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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구거투스 Mar 19. 2019

리터러리 라디오

입시를 향하되, 그 단계에 '감상'을 놓아본 문학 수업

2학년 문학 수업을 맞아 도서관에 있는 오래된 책, <문학 시간에 시 읽기>(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나라말 펴냄>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이유는,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문학 작품(특히 시)을 모의고사 시험지로 접합니다. 그리고는 문제를 풉니다. 사실, 문제풀이는 우리 사는 데에 쓰잘데기 없습니다. 감상을 통해 위로받고, 위로하고, 경청하고, 포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문제풀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문학 작품과의 만남과 문제풀이 사이에라도 그동안 실종되었던 ‘감상’을 놓아보자, 이렇게 생각한 수업이 바로 <문학 시간에 시 읽기>를 활용한 ‘리터러리 라디오’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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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간에는 이 책을 읽힙니다.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두 작품 고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두 작품은 다음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낭독할 거라고 안내합니다. 쉽고 공감되는 시가 많아서, 처음에 시큰둥하던 학생들도 조금 읽다 보면 “어라, 괜찮네?” 하고 읽습니다. 게다가 다음 시간에 자신이 낭독해야 하기 때문에 대체로 아무 작품이나 고르지 않습니다. 더 맘에 와 닿는 작품을 고르기 위해서라도 되도록 많은 작품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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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간에는 예고했던 대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낭독을 합니다. 이런 활동은 느슨하기 때문에 굳이 교사가 교실 앞에 서서 학생들을 통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급의 실장을 진행자로 지정하여 가장 먼저 읽게 한 뒤, 그 뒤를 맡겨 놓으면 알아서 잘 굴러갑니다. 원칙적으로는 희망하는 학생이 먼저 읽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낭독하는 시가 겹치면 안 되는데, 나중에 읽을수록 자신이 골라놓은 두 편을 모두 뺏길 수 있으니 먼저 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합니다. 교사는 교실 뒤에서 누가 어느 작품을 낭독했는지 메모만 하면서 되도록 학생들에게 존재감을 주지 않도록 합니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스스로 어색한 느낌을 이겨 냅니다.


참, 날씨가 맑으면 교실 불을 끄고 창 밖으로 조금의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함으로써 다소 어두운 조명을 연출하는 것도 시를 진지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장치입니다. 아무튼, 두 번째 시간에는 시를 돌아가면서 읽기만 합니다. 시간이 남으면 적당한 곳에 각자 낭독한 시를 정성스러운 글씨로 필사해 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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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간에는 낭독한 순서대로 다시 낭독하되, 시와 낭독자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 A학생이 ‘서시’를 낭독합니다. 그러면 제가 “A야, 너는 왜 윤동주의 ‘서시’를 선택했지?”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A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구절이 맘에 들어서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러면 다시 교사가 “A는 그게 왜 맘에 들었을까?”하고 다시 묻는 식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A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이런 것들을 발견해 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관련된 세상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사실 이건 진행하는 교사가 대화를 이끌어내고 시를 독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어느 정도 능숙해야 가능한 것입니다만, 처음에 몇 번 실패하더라도 이 활동이 재미가 있으면 계속하게 되고 그러면서 또한 실력(?)도 조금씩 향상이 될 겁니다.^^) 낭독한 학생과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중에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간간히 질문을 던지고, 마무리할 때에는 “낭독한 학생이나 방금 감상한 작품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있나요?”하고 물어봅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오직 대화를 듣기만 하거나 참여하기만 해야 하므로 메모 같은 것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의 경험이 짧은 시간 내에 사라질 아쉬움이 있는데요, 이를 보완하고자 15분 정도 남았을 때 수업을 마치고 웹사이트에 댓글을 남기도록 합니다. 저의 경우는 블로그에 매 시간 다룬 작품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감상이나 소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시에 대한 정보, 시를 독해하는 방법 등)을 작성하도록 합니다. 수업 중에 작성하고, 보완할 사람은 집에 가서 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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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수업의 이름이 왜 ‘리터러리 라디오’냐고요? 시를 낭독하고 학생의 경험, 세상 일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이 시간을 학생들이 ‘수업’이 아니라, 마치 ‘라디오 공개방송’처럼 느끼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급적 좁은 공간에 모으고요, 조명을 어둡게 하되 포인트가 되는 조명을 활용하고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틉니다. 참여하는 학생들은 라디오 스튜디오의 초대손님이자, 방청객인 거지요.(은은한 분위기와, 허용적인 교사의 태도가 정말 중요합니다.)

여기까지가 지금 하고 있는 수업의 모습니다.


향후 계획은 이렇습니다. 모든 학생들과의 낭독과 토크가 끝나면 감상의 단계를 일단락 짓습니다. 제대로 된 감상이 선행된 문제풀이를 그때서야 조금씩 체험시켜 볼 생각이에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들려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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