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어미 뱃속에서의 SOS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3)

by 이명주

'고양이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1)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1)


“넌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해(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의 아름다운 대사다. 누군가, 고양이가 내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양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합니다. 더 다정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용기있는 그런.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건 많은 부분 고양이 덕분"이라고.


2009년 생애 첫 고양이 가족 '양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난 11년간 한가족이 된 고양이가 여럿, 반면 당시는 앞날을 몰라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지만 결국 진짜 가족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 그리고 한참을 지나 생각해도 여전히 아찔한 생사의 순간을 함께 한 고양이도 여럿이다.


그렇게 나의 과거와 현재에, 또 미래 언제 어디서 기적처럼 동화처럼 만나 함께 할 내 생에 모든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2014년 4월 어느 늦은 저녁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평소 알고 지내며 도움을 주고받던 동네 캣헬퍼(cat helper)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당혹스러움과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집 앞에서 고양이가 죽었어요. 차에 치여서…… 엉망진창이 됐어요. 근데…… 이게 새끼를 뱄던기라. 어미는 엉망진창이 됐는데……, 배에서 새끼 하나가 튀어나와 꼬물꼬물하던데……. 다 죽었어요. 내가 신문지에 싸놨는데…… 묻을 수가 없어서……."


비보를 접한 첫 느낌은 놀라움과 두려움이었다. '엉망진창이 됐다'는 어미 고양이가 설상가상으로 새끼를 배고 있었다니.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종일 짐정리를 하고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당장 갈까, 날 밝고 다음날 갈까 고민이 되는 중에 할머니의 한마디가 귓전에 맴돌았다.


"배에서 새끼 하나가 튀어나와서 꼬물꼬물……"


약 한 시간 후 할머니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장독 옆에 '두툼한 검정 봉지'가 보였다. 곧바로 할머니가 안방에서 나오더니 그 검정 봉지를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가르키셨다.


"아까 새끼 한 마리 살아있다고 하셨죠? 혹시 확인하셨어요?"

"아니 아니, 나는 못 봐……. 신문지에 싸는 것도 간신히 했어. 죽었어. 못 살아."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울음이 터졌다.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물론 축축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검정 봉지를 바라보는 것만도 아찔했다. 하지만 그보다 차디찬 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쓴 듯 온몸을 감도는 참담함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음에.


겨우 봉지 매듭을 풀었지만 더 이상은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손가락 끝으로 봉지 겉면을 톡톡 치며 말했다.


"아직 살아 있으면 대답해…… 살아 있으면 대답해……"


열 번쯤 반복했을까. 순간, 분명 눈앞 비닐봉지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에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아주 가녀리고도 선명한 풀피리 소리 같았다. 귀를 의심하며 두근대는 심장 박동을 누르며 몇 번인가 더 물컹한 봉지겉면을 두드렸다. 분명한 '생명의 신호'가 다시 들렸다.


1.jpg 죽은 제 어미 뱃속에서 제 존재를 알린 '다니'


더이상 무섭지 않았다. 생명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피에 젖은 신문지를 한 장 한 장 벗겨내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다행히 처음 손을 뻗은 바로 그 자리에(어미의 사체를 헤집지 않고) 방금까지 사력을 다해 제 존재를 알리던 생명 하나가 있었다. 정말이지 작디 작은 핏덩이였다.


머릿속이 꿈을 꾸듯 아득한데도 한편 전문가로부터 들은 응급처치 조언이 스크립트처럼 떠올랐다. 우선 깨끗이 소독한 가위로 새끼 고양이의 탯줄을 잘라야 했다. 그런데 곧이어 또한번 눈물이 쏟아졌다. 이미 탯줄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짓이겨져 죽는 순간에도 새끼를 살리려 한 모성애가 기적을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음은 얼른 체온을 높이고 수유를 해야 했다. 시간을 지체하면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터였다.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온 새끼는 급격히 차가워지고 있었다. 얼른 할머니방 따뜻한 이불 속으로 핏덩이 새끼 고양이를 옮기고 깨끗한 면수건을 뜨거운 물에 적셔 닦기를 반복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새끼는 세차게 울어댔다. 이제 배를 채워줘야지. 어미젖과 같은 우유가 필요했다. 하지만 자정을 넘은 시각. 몇 번의 다급한 문의 끝에 인근 동물용품가게 주인이 고맙게도 밤잠을 깨고 나와 초유캔을 줬다. 그간 어린 개나 고양이를 여럿 봤지만 이렇듯 갓난쟁이는 처음이었다.


2.jpg 볼수록 놀라운 '다니'의 생명력


시집도 안 간 내가 산 사람도 아닌 죽은 동물의 산파가 돼 내 손으로 한 생명을 받아낸 날이었다. 너무 놀라고 지친 할머니는 당신 집에 새끼 고양이를 두길 원치 않았다. 잠시 당혹스러웠지만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래서 정상 체온을 찾은 녀석을 몸 깊이 품고 바로 인근의 내 어머니집으로 옮겼다.


본격 밤샘 육아가 시작됐다. 배운 대로 두 시간에 한 번꼴로 초유캔을 먹이며 계속해 몸을 닦아 혈액순환을 돕고 깨끗한 수건으로 생식기를 톡톡 쳐서 배변을 유도했다. 모든 것이 서툴렀다. 특히 인공 젖병을 이용한 수유가 그랬는데 보다 못한 어머니가 대신 젖을 먹이자 그제야 새끼 고양이가 입을 쩍 벌려 쪽쪽 빨기 시작했다.


핏기를 닦고 젖은 털이 마르면서 아기 고양이는 보슬보슬 새하얀 모습이 됐다. 흰색 바탕에 등과 꼬리에 노란 얼룩이 있는, 신문지 더미 안에서 봤던 제 어미의 그것과 꼭 닮았다. 녀석은 한 손으로 제지하기 어려울 만큼 힘차게 꼼지락대며 밤새 울다 먹다 자다를 반복했다.


다음 날 아침, 두 눈을 감은 채 투명한 진분홍색 젤리 같은 입을 쩌억 벌리며 하품을 하는 아기 고양이는 그야말로 천사 같았다. 만 하루였지만 정이 들대로 들어버렸다. 하지만 당일 오전, 도움을 요청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로부터 녀석의 대리모를 찾았다는 전갈을 받았다. 바로 몇 시간 후 부산에서 경기도행 기차를 태워야 했다.


서운함이 밀려왔지만 새끼 고양이에겐 더없이 좋은 일. 마지막으로 이름이라도 지어주고 싶었다. '기적…… 행운…… 구사일생…… 대단하다…… 대단히? 다니!' 당시 좋아하던 모 프로그램에서 한 인기 개그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눌하게 "대단하다"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새끼 고양이의 첫 이름은 '다니'가 됐다.


3.jpg '다니'를 제 친자식처럼 여긴다는 대리모 고양이.


이후 다니를 보호하게 된 가정에서 녀석의 안부를 사진과 영상을 통해 알려줬다. 만삭이었던 그 집의 반려묘가 때마침 출산을 했고, 곧바로 다니의 대리모가 된 고양이는 우려했던 일 없이 다니를 제 새끼 중 하나로 여겨 극진히 보살펴 준다고. 사진 속에서 다니는 다정한 엄마뿐 아니라 살가운 형제들과도 함께였다.


오늘날 생명을 경시해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이 너무 많다. 동물도 사람과 같이 고통과 행복을 아는 존재다. 아니 보다 정확히 인간도 그 동물 중 한 종일 뿐이다. 그럼에도 다만 내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존재를 장난 삼아 학대하다 죽이고, 매일 먹으면서도 최소한의 미안함이나 존중 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다채롭고 신비롭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지.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놀라우며 사람과 꼭 닮았는지. 비록 다니와 같은 극적인 탄생이 아니라도, 모든 생명은 하나하나 전부가 말할 수 없는 기적 그 자체이고 내가 귀하듯 그들 모두가 존귀함을 늘 기억해주길.


4.jpg '다니'의 제 2의 형제들


마지막으로 고민 끝에 아래 사진 한장을 더한다. 삶과 죽음이 뒤죽박죽된 어미의 사체 안에서 다니를 발견한 첫 순간이다. 녀석을 대리모가 있는 가정에 보내고, 서운한 마음에 이 사진 한장을 오래도록 쳐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니의 머리맡에, 또 한 마리 새끼 고양이의 뻗은 두 팔이 보였기 때문.


'혹시 또 있었을까. 풀피리 같은 울음 소리 한번 내지 못한, 그러나 살아있었을 생명이?'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나의 최선은 거기까지였다. 다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되새기며 깨달았다. 모두를 살리지 못해도, 다만 내 눈과 손이 닿는 곳 한 생명을 돕는 일의 가치가 결코 덜할 수 없음을. 삶은, 생명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닌 제각각이 하나이고 전부이므로.


5.jpg '다니'의 가엾은 어미와 몇인지 모를 그 새끼들은 볕이 잘 드는 어느 아름다운 산에 묻어주었다.





이 세상 첫 아침을 맞은 '다니'


keyword
작가의 이전글'5살' 내 동생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