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 DNA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4)

by 이명주

“넌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해(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의 아름다운 대사다. 누군가, 고양이가 내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더 다정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용기있는 그런.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건 많은 부분 고양이 덕분"이라고.


2009년 생애 첫 고양이 가족 '양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 한가족이 된 고양이가 여럿, 반면 당시는 앞날을 몰라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지만 결국 진짜 가족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 그리고 한참을 지나 생각해도 여전히 아찔한 생사의 순간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이다.


그렇게 나의 과거와 현재에, 또 미래 언제 어디서 기적처럼 동화처럼 만나 함께 할 내 생에 모든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내가 길고양이라면…… '

4.jpg


2019년, 11월이 코앞인 쌀쌀한 아침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른 시각 해변가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추워서 웃옷을 덧입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었다.


5.jpg


자전거 속도 만큼 빠르게 다가오는 풍경. 그런데 순간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무언가가 감지됐다. 그 무엇이 '고양이'라고 인지한 건 그 다음이었다. 도로 옆 풀숲에 미동 없이 누운.


'죽었나?'


제발 아니기를, 제발 로드킬이나 다른 이유로 죽임 당해 풀숲에 던져진 게 아니기를. 추위나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끝내 숨이 끊긴 게 아니기를.


2.jpg


자전거 안장에 앉은 채 멈칫멈칫 고양이가 누운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고양이의 얼굴을 본 순간……! 두려움은 싹 그치고 마음이 환해졌다. 어찌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던지.


고양이는 아침해가 데워준 따뜻한 풀숲 위에서 단잠을 자는 중이었다. 옆으로 자전거와 자동차가 달리고, 반대편 산책로에는 이따금씩 사람들이 오갔지만 고양이는 세상 가장 안온한 곳에 있는냥 잠에서 깨지 않았다.


2-1.jpg


어찌나 곤히 달게 자던지 순간 추운 도로 한가운데, 그것도 어정쩡하게 자전거 위에 두 다리를 걸치고 선 내 모습도 잊었다. 찰나지만 고양이와 단둘이 햇빛이 잘 드는 작은 방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길고양이라면……, 내가 저기 저 녀석이었다면 저렇듯 태평하게 짧은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단잠을 즐길 수 있었을까?'


아마도 행여 무심한 인간이 걷어차지 않을까, 돌이라도 던지지 않을까, 차가 돌진해오진 않을까 걱정하느라 전전긍긍 쪽잠이나 겨우 자지 않았을까.

6.jpg


많은 길고양이들을 봐왔지만 그들은 힘겨운 삶 가운데서도 어찌할 수 없는 질병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언제나 우아하고 명랑하고 재치 있었다. 마치 '카르케 디엠(현재를 즐겨라)' DNA를 타고난 것처럼.


나는 고양이의 한 순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길 건너 편의점으로 가서 동물용 닭고기 통조림을 사와 여전히 잠들어 있는 고양이 곁에 살짝 놓아주었다. 그제야 고양이가 실눈을 떠서 날 봤다.


몇 시간 후 다시 자전거를 타고 고양이를 만난 자리를 지나오는데 씻은 듯 깨끗이 비워진 통조림 용기가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 낙엽 한장. 순전히 내 상상 같지만 꼭 '잘 먹었다' 하는 고양이의 답례 같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죽은 어미 뱃속에서의 S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