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1): 현재→과거→다시 현재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 05

by 이인미

1.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 다섯 번째 글에 이르러 기억과 치유를 추구하는 우리 글쓰기에서 사뭇 중요한 대목에 드디어 도달했다. 이 대목은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빈틈없이 연결돼있는 두 개의 받침돌로 구성되어있다. 기억 그리고 치유.


기억과 치유에서 기억이 먼저다. 치유는 기억의 뒤를 따른다. 그런데 치유의 과정에서 새로운 기억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치유의 신비인지, 기억의 신비인지, 양쪽이 다 관여되어있는 신비인지 명확히 분간할 수 없다. 어떻든 글쓰기 안에서 기억과 치유가 순환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글쓰기의 핵심이다.





2.


<천사들의 증언(the Keepers)>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한 무리의 고등학교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그 여자아이들은 학교에서 일하는 두 신부님 및 그들의 뒤를 봐주는 어떤 범죄자들의 끈질기고도 악랄한 성착취에 학창시절 내내 시달렸다. 성착취 피해자였던 여자아이들은 당시 학교 선생님이었던 한 수녀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그 수녀님의 도움을 기다렸으나, 수녀님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었다. 한참 뒤 수녀님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여자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여자아이들은 자기들이 경험한 무지막지한 성착취를 기억 속에서 스스로 지웠다. 아니 지우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 노력이 얼마나 갸륵하고 대단했던지, 세월이 흐른 뒤, 아무리 제대로 기억해내려 해도 사태의 전모를 기억해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진실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이 성착취범죄는 결국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회 소식을 듣고 ‘가고 싶지 않아, 근데 나는 왜 가고 싶어하지 않는 거지?’라는 물음을 떠올렸던 서른여덟의 한 여성에게 갑자기 기억의 한 토막이 찾아왔다. 그녀가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찾아온 첫 번째 강렬한 기억. 그건 “내가 학교 선생님이셨던 수녀님을 죽였다”였다.





3.


그러나! 그 여성이 수녀님을 죽인 게 결코 아니었다. 그 여성은 과거 어느 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한 수녀님의 시신을 목격한 것이었다. 이 여성의 이름은 처음에 가명(영어식 가명: Jane Doe)으로 기록, 보고되었다.


그때로부터 또 몇 년이 하염없이 흘렀다. 또 다른 여고동창생 두 명이 수녀님의 사건이 품은 진실이 무엇인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Jane Doe의 작은 기억에서 출발하여, 끔찍한 여자 고등학교 성착취 범죄사건의 전모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선다.


마침내 Jane Doe가 다시금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가 왔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기억의 조각들을 끄집어내어 적합하게 붙여가면서 Jane Doe는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한 여러 동창생들과 해후하게 되었다. 마침내 Jane Doe는 본명을 밝히기에 이르렀고, <천사들의 증언>에 주인공으로 용감하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서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치듯’ 다시 뭉친 중년여성들은 서로의 기억을 격려하며, 서로 치유받으며, 그리 치유받는 가운데 더 많은 기억들을 정확하게 호출해냈다. 더 많은 기억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사건이 더 명확해졌고, 그들은 심리적으로 더 건강해질 수 있었다.





4.


극단적 사례를 들어 죄송하다. 물론 이런 일은 현실에서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 아니, 현실에서 자주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닌 게 아니라, 넷플릭스라는 회사에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특별히 제작될 만큼 이 이야기는 ‘드문’ 사례이긴 하다.


그렇지만, 누구든 자신의 과거 기억을 되살리고 열심히 되찾으며 그 내용을 정직하게 글로 쓰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어떤 중요한 기억을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 기억이,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것일 수 있다. 혹은 매우 충격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 기억에 마주치는 건 오히려 ‘행운’이라 말할 수 있다. 그 지점에서부터, 치유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사실 문제는 대체로 어떤 부정적 기억과 관계가 깊다. 부정적 기억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채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정신구조(mentality)를 약간 뒤틀어놓아서 문제가 생겨났고 이후로도 계속 재생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일 부정적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면 그 기억을 떠올리는 일 자체는 힘들지 모르나, 이를 ‘기회’가 온 것으로 보고 활용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때 우리는 내 주위에 문제를 일으키는 어떤 내적 요인에 대하여 앞으로도 계속 덮어두고 살 것인지, 지금이라도 문제를 드러내어 살펴, 치유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





5.


우리가 ‘기억과 치유’ 글쓰기 과정에 이미 들어섰다면, 더 많이 기억해내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으면 좋겠다. 부정적 기억이라면 더욱더 열심히 기억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이 이상은 기억나지 않으니까, 이제 그만!’하고 그 자리에서 글쓰기를 종료하는 게 아니라, 왜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지, 왜 기억의 자잘한 조각만 남아있는지, 무엇이 나의 회상을 방해하는지 골똘히 들여다보며 따져보면 좋겠다.


그런 다음, 떠오른 기억들을, 그 상태 그대로 글로 한 자 한 자 적어보기를 권한다. 지금의 관점으로 그때를 판단하여도 좋고, 그때의 관점으로 그때를 또다시 판단하여도 좋다. 그때는 그것(그 사람, 그 일)이 어땠는지, 지금 돌아보니 그때는 그것(그 사람, 그 일)이 어땠는지···.





6.


그런데, 웬일인지 불행한 기억만 자꾸 떠오르면 어떡하냐고? 그 기억을 쓰는 것 자체가 그리 유쾌한 작업이 아니면 어떡하냐고?


그 기억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어느 면으로든 해치지 못하리라는 이야기다. 기억 속의 나는 ‘어린 사람 혹은 젊은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지금의 내가 나빠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불행하고 불쾌한 것일지라도 과거의 그 기억을 정면에서 다루어보자. ‘기억과 치유’라는 이름의 타임머신에는 좋은 버튼이 하나 있어, 원한다면 언제고 우리를 다시 현재로 무사히 돌려보내준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기억과 치유’라는 이름의 타임머신에 같이 탑승한 동료들을 믿으며, 안도의 심호흡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