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눈에 보이는 순간

아홉 번째 키워드 <새싹>

by 안진진

엄마랑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늘 보던 풍경에 멍하니 걷고 있는데 엄마가 한 나무를 가리키면서 가지 끝에 언뜻언뜻 초록빛이 보이는 것 같지 않냐고 물었다. 엄마의 손 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아직 앙상해보이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기 위해 눈살을 살짝 찌푸려보았지만 여전히 나뭇가지 뿐이었다. 그래도 들떠 보이는 마음에 초를 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가 대답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했었다.


매년 이맘 때면 엄마는 항상 나뭇가지에서 움트는 새싹을 발견하는 재미를 즐긴다. 내 눈에는 잘 띄지 않는, 희미한 초록빛을 찾아내면 지나가다 멈춰서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 한다. 정작 봄꽃이 만개한 4월에는 분홍으로 물든 거리를 무심히 지나치면서 아무 것도 없던 자리에 푸릇한 싹이 돋는 건 매번 봐도 매번 신기한 듯하다. 어쩌면 그저 무언가 시작되는 것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라고, 나는 엄마를 보면서 생각한다.


천성이 내향적인 데다 집순이인 엄마는 친구가 많지 않다. 내 기억이 존재하는 이래로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자의에 의해 친구를 만나러 나간 적이 손에 꼽는다. 향우회, 동창회, 등산회 등 '회'로 끝나는 각종 모임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으며, 몇 안 되는 친구도 메신저로 안부를 주고 받는 정도이지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나는 편이 거의 없다. 엄마의 베스트 프렌드는 나와 텔레비전뿐이었다.


그렇다고 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내향형 인간에게는 외향형 친구가 자석처럼 붙듯이 엄마에게도 그런 존재가 한 명 있었다. 매번 똑같은 답이 돌아올 안부를 물으며 사는 게 녹록치 않음을 한탄하며 말을 붙여오는 사람. 나는 그 사람을 미영 이모라고 부른다. 아주 어렸을 때 몇 번 본 게 전부지만 마땅한 호칭이 없어 아직도 이모라고 부르는 엄마의 중학교 친구. 엄마와 달리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고 술을 좋아하며 호탕한, 말 그대로 대문자 'E'의 파워 외향형.


미영 이모는 엄마의 거절에 면역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창과 방패처럼 끄집어내고 퇴짜 놓기를 반복하는 둘을 보면서 어떻게 관계가 유지되는지 신기해하곤 했다. 이것도 친구고 관계라면 다행이다 생각하며 지내기를 몇 년, 문득 엄마 입에서 더이상 미영 이모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날이 있었다. 언제 한 번 미영 이모가 술 김에 연락해 서운하다고 투덜거렸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듯 들었던 게 생각났다.


괜히 아쉬운 마음에 사람들한테 연락 좀 잘 하라고, 주변에 아무도 안 둘 거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혼자가 편하다고, 만사가 귀찮다고 손사레 치는 엄마에게 무어라 더 말을 하려다 관뒀다. 관계가 끊긴 건 엄마인데 왜 내가 화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나를 키우느라 엄마 인생에 많은 게 달라졌고, 이 모습이 그 변화 중 하나라는 것을.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괜히 탓할 거리를 찾아 손가락질했다. 엄마가 내성적이라서 그래, 한동안 안 만나 버릇해서 그래. 엄마가 내 나이보다 어릴 적, 얼마나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으며 태극당 웨딩홀에서 일할 때 얼마나 사교적이고 또 활동적이었는지는 애써 외면한 채로.


황량한 나뭇가지에 손가락 마디 만한 싹이 돋듯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나지 않는, 그러나 반가운 변화가 생긴 건 아마 4년 전쯤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는 한참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더니 이런 게 있는데, 말을 흐리며 문자 하나를 보여주었다. 살펴보니 사찰 음식 수업 모집 공고였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이런 게 있다더라 운을 떼는 엄마 특유의 소심한 습관이 유난히도 반가운 날이었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수업을 듣는다니! 마음이 바뀌기 전에 곧장 수업을 등록하고 결제까지 해주었다.


엄마는 친구를 만나지 않았을 뿐, 집에서는 늘 이것 저것 도전하느라 분주했다. 특히 요리에 진심이었다. 요리에 있어서는 즐기는 것을 넘어 성과를 내고 싶어 했다. 요리 공모전을 보면 망설임 없이 신청했고, 각종 대회란 대회는 팔도를 누비며 참가했다. 조용히 강한 사람,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사람. 그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지켜보고 있으면 나의 활기와 끈기, 야망이 어디서 온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엄마의 잠재력을 알았기에 오랜만의 도전에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낼 수 있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인 데다가 수업 방식도 꽤나 잘 맞았는지 엄마는 매주 꼬박꼬박 출석 도장을 찍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수업이 끝난 뒤 꼭 그 날 만든 음식이나 수강생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메신저로 보내왔다. 그것도 모자라 집으로 돌아가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고스란히 이야기 하는 학생처럼 그날의 하루를 조잘조잘 전하기 바빴다.


우리 반에 아저씨 수강생이 있는데, 머리가 도인처럼 길어. 근데 알고 보니 가방끈도 엄청 길더라. 이 앞에 불교대학 다닌대. 어떤 사람은 대구에서 여기까지 KTX 타고 몇 시간을 걸려서 왔어. 열정이 정말 대단해. 다정하게 맞장구를 칠줄 아는 살가운 딸은 아니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심한 말투로 반문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 와중에도 자꾸만 웃음이 튀어나왔다. 진짜 웃기네, 참나. 어이가 없네. 나는 좋다는 말을 계속 웃기다고 바꿔 말했다.


이듬해, 지난 수업을 바탕으로 사찰음식 자격증까지 딴 후 배움에 재미를 느낀 엄마는 본격적인 만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도인처럼 긴 머리 아저씨가 다닌다던 불교대학의 신입생이 된 것이다. 2년 간 수료를 마친 뒤 그것도 모자라 대학원에 진학했고, 현재 2학년 1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다. 동시에 포교사 자격증 공부를 병행해 합격하고, 정식 포교사로 임명도 받았다. 에너지가 에너지를 부르는지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아쿠아워킹도 시작했다.


요새 나는 꽤나 낯선 엄마와 낯선 주말을 보내고 있다. 바쁜 엄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사람들과 어울리는 엄마. 이불에 폭 파묻혀 중국 드라마를 보던 엄마는 어디 가고. 그러니까 눈을 뜨면 진짜 '어디 가고' 없다. 메신저를 켜보면 '절에 있음', '절 가는 중' 짧은 톡만이 와있을 뿐이다. 급기야 이제는 활동 후 뒷풀이까지 즐기기 시작해서 저녁 늦도록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도 많아졌다. 절에 가면 최소 두 명 이상이 엄마를 알아보며 인사하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펼쳐진다. 조용하던 엄마의 전화기는 매일 불이 난다. 단톡방이 너무 많아 휴대폰에 렉이 걸린다고 투덜대는 모습에서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엄마만의 것인 행복을 발견한다.


다시 시선 끝에 바싹 마른 나뭇가지가 있다. 이제는 나도 초록빛이 어렴풋 보이는 것 같다. 싹이 있다는 그곳에 망설이는 표정으로 문자를 보여주던 모습이 겹친다. 움트기 직전의 싹은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면서 왜 움츠러있던 자신은 알아보지 못했는지. 이렇게 잘 피어날 수 있었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막걸리를 들고 '짠' 하는 사진에 아주 난리가 났네, 답장을 한다. 이 봄의 난리통이 오래토록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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