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키워드 <주머니>
친구들을 만날 때, 꼭 한 명씩 손바닥 만한 가방(이걸 가방이라고 볼 수 있나?)을 어깨에 매고 오는 친구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빠짐 없이 감탄한다. 이걸 대체 어떻게 들고 다녀? 여기에 뭐가 들어가기는 해? 그러면 친구는 대체로 이 가방 수납력이 제법이라며, 안에 차곡차곡 담긴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여준다. 팩트, 틴트, 보조배터리, 카드지갑, 핸드크림 등 소지품들이 묘기처럼 줄줄이 나온다. 그 순간 친구들이 꼭 텅 빈 모자에서 흰 비둘기를 만들어내는 마술사처럼 보인다.
학생 때부터 안경 케이스와 안경 닦이부터 헤어브러쉬(꼬리빗은 취급하지 않는다) 거대한 필통과 노트를 한아름씩 들고 다녔던 나의 생활 습관은 직장인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옷장을 열어 보아도 미니백이라고 칭할 수 있는 가방은 남자친구와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것 딱 두 개 뿐. 그 외에는 가로 길이가 15cm가 넘지 않는 가방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남자친구가 선물한 가방들 중 미니백보다도 정작 더 많이 들고 다니는 건 사용한 지 5년이 넘어 지퍼 부분이 다 해진 백팩이다. 가볍게 외출하기로 맘 먹고 숄더백을 챙긴 날에도 하나 둘 담다 정신을 차려 보면 가방이 보기 싫게 뚱뚱해져 있다.
손바닥 만한 가방을 매고 온 친구는 되려 내게 반문한다. 대체 뭘 그렇게 들고 다니냐고. 그러면 나도 친구의 왓츠인마이백에 답례하듯 가방 안의 물건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이건 도서관에 반납할 책, 독서모임 할 때 사용하는 아이패드, 휴대폰 충전기, 그리고 아이패드 만한 파우치. 생리 기간엔 생리대 파우치도 추가다. (생각보다 이게 상당한 부피를 차지한다.) 멀뚱히 보고 있던 친구가 갸웃한다. 뭐 딱히 든 건 없는데 무겁네? 그래, 나 뭐 많이 안 들고 다닌다니까? (부피가 클 뿐)
이렇게 가방에 온갖 것을 쑤셔 담고도 손이 부족할 때면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것이 있다. 외출 직전 겉옷을 입고 허리춤을 더듬거리면 만져지는 두 개의 주머니. 요즘 같은 겨울 날엔 습관적으로 왼쪽에 카드지갑, 에어팟 케이스를 넣고 오른쪽에 장갑과 작은 귀마개, 핫팩을 넣는다. 어쩌다 보니 실용과 보온을 기준으로 좌우를 구분한다. 영하 10도 밑으로 기온이 떨어지는 날엔 주머니 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주머니 속 미지근한 핫팩에 온 정신을 의존하며 생각한다. 난 진짜 주머니 없이 절대 못 살겠다.
여자들이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 게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2년 전 어떤 책 한 권을 통해서였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무렵의 서양 의복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성의 옷에는 주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 돈이나 열쇠, 메모 등 주머니에 주로 넣는 실용적인 물건들이 집안일을 하는 여성에게는 필요하지 않으며 보기에 흉하다는 이유에서다. 주머니가 달린 경우에도 옷 속에 숨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례로 그 당시 낡은 치마의 옷감을 재활용 하기 위해 옷을 뜯다가 속 안에 주머니를 발견했다는 여성의 일화도 있다.
책은 주머니로 보는 성역할에서부터 여성의 참정권으로 논의를 확대해 나가며, 1899년 8월 뉴욕타임스에 등장한 기사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아담과 이브가 세상에 왔을 때는 둘 다 주머니가 없었을 텐데, 그 후로 남자와 여자는 주머니와 관련해서 완전히 다른 발전 양상을 보였다. 남자 옷의 주머니는 발전하고 개선되고 그 수도 늘어난 반면 요즘 여자 옷은 오히려 후퇴해서 두 세대 전 사람들이 입던 옷보다 오히려 주머니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반면 어떤 언론에서는 주머니 없는 드레스를 거부한 대표적인 여성 참정권론자 게일 러플린을 두고 남자의 옷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다닌다며 조롱한다고도 덧붙였다.
이 구절을 읽고 잠시 옷장 안에 걸려 있는 나의 옷가지들을 떠올려 보았다. 문득 디자인은 마음에 쏙 들었으나 주머니가 없어서 외출 내내 불편했던 가디건부터 주머니 모양으로 본떠놓고 박음질을 해두어서 가을 내내 지갑과 휴대폰을 들고 다녀야 했던 자켓(이게 제일 어이없다), 그리고 무언가를 넣는다고 생각해본 적 없던 교복 치마까지 세월에 걸쳐 입어 온 여러 종류의 옷들이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1899년 신문 속 이야기가 그리 먼 옛날처럼 아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21세기 오늘날에도 SNS에는 의류 불평등을 강조하는 게시물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WeWantPockets 라는 이름의 해쉬태그까지 존재한다. 그 중 26년 2월 13일을 기준으로 가장 첫 번째 나오는 게시물을 눌러보면, 남성 바지와 여성의 바지 주머니 크기를 비교하는 릴스를 볼 수 있다. 릴스에서 남성 바지는 손바닥 전부가 깊숙하게 들어가는 반면, 여성 바지는 손가락 한두 마디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만을 허용한다. 1954년 "남성복 주머니는 물건을 넣는 용도이고, 여성복 주머니는 장식용"이라고 말한 크리스찬 디올의 패션 철학이 2026년인 지금까지도 견고하게 명맥을 이어가는 중인 듯하다.
한 명의 보부상으로써, 이런 역사에 대해 생각하면 비교적 진일보한 시대에 태어난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아직도 주머니로 불편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는 점은 꽤나 불만스럽다. 주머니가 있는 옷을 사면 그만이지 싶다가도, 어떤 날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아마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불편이 주머니 없는 옷 하나라면 이 정도로 짜증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같은 챕터에서 책은 이렇게도 말한다.
진짜 문제는 남성과 여성 중 남성만이 기능하는 옷을 입을 수 있고 입게 될 것을 당연하게 기대하고 그걸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기여는 제한적이라는 사고방식, 여자를 전통적인 위치에 묶어두려는 태도가 여자의 옷을 만드는 데 반영된다. (...) 그게 주머니 문제의 핵심이다.
여기까지 쓰고 외출을 위해서 다시 패딩을 입는다. 이번 겨울 내내 단벌신사처럼 입은 나의 애착 패딩은 남성용이다. 애초에 패딩에 남성용과 여성용을 왜 나누는 것이며 여성용으로 허리 라인을 강조한 일명 '나미리 패딩'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나 패션계에서는 그것을 굳이 따지니, 나도 굳이 말하자면 남성용 패딩을 입는다. 여성용 패딩은 모자를 둘러싼 털의 색이 연회색으로 균일하며 질감이 반질반질한 반면, 남성용 패딩은 털색깔이 고르지 않고, 어딘가 거칠게(?) 듬성듬성 나있다. 선택한 이유라면 남성용이 넉넉하게 편하고, 혼용률도 훨씬 우수해서다. 남성용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사이즈를 크게 산 나머지 주머니가 거의 허벅지에 맞닿아 있어서 무언가를 꺼낼 때 몸을 엉거주춤 기울여야 한다는 점만 빼면 아주 만족스럽게 입고 있다.
이 계절,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수많은 '김밥 패딩족'들을 보면 동질감이 들다가도 여성들과 나의 모자색이 다르다는 점을 깨달을 때면 어딘가 어색함을 느끼곤 한다. 게일 러플린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좌, 우에 나의 취향과 생활을 반영한 모든 물건을 가득 넣고도 한참이나 공간이 남는 주머니에 더욱 손을 깊게 찔러 넣으며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옮긴다.
* 참고 서적 : 박상현 『친애하는 슐츠씨』,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