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키워드 <손톱>
매일 관성적으로 몇 종류의 뉴스레터를 읽는 편이다. 엄청나게 재미있어서도 무언가를 특별히 얻고자 해서도 아니고 단지 그런 류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어서다.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매일 여러가지 소식을 비교적 빠르게 알게 되기는 하지만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뉴스에 속절없이 두드려 맞을 때면 텍스트에 등을 돌리기 보단 오히려 대접을 받고 싶을 때가 있다. 이 글을 받아보는 당신이 흥미를 보일 만한 몇 가지 이야기. 무익하거나 유해한 담론은 거둬내고 가치있는 것만 골라 담은, 말하자면 텍스트 오마카세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수많은 채널,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반짝이는 소식을 건져내고 정갈하게 다듬어서 정리하는 에디터의 일 자체가 여전히 흥미롭게 다가와 뉴스레터를 읽는 것도 있다. 5년 전 그 반복 작업과 일련의 싸이클이 숨 쉬는 것까지 고장나게 만들어서 그만 두기를 택했음에도 아직까지 희한하게 그 주변을 빙글빙글 맴도는 나를 발견한다. 미디어로든 사적으로든 매력적인 누군가를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면 자조적인 웃음이 나온다.
내용 보다는 취재 과정이 궁금해지는 기사들이 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찾았으며 어떻게 컨택하고 또 어떤 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을까. 서면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을까? 유선으로 대화를 나누고 녹음본을 복기했을까? 처음 콘텐츠 기획을 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런 기사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읽은, '서른이 넘어 커리어 리셋에 성공한 6인 인터뷰'였다.
기사에는 4년간의 영상PD 일을 뒤로 하고 인테리어 필름 시공을 도전한 사람, 대기업 마케터를 관두고 젤라또 가게를 창업한 사람, 미술 학원 실장이었다가 도배사가 된 사람 등 이전 직업과 접점이 거의 없는 분야로 도전한 이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30대에 접어들어 전직을 한 사례를 모은 것이었기 때문에 인터뷰이 모두가 90년대생 나의 또래였다. 그 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오래 사로 잡은 것은 '캐나다 네일 테크니션'의 길을 택한 사람의 인터뷰였다.
중견 기업의 마케터로 일하던 그녀는 너무나도 업무를 잘하던 동료가 그만두었을 때, 회사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회의감을 느꼈다. 그 후 일을 병행하며 새로운 적성을 찾던 중 네일아트 공부를 시작하고, 한국에서 몇 달 간의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초보자에게 국내 시장은 환경과 처우가 그리 좋지 않았고, 그 길로 캐나다 워홀을 신청해 무작정 한국을 떠났다. 네일을 배우기 위해 캐나다 워홀을 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에 참고할 멘토 없이 맨땅에 헤딩을 해야 했던 그녀는 말도 안 되는 계산 실수, 고객의 컴플레인 등 실패와 좌절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일이 적응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가게에서 최고 매출을 찍는 직원이 되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적을 때면 가끔 글이 싫어진다.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최고 매출을 찍는 날이 도달하기까지의 수많은 고민과 걱정, 두려움, 불안, 버텨냄이 누군가에게 단 7줄로 정리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숨 쉬는 것까지 고장났다던 5년 전의 내 모습도 그 순간을 회상하면 여전히 끔찍하지만 종이 안에서는 10글자 내외로 간단히 요약된다. 그럼에도 무언가 자꾸만 쓰고 싶은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네일샵 뿐 아니라 부업까지 시작해 더 많은 기회를 확장하고 있다는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그 확신은 영영 생기지 않아요. 완벽한 준비보다는 '최소한의 준비'를 믿고 시작하는 걸 추천해요. 부족한 나머지는 부딪히며 채워나가는 것으로 충분하거든요.
그녀의 이야기가 유독 와닿았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6명의 인터뷰이 중 유일하게 나와 나이가 같은 동갑내기 친구여서, 그 친구가 일구어낸 도전이 존경스럽게 느껴지고 또 한편으로는 부러워서, 그리고 어쩌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 마음에 찔려서.
지난 몇 년 간 나는 오지 않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 속에 지냈다. 그것이 기회인지 용기인지 확신인지 마음가짐인지 선명하지 않은 채로 그저 마음이 기우는 곳 근처를 배회하고, 또 맴돌았다. 삶의 양식이 바뀌기를 희망하면서 여전히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아침에 뉴스레터를 읽고, 쓰는 일을 바라보기에 그쳤다.
여전히 나는 모든 것이 뿌연 일상 속에 살고 있다. 인생에서 확실한 것, 영원한 것, 보장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다만 그 가운데 유일하게 확신이 드는 것은 더 이상의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와 동시에 5년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