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치유의 글쓰기 03
기억을 회상할 때 ‘직유(simile)’를 사용하는 일은 상당히 흔하다. 나치 치하 집단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경험을 “지옥 같았다”고 표현한다. 이 표현이 나오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이를 글로 표현했다면 필자와 독자 사이에) ‘지옥’의 느낌을 공감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한편, 우리는 사춘기를 일컬어 대체로 ‘질풍노도의 시기’로 칭한다. 질풍노도(疾風怒濤)는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큰 물결’을 뜻한다. 사춘기를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감이 온다. 즉 공감한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방법 중 하나가 직유다.
사람과 그 사람 이름의 관계는 때로 직유로 이해되곤 한다. 요즘에는 덜하지만, 이삼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아이가 자기소개를 할 때 남자이름을 대면 사람들은 다시 돌아보았다. ‘여자 같은 이름’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기독교인들의 노래 중에 “강 같은 평화, 산 같은 믿음, 바다 같은 사랑”이라는 노랫말이 들어간 곡이 있다. 이를 ‘바다 같은 믿음, 강 같은 평화, 산 같은 사랑’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앞의 것을 (1)이라 하고, 뒤의 것을 (2)라 하면, (1)이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물론 (2)의 경우, 그에 따르는 부연설명이 설득력있게 전개된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선비들은 ‘호(號)’를 지어 서로 그것으로 부르며 지냈다. 다산 정약용,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추사 김정희, 서포 김만중, 우암 송시열 등···. 그들이 호를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지어줄 때는 그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즉 비슷한 ‘무엇’을 활용하였다.
부모들이 아기를 낳으면 이름을 지어준다. 이름에는 그 아기에 대한 부모의 희망이 담겨있는 듯하다. ‘윤박’이라는 배우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박사가 되기를 바라서 이름을 그리 지었다 한다.
지금 자기자신의 이름 석자(두자 혹은 네다섯자)을 한 번 종이에 써보라. 내 이름엔 어떤 뜻이 들어있는가? 내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누구인가? 내 이름이 지어지기까지 사연은?
내 이름에 대한 나의 느낌은 어떠한가? 내 이름은 나라는 사람과 얼마만큼 유사한가? 내 이름을 다른 사람이 들으면, 나를 잘 떠올릴 수 있는가? 이 같은 내용을 글로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직유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오감을 다 활용한다. 보기, 듣기, 만지기, 맛보기, 냄새 맡기 등. 그중에서 시각적 요소가 아마도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가장 자주 쓰이기도 하고, 공감을 가장 금방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진법 중 ‘학익진(鶴翼陣)’이라는 것이 있었다.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진을 가리킨다. 바닷물 위에서 학이 날개를 편 것처럼 배를 줄지어 연결한 전투대형이 학익진이다. 이런 모양.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사실 이것은 ‘키’ 모양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진법을 ‘키진’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드물거나 거의 없다. 키진, 어감도 의미도 멋지지 않다. 학 정도가 등장해줘야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에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이 등장하면 심지어 우아함까지 느껴진다. (우아한 전쟁이 어디 있을까마는···.)
전설의 권투선수 무함마드 알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 직유와 직유를 연결한 멋진 문장이다! 알리만큼 멋지게 사용하지 못해도 좋으니, 직유 연습, 글쓸 때 자주 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