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밥심을 채워준 엄마의 사랑
"말도 마라.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라칸다……"
그리고 엄마는 정말로 우셨다.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보며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엄마를 울린 30여 년 전 그 기억은 내게는 살아온 날 중에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시절이기 때문에.
내가 네댓 살 때였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그때 엄마는 매일같이 냉장고에 '죠**' 아이스크림, '새**' 과자, '초코**' 빵 두 개씩을 넣어두셨다. 언니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간식들을 늘 같은 순서로 먹었던 것 같다. 엄마가 시킨 대로. 아침밥 먹고 엄마가 출근한 뒤 아이스크림을, 점심 먹고 놀다 과자를, 엄마가 퇴근하기 전 행여 배고프면 먹으라 한 초코빵을 마지막에.
그리고 간식 외 엄마가 준비해놓고 간 음식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방이 하나였던 우리집에서 제일 따뜻한 바닥에 담요를 여러 겹으로 깔아 그 안 깊숙이 넣어둔 밥 한 그릇이었다.
언니와 나의 점심밥이었다. 열 전도율이 높은 뚜껑이 있는 어른용 은식기에 둘이서 배불리 먹어도 남을 만큼 많은 밥이 꾹꾹 눌러져 고봉 모양으로 담겨 있었다.
나 - 그걸 왜 거기다 놓고 갔어?
엄마 - "전기밥솥도 없었겠지. 그때 전기밥솥 있었나? 전기세 많이 나올까봐?
그것도 아닐 건데. 애들이 떠먹기 편하라고 그러지 않았을까?
나는 기억조차도 없다. 먹고사는 게 하도 힘들어갖고."
눈물까지 흘리셔놓곤 정작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보니 기억이 안 난다는 엄마.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
엄마 - "아이고 몰라 지금은. 그때는 뭐 어린 아(이)들을 놔뚜고 가니까 누가 우리 애들을 괴롭힐새라, 그리 안 하면 넘(남) 먹고 싶은 거 못 먹을 새라 이런 거 생각해서 그다 넣어놓고 가는 거지. 넘(남의) 애들 먹어샀는데 우리 애는 못 먹어봐라.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이고."
(처음 이 주제로 말을 꺼냈을 때 예상치 못한 엄마의 눈물을 봤을 때도, 기억 속 가장 특별한 한식에 관한 글쓰기를 위해 엄마를 인터뷰할 때도 그저 담담하고 재밌었는데 엄마의 말들을 글로 옮겨 적고 있는 지금 자꾸 마음이 울컥거린다.)
당시 엄마는 보험회사를 다니셨다. 아버지는 발전기 사업을 하셨고. 아버지 사업에 부침이 많아 엄마도 바깥일을 시작하셨을 거다.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사업 자금 융통이 가능한지 묻거나, 그런 대화 중에 결국 다투시던 기억이 난다. 내가 대학에 갓 입학하고 우리 살던 아파트에 차압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
엄마 - "보험을 한 달 내내 한 개도 못했어. 그런데 처음에 설명할 때 출근만 해도 기본 수당을 준다 했는데 하나도 안 주는 거야. 그래서 왜 기본 수당을 안 주냐고 그러니까 한 건을 해야 한대. 아, 처음에 출근만 해도 준다 그랬다고 하니까 주대 4만 원. 그때는 생활비가 한 8만 원만 있으면 한 달을 살 것 같았어. "
젊은 엄마가 먹고살기 위해 유치원도 못 보내는 어린 나와 나 때문에 유치원에 못 가는 언니(그랬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를 집에 남겨두고 울면서 출근을 하고 퇴근길에 부랴부랴 다음날 우리 먹일 간식을 사고 매일 아침 서둘러 밥과 반찬을 만들어 밥은 식을새라 이불 속에 꽁꽁 묻어뒀던 그 시절.
하지만 내게 그 시절은 다시 말하지만 살아온 날 중에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한 번도 배고프지 않았고 엄마가 곁에 없어 서럽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 정말로 외롭고 서글플 때 그때를 떠올리면 되레 마음이 환해지고 기운이 솟았다.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간 '죠**', '새**', '초코**' 간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즐겁게 해 주며 당시 함께 놀던 이웃집 또래들 사이에서 우쭐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또 엄마가 출근하면 쏜살 같이 나가버리는 언니가 그때는 야속했지만 그렇게 혼자 남아 창문이나 벽지 무늬를 보며 상상의 세계를 여는 것도 재밌었다.
그렇다고 정말 그 시절에 좋았던 일만 있었을까. 분명 어렸던 나는 엄마가 매일 출근하는 게 서운하고 때때로 무섭고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좋은 물건, 맛있는 음식이 아쉬운 때도. 하지만 기억이 없다. 오로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것만 같다. 왜일까?
그 이유를 철이 들면서 점점더 선명하게 깨달았다. 나도 성인이 되어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고 회사 아닌 또 다른 조직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다만 내가 나로서, 나 하나를 위해 사는 일조차 절대 만만치 않음을 몸소 경험하면서.
당신들은 맨몸으로 세상의 풍파를 맞으면서도 자식들은 그 시련으로부터 온전히 보호하며 사랑만을 주셨기 때문임을. 마치 방 안 가장 따뜻한 자리 담요 깊숙이 놓아둔 그 밥처럼, 늘 따뜻하고 푸짐했던 바로 그 밥을 정성으로 지어 먹이며 우리를 귀하게 귀하게 성장시켜주신 덕분이라는 걸.
나 - "엄마는 고달팠겠지만 나한테는 제일로 행복했던 시절인데. 그러니까 괜히 미안해하고 울고 그러지마."
엄마 - "에휴 누 더꼬(너희한테) 그런 얘기 해봤자 누는 몰라. 생사를 다투는 얘기하고 누매이로(너희들처럼) 그냥 혼자 묵고 사는 얘기하고는 틀려. 새끼를 키워봐야 새끼가 어떻게 그하는지를…… 니도 새끼가 있으면은 그리 안 놀고 있을끼다.
뭐든지 할라 하지."
나 - "나는 노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야!"
엄마 - "그러니까 니가 하고 싶은 일만 하매 못 있는다 얘기다. 닥치는 대로 하지."
맞다. 나는 모른다. 그 시절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엄마 아빠가, 평생 부모라는 굴레를 짊어지고 본디 가진 것도, 살며 그저 주어진 것도 하나 없이 어떻게 자신들과 자식 둘을 오늘까지 이렇듯 지켜낼 수 있었는지. 다만 내가 경험해 짐작하는 범위 안에서만도 나로선 엄두가 안 나는데 그 몇몇 곱절이었으니.
그토록 팍팍한 삶 속에서도 자식들만은 유복하게 키워주셨고 무엇보다 남 헐뜯고 남의 것 빼앗아 사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인성으로 길러주셨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러니 이제 더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짓지 마셨으면. 그저 틈틈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큰소리 뻥뻥치시며 오지게 생색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