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납: 내 인생 최초의 기억과 그 속의 나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 04

by 이인미

1.

자기가 태어나는 순간을 확실히 기억하는 사람은 드문 (아니, 없는) 것 같다. 어차피 그 탄생의 순간은 어머니의 진술에 의존하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서 내 인생을 시작한 지상최대 역사적 순간, 그 순간의 주인공인 ‘나’는 그 순간에 대해 어머니가 묘사,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잘 들어서 간직하고 있다가 남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또는 지금 어머니의 언행을 보면서 그 여성이 갓 태어난 아기를 어떻게 돌보았을지 짐작하거나 추론한 것을 기억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탄생의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는 ‘무늬만 주인공’인 셈이다.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은 진짜 ‘인생 최초’의 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돌아보며 가장 앞선 것으로 기억하는 ‘최초’다. 이 ‘최초’라는 지위를 갖는 기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제까지 기억해냈던 그 기억보다 더 앞선 기억이 떠오를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즉, ‘인생 최초’라는 지위는 많은 기억들 중에서 현재의 내가 주관(주체)적으로 최초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하고 선택한 기억이다.





2.


사물, 사건, 사람.


이 세 가지 요인이 우리 기억을 구성하는 것들이다.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내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다. 우리는, 환경과 자아가 상호작용하는 장면들을 우선 몸으로 기억한다. 그 장면들에는 소리가 있고, 이미지가 있고 여타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 장면들에 관한 기억을 떠올릴 때 즐거워질 수도 있고, 서글퍼질 수도 있다. ‘기억하기-글쓰기’라는 작용은 현재의 내 감정을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이게 한다.


그런데 나의 감정이 움직일 때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얼른 알아채기는 어렵다. 글을 쓸 때와는 달리 동료들 앞에서 글을 발표할 때 기억이 휘젓는 감정의 움직임이 뜻밖에 더 강렬할 수 있다. 어떤 문장을 쓸 때는 그저 담담히 썼는데, 그 문장을 소리내 읽기 직전 눈으로 훑기만 했는데 ‘울컥’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응? 뭐?”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3.


이 세상에 관점이 들어있지 않은 글은 없다. 6하원칙을 따라 아무리 객관적으로 작성되었다고 하는 기사문이나 보고서에도 나름의 관점은 들어있다. 글쓴이의 관점은 글 속에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들어있을 수밖에 없다. 아니, 들어있어야 한다. 빼내려 해도 빼낼 수 없고, 빼내려 하기보다는 제대로 심으려 노력해야 하는 게 관점이다.


그것이 달리 말하면, 글쓴이의 주체성이기 때문이다.


관점(觀點)은 입장(立場)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다. 영어로도 viewpoint 혹은 standpoint로 표현된다. 기억을 쓸 때 활동하는 관점은, 기억하고 있는 그때 당시의 것일 수도 있고, 기억하고 있는 그때가 아닌 지금의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부모님께 크게 야단맞은 기억이 떠올라 그 내용을 글로 쓸 때, 현재의 나는 어릴 때처럼 벌벌 떨고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관점을 적용해 전연 떨지 않을 수도 있다.





4.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대로 관점을 갖고 살아간다. 나와 똑같은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한 가족 안에서도, 한 특정한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일례로, 맏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엄격한 분이지만, 막내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자상한 분일 수 있다. 물건도 그러하다. 할머니가 사용하던 항아리가 있다고 할 때, 가족 중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항아리지만, 그 항아리에 얽힌 사연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정감있는 할머니의 유물이다. 절대로 깨뜨려서는 안되는···.


남들과 내가 관점이 다른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더 흥미로우면서도 더 당연한 사실은, 내 안에서도 시간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는 초컬릿을 좋아했으나 지금은 안 좋아할 수도 있다. 어렸을 때는 콩밥을 싫어했으나 지금은 즐겨 먹을 수도 있다. 단 것에 대한 관점이 변했거나, 건강한 음식에 대한 관점이 변했을 수 있다. 그렇게 된 이유나 계기는 여러 가지며, 속내를 들여다보면 매우 시시한 이유가 들어있을 수도 있다.


단, 사람마다 관점의 변화의 강도나 속도는 다르다.





5.


어떤 사람의 관점이 고정불변이라면, 매우 확고하다면, 오히려 의심스럽다. 십대 때의 관점을 오십대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3-40대 무렵 즉 성인이 된 다음에는 관점의 변화가 극히 제한적으로만 일어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 때는 말이야”를 일삼는 꼰대들에게서 관점의 고정불변 현상이 관측되곤 한다. 그들의 십중팔구는 젊은 세대와 제한적으로 의사소통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경직된 고정관념을 많이 지닌 소위 기성세대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관점이 변화할 수 있도록 주변환경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유연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관점은 천이면 천, 백만이면 백만, 다 다를 수 있다.


심지어 한 사람 안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점은 변화할 수 있으니 더 말하여 무엇하랴. 우리가 관점에 대하여 상호다양성과 변화가능성을 유연하게 생각한다면, 자신의 기억을 쓸 때 훨씬 더 편안하게 써내려갈 수 있으리라 예견된다. 과거 기억 속에서 들리고 보이는 자신의 언행이 지금의 내 마음에 썩 들지 않더라도 ‘내가 왜 그랬지?’ 은근히 비난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인정하고 용납하는(‘용서’하는)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