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털 같던 아가가 묵직한 후회로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5)

by 이명주

살면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가능한 마지막 기회임을 바로 그 순간에 알 수 있다면.


이틀 전 사람과 차가 오가는 집 앞 길목에서 아기 길고양이를 처음 봤을 때,


도무지 어미품에서 젖을 먹고 있어야 마땅할 그 작디작은 녀석이 저 혼자 비틀비틀 위험한 도로를 걷고 있을 때,


입고 있던 남방을 벗어 녀석을 안아 올리며 '무게가 없음'에 가까우리만치 가볍다고 생각한 그때,


눈물과 눈곱으로 범벅된 녀석의 얼굴을 보며 "이게 또 무슨 운명의……" 하는 혼잣말을 하던 그때,


인근 가게들의 공용 화장실이 있는 뒤쪽 뜰로 통하는 복도에 누군가 길고양이들을 위해 놓아둔 넉넉한 밥과 물을 보았을 때,


본능인지 운명인지 아기 고양이가 나로부터 벗어나려 하찮은 발버둥을 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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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엄마가 오겠지', '고양이 돌봐주는 이웃들이 있으니 괜찮겠지' 내 멋대로 낙관하곤 아기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줄 때,


편의점에서 서둘러 사온 2-12개월령 습식 사료를 아기 고양이가 기어 들어간 창고 안쪽에 놓아줄 때,


그렇게 내 할 도리는 다 했고, 아기 고양이는 안녕할 거라고 믿어버렸지만 그다음 날이라도 녀석과 헤어진 창고 안팎을 한 번만 더 살폈더라면……


아기 고양이는 오늘 아침 그 창고문 바로 앞에, 기껏 챙겨준 밥을 고스란히 남긴 채(어미젖을 먹어야 할 아기에게 그것은 음식이 아니었는지도) 그토록 가엾은 모습으로 저 혼자 죽어 있지 않았을까.


옷으로 감싼 아기 고양이를 그 길로 내 집에 데려와 살뜰히 보살펴줬더라면, 행여 이틀 후의 가슴 아픈 작별은 같았다 할지라도 아기는 보다 환하고 따뜻한 기억을 품고 갈 수 있었을 텐데……


그 솜털처럼 작고 가볍던 생명 하나가 이처럼 무거운 후회로 남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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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해(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의 아름다운 대사다. 누군가, 고양이가 내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더 다정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용기있는 그런.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건 많은 부분 고양이 덕분"이라고.


2009년 생애 첫 고양이 가족 '양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 한가족이 된 고양이가 여럿, 반면 당시는 앞날을 몰라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지만 결국 진짜 가족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 그리고 한참을 지나 생각해도 여전히 아찔한 생사의 순간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이다.


그렇게 나의 과거와 현재에, 또 미래 언제 어디서 기적처럼 동화처럼 만나 함께 할 내 생에 모든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p.s.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있었다면 참으로 좋았겠습니다. 이런 글이 아닌 아기 고양이의 성장 기록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한 생명의 처지에 보다 깊이 공감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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