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미 Oct 18. 2022

여성주의 없이 여성주의와 함께 1

여성다운, 인간다운, 소통하는 책읽기


 


강원도 인제군 박인환문학축제 ‘독서포럼’ 발제글입니다. 글이 길어서, 나누어 연재할 계획입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이 글에서는 여성주의와 페미니즘 용어가 혼용됩니다. 단 여성주의와 페미니즘이 간단히 ‘여성중심’이나 ‘여권신장’ 등으로 이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1. 여는말: 문제제기


흔히 여성이 남성보다 책을 더 많이 읽는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우리의 실제현실에 비추어보면,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다. 최근 ‘문화산업연구센터’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집단으로 볼 때 여성집단이 남성집단보다 독서율이 더 높지만, 여성개인과 남성개인을 비교할 경우 남성의 독서량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다(이용관, 2021, 81). 그런 데다 정작 이 연구는 성별과 책읽기의 상관관계가 교육수준과 책읽기의 상관관계만큼 높다고 판단하지 않는다(재인용: 이용관, 2021, 67; Smith, 1990). 한편, 이삼십대 여성집단의 독서동기를 ➊지식습득, ➋간접경험, ➌자아정체성 확보, ➍시간활용, ➎치유욕구, ➏휴식 등으로 추출한 연구도 있다(김선남 외, 2014, 55-63).


그러나, 한국문화관광원ㆍ한국출판연구소가 펴낸 『201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가 보고한 남성의 주된 독서동기 1순위도 ‘지식습득’이니, 독서동기 면에서 성별(gender)의 차이가 새삼스레 드러난 건 아니다(문화체육관광부, 2011, 112). 세월이 지나도 젠더 차이 없음은 거의 그대로인데,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도 결과는 여성과 남성에게 공히 ‘지식[정보] 습득’이 독서의 동기요 목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문화체육관광부, 2021, 113). 한편 중년여성의 상담치료방법으로 책읽기가 유익하다는 것을 검증한 연구(권희영, 2020), 우울감을 느끼는 중년 여성과 남성에게 공통적으로 책읽기가 유익하다는 연구에서는(신경희, 2021), 독서활동을 다른 어떤 과제(예컨대 자아존중감 증진, 우울증 완화 등)에 유익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 두드러진다. 독서활동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는 듯 말이다.


이제 이 글은 책읽기와 여성(주의)에 관한 문제의식을 두 가지로 벼리어 제시하고자 한다. ➊젠더와 책읽기의 관계가 무의미하다면 여성주의와 책읽기의 상관관계도 어차피 ‘의미없다’로 판명나는 것 아닌가? ➋책읽기 활동은 다른 어떤 인생과제를 위해 활용되기에 좋은 수단적 활동이기만 한가? 위의 두 문제의식을 풀기 위해 먼저 여성주의가 사회적 통념(socially accepted idea)으로 주고받는 그 ‘여성주의’가 아님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관련하여 이 글 2장에서 여성다움과 인간다움을 짚어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여성이 ‘인간의 하위개념’이라는 논리적 진실을 확인하게 된다. 아울러 이 글은 페미니즘의 발생취지(‘초심’이라 부를 수 있다)를 지적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책읽기=소통’이라는 점을 칸트(E. Kant)의 사상체계 한귀퉁이에 들어서서 잠시 들여다볼 것이다. 칸트 사상체계에서 소통은 ‘공통감각(Common Sense)’ 개념에 이어져있다. 그것은 동일한 영어철자를 지녔지만 ‘일반상식’과 다르며, 사회적 통념과도 다르다. 칸트가 말한 공통감각은 어디 다른 것에 사용되기 위해 재료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진리를 밝히는 생각의 과정에서 활약하는 것으로서 소통을 이룩하는 정신활동의 기초가 된다. 끝으로 이 글은 책읽기가 건강하게 일어나려면, 다시 말해 소통이 건강하게 일어나려면 독자는 스스로 생각해야 하며, 책읽는 동안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독자 스스로 자기의 감정을 분명히 느끼고 자기의 생각을 타인과 차별성있게 능동적으로 인식하며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결국 위에서 이 글이 제기한 두 가지 문제의식은 마치 두 물줄기가 한 지점에서 합류하듯, 만나 어우러진다. 여성이라고 해서 별다른 고차원적(?) 이유로 책을 읽는 게 아니니 페미니즘이 나서서 여성의 책읽기를 굳이 높이 평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만일 여성개인을 비롯해 여타 사회적 소수자(minority)들의 능동성에 둔하고 무딘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나서서 모든 종류의 사회적 차별 피해자들의 능동성과 주체성을 격려하고 지지한다면, 그리고 텍스트로 표현된 비하ㆍ차별ㆍ멸시의 언어와 의식적&무의식적 집필의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진하는 독서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그 페미니즘과 책읽기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한 페미니즘과 함께라면 누구나 여성답고 인간다우며 소통하는 책읽기활동을 활발히 전개할 수 있으리라.  


작가의 이전글 구씨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