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나 싶게 이불 깊숙이 파묻혀 자길 좋아하고 같은 공간에 있음 옆에 와 부비길 좋아했던 미호가 구내염이 심해지고부터 저 혼자 책상 아래나 마당에 따로 마련해둔 저희들 집에 들어가 있을 때가 많아졌다. 나무와도 껌딱지처럼 굴었는데 둘 사이도 마음은 몰라도 몸은 따로따로. 무심결에 미호가 다가오면 "아이코 우리 미호 (침)냄새" 하며 인상을 찌푸리거나 한껏 안아주지 못해 서운해진 게 아닐까 미안하다.


하지만 진짜 진심은 아프더라도 지금보다는 절대 더 아프지 말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밥 잘 먹으며 우리 곁여 오래오래 함께 살아주길 바라는 것임을 알아주길. 요즘 고양이 가족들을 보며 주문처럼 되뇌는 말이 생겼다. "고양이 백세... 고양이 백세..." 고양이로서 사람 백세와 같은 장수를 누리라는 바람에서다. 


형제 나무와 미호 껌딱지 시절. 미호가 구내염이 심해지면서 가족들 전부와 '거리'가 생겼다.


*구내염 관련 지식, 김한석 고양이전문수의사 유튜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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