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블랙독> 최종화의 감동

- 그리고 고하늘샘과 나누고 싶은 수업이야기

by 글쓰는 민수샘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걸까?"


고하늘샘은 내내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교단에 섭니다. 수학여행 버스 사고 때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기간제 선생님에게 던지는, 돌아오지 못하는 질문이기도 하지요. 학교에서 교사로 아이들 앞에 서게 되면서, 고하늘샘 역시 이런 질문을 선배 교사에게 던집니다.


"선생님, 학생들에게 어디까지 다가가야 하는 걸까요? 어디까지 해주어야 할까요?"


교직 생활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블랙독>을 보면서 제가 찾은 잠정적인 답은 이렇습니다. 한 학급에 한 명, 아니 한 학년에 한 명이라도 '선생님이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주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면 괜찮은 1년을 보낸 것이라고요.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10명의 법칙'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만나는 10명 중에 2명은 나를 좋아하지만, 7명은 관심이 없고, 1명은 싫어하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2명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교사의 경우는 관심이 없는 7명의 흥미를 자극해서 수업에 들어오게 해야 하고, 나를 싫어하는 1명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하려면 힘든 직업이지요.

대치고의 선생님들도 심화반 이카로스 테러 사건을 계기로, 3등급 이하의 평범한 학생들을 위해 더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하늘샘도 자퇴를 결심한 담임반 아이와 대화하고 아이의 꿈을 응원하면서 진정한 제자로 만들어 갑니다. 자퇴한 아이도 학교를 떠났지만, 고하늘샘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자퇴처리하면 되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지?'라는 질문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관계가 많아질수록 인간에 대한 존중, 약자에 대한 배려와 봉사가 선순환되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교사는 먼저 퍼주는 존재, 일단은 믿어주고 손해 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존재론적으로 부족하고 약속을 못 지키는 면이 있으니까요. 어른인 교사가 '너희들이 한 만큼, 나도 해 줄 거야'라고 하는 것은 좀 매정합니다. 이게 안 통하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블랙독> 최종회에는 수업을 바꾸려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도연우샘은 거꾸로 수업을 시도하고, 고하늘샘은 국어-생물 융합수업에 도전하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스템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제가 예언(?)한 셈이 됐는데, 지난 글에서 예상한 '심화반 이카로스의 추락'도 맞혔고, '대치고에 필요한 것은 진학부가 아니라 혁신부'라는 주장도 응답이 되었답니다.ㅋㅋ

대치고에 심화반이 폐지되고 수준별 방과후 수업이 늘었고, 진학부는 이름뿐이던 혁신부와 통합되어 '진학혁신부'가 되었어요. 학교마다 수업혁신을 책임지고 담당하는 혁신교육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드라마 <블랙독>이 잘 보여주었어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감동이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부장포함 4명이던 진학부가 8명쯤으로 늘었고 '수업연구' 담당도 있더군요. 이제 방과후가 아니라 일상의 수업을 바꾸는 것이 대치고의 과제가 될 것 같아요. 창의수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과제를 모둠별 협력학습으로 해결하는 수업이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수업보다 수능 성적도 높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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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남는 작은 아쉬움은 역시 고하늘샘의 수업입니다. 고하늘샘은 이제 4년차 교사가 되어 한결 여유있는 모습으로 첫 수업을 시작하는데요. 다시 고3을 맡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가는 첫 마디는 변하지 않았네요. ^^;


"자, 책 폅니다. 41페이지. 자화상, 윤동주. 우리는 수능 기출부터 살펴봐야지"


요걸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고하늘샘께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어요. 아니, 2020년에도 제가 먼저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 고민을 나누면서, 특히 고하늘샘같은 후배교사들과 소통하며 서로 배우고 싶습니다. 개학을 기다리면서, 미리 몇 자 적어둡니다.


"저도 예전에 고3 수업을 할 때는 수능문제집으로 진도를 나갔기 때문에, 수업 첫 마디가 '몇 쪽을 펴라'였어요. 나중에 그것도 귀찮아서 국어부장에게 몇 쪽 몇 번을 할 차례냐고 물어보았지요. 아이들 입장에선 첫 장면부터 학원 수업, 인강과 다를 게 없었고 그래서인지 갈수록 많은 아이들을 재웠어요. ㅠ.ㅠ 그래서 아이들에게 '몇 쪽이 아니라 주제를 던지면서 시작하는 것'으로 바꾸었어요. '오늘은 먼저 윤동주의 자화상을 깊이 있게 감상하고, 고3이 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라고 첫 마디를 던지고, 모둠을 만들어서 시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것이지요. 수능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감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니까요. 그다음에 모둠별로 발표하며 감상을 비교하고, 서로 질문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고3이 된 나의 자화상'을 모방시로 써보게 합니다. 모두 다 종이에 써서 교실벽에 붙여놓고 전시해도 좋겠네요. 아, 수능기출 문제 풀이는 숙제입니다. 이것이 저의 수업디자인입니다.

실제로는 아이들이 서로 감동하는 반, 서로 실망하는 반도 있겠지만. 하루 이틀 수업할 것도 아니고 계속 도전하고 싶습니다. 수업을 바꾸는 것은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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